계절 쓰기
김연수 외 지음 / 물결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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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형인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흔히 생각하듯이 우리가 어떤 사실을 정신적으로 지각하면 그것에서 감정이 생기고 육체적 표현이 뒤따르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이를테면 나쁜 일을 당하면 슬퍼서 울고 곰을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울기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몸을 덜덜 떨고 도망치기 때문에 무서워진다. 신체 표현이 없다면 지각은흐릿하고 색도 없고 감정적 온기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낡고 얇아진 수건을 싹 다 버리고다시 구비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다. 산뜻한 느낌은 잠깐일 뿐이니까. 가을이라서 한 일은아니지만, 가을에 하기에 어울리는 일이긴 하다. 옛날에도 가을걷이를 갈무리하고 난 다음에는 낡은 데를 깁고 헌데를 메우며 겨울에 대비했으리라. 다음 세대에게는 내가과거일 테고 그들이 나에게는 미래일 테니, 가을이 내리고겨울이 닥친다고 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삶은 이어질 테니, 이 낡은 삶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수선해서 물려줄 수도 있겠지. 낡은 빨래통으로도 빨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쩌면 가슴이 덜컹거리는 이 느낌은 불안일 수도 있지만 설렘일 수도 있다. 

가을이 오는 걸 느낄 때도 그랬다.
감정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되기도 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건 불안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무엇이 다가온다는 건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다. 길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는지 훤히 안다면 무슨 재미로 골목길을 돌아다니겠나. 앞날에 대한 설렘이 우리가계절을, 한 해를 살아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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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이이은 지음 / 보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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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이 뜨겁지 않을까 하던 걱정도 기우였다. 기둥내부가 그늘이 지고 공기가 순환돼, 제법 쾌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참새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인간이 만든 차가운 쇠붙이를 제 삶의 터전으로 유연하게 바꿔 버린 영리함이라니. 자연은 언제나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쉬이 보고 지나쳤던 기계 장치 속에 치열한 육아의 현장이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이 있었다.
우리가 빨간불과 초록불 사이에서 조급해하는 동안에도,
새들은 우리 머리 위에서 각자의 여름을 건너고 있었다.
신호등에 ‘질서‘ 외에도 ‘공존‘이라는 역할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을 목격한, 뜨겁고도 다정한 여름이었다.

새들이 떠나는 것은 달력의 날짜가되면 가는 것이 아니고 기온에 따라 새들의 생체 신호가반응을 하면 떠나는 거라고 알려 주셨다. 그것은 철새의디엔에이에 새겨져 있다고. 그리고 두 마리만 남은 이유는새끼들이 다 커서 먼저 갔을 수도 있고, 새끼가 다 죽었을수도 있다고 했다. 자연에서 새끼를 모두 성체로 키워 내는 것은 굉장히 낮은 확률이라고도 하셨다. 이야기를 듣고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모두 잘 자라 안전한 곳으로 먼저 떠난 거라고 믿기로 했다. 이번 여름에도 또 이곳으로 돌아와 생활해 주면 좋겠다.

쇠물닭은 그저 제 삶을 묵묵히 살아 낼 뿐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다채로운 여름과 연결의 기쁨을선물했다.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나는쇠물닭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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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쓰기
김연수 외 지음 / 물결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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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되면 얼른 바다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게 되지요. 하지만 린드버그는 그때가 바로기다려야만 할 때라고 말합니다. "인내, 인내, 인내야말로바다가 주는 가르침이다. 인내와 신념, 바다처럼 꾸밈없이 모든 것을 비우고,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바다의 선물을 기다려야 한다"라고 린드버그는 썼습니다. 바다에서는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그 책에서 배웠습니다. 그 뒤로 바다에 갈 때마다 저는 그 책을 배낭에 넣습니다. 바다에서는 기다림,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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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서의 패션 - 도쿄대 패션론 집중강의
히라요시 히로코 지음, 이현욱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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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브랜드의 상품을 생각해 봅시다. 친한 친구가모두 특정 인기 브랜드의 가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가지고 있으니 나도 같은 것을 사서 무리의일원임을 보여 주려 합니다. 하지만 모두 똑같다면개성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같은 브랜드의가방이지만, 인기 상품이 아니라 새로나온 한정판가방을 구입합니다. 남과 다른 나만의 양식을표현하는 것입니다.

패션은 특정 모형을 모방하지만, 같은사회에 사는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은 동일화의 바람,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차별화의 욕망을 동시에이름니다. 이처럼 지멜은 근대도시의 발전에 따른개인과 집단의 관계로 패션을 설명했습니다.

우아한 드레스가 우아함이라는 목적에 도움이 되는것은 단지 고가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가함도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입은 사람이 비교적 큰가치를 소비할 수 있음을 보여 주면서 아무것도생산하지 않고 소비한다는 것도 입증한다.
이렇게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보란듯이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함으로써, 한 집안의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드의 체계》를 쓴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정말이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이름이며,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것은 꿈이 아니라의미의 행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성을 위해활동적인 패션을 만들어 낸 샤넬, 새로운 여성의삶을 내보인 샤넬. 샤넬의 슈트(Chanel‘s suits)는 샤넬슈트(The Chanel suit)라는 불변의 명칭을 획득함으로써영원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샤넬은 말에서 말로전해지며 계속 살아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샤넬을 이야기한 것도 샤넬을 신화화하는 데 어느정도 이바지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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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찬란한 아름다움
정승익 지음 / 성서와함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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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 안에는 자기 존재를 실현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중력에 반응하는 자기 ‘무게(pondus)‘처럼 내재해 있다. 오늘날우리는 과학의 발달로 만유인력 같은 개념에 친숙하다. 물리적 차원에서 중력의 법칙은 개개 사물의 무게(질량)에 따른 운동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돌을 들었다가 놓으면 그 돌은 당연히 땅으로 떨어진다. 무언가를 태울 때 그 연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물 위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기름은 물 위로 올라간다.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의 무게에 따라 자신이 돌아가야 할 그 자리로 향하는 ‘운동(motus)‘이나 ‘경향(inclinatio)‘을 갖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무게에 따라 향하는 그 자리를 일컬어 ‘존재의 자리(locus naturalis)‘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돌의 존재 자리는땅, 연기는 하늘이 될 것이다.

‘"모든 만물에는 자신의 고유한 ‘무게‘에 따라 자신에게 속한 ‘고유한 자리‘로 도달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게‘는단순히 아래쪽으로만 기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존재론적 고유한 자리로 기울게 합니다. (예를 들면) 불꽃은 위를 향하고, 돌은 아래로 기웁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무게‘들에 따라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것입니다. 물에 부어진 기름은 물위로 떠오르고, 기름 위에 부어진 물은 기름 아래로 가라앉게됩니다. 각자의 ‘무게‘에 따라 움직이고, ‘존재의 고유한 자리‘로 향합니다.

만일 이러한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불안과 동요가 있게 되고, 질서 안에 존속할 때는 평화가 있게 됩니다. 나의 ‘무게‘, 나의 사랑이여! 나를 어디로 기울게 해도나는 그리로 향할 것입니다! 당신의 선물로 인해 우리는 불타오르며 위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영혼)는 불타오르고 움직일 것입니다!"

"사랑은 영혼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물리적 세상에서 중력은 인간 영혼의 차원에서 사랑이라는 운동 개념으로 변화한다("Pondus meus amor meum"). 그런데인간 영혼이 향하는 존재의 자리가 완성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닮음(하느님 모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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