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찬란한 아름다움
정승익 지음 / 성서와함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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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 안에는 자기 존재를 실현하려는 강력한 운동이 중력에 반응하는 자기 ‘무게(pondus)‘처럼 내재해 있다. 오늘날우리는 과학의 발달로 만유인력 같은 개념에 친숙하다. 물리적 차원에서 중력의 법칙은 개개 사물의 무게(질량)에 따른 운동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돌을 들었다가 놓으면 그 돌은 당연히 땅으로 떨어진다. 무언가를 태울 때 그 연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물 위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기름은 물 위로 올라간다.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의 무게에 따라 자신이 돌아가야 할 그 자리로 향하는 ‘운동(motus)‘이나 ‘경향(inclinatio)‘을 갖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무게에 따라 향하는 그 자리를 일컬어 ‘존재의 자리(locus naturalis)‘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돌의 존재 자리는땅, 연기는 하늘이 될 것이다.

‘"모든 만물에는 자신의 고유한 ‘무게‘에 따라 자신에게 속한 ‘고유한 자리‘로 도달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게‘는단순히 아래쪽으로만 기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존재론적 고유한 자리로 기울게 합니다. (예를 들면) 불꽃은 위를 향하고, 돌은 아래로 기웁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무게‘들에 따라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것입니다. 물에 부어진 기름은 물위로 떠오르고, 기름 위에 부어진 물은 기름 아래로 가라앉게됩니다. 각자의 ‘무게‘에 따라 움직이고, ‘존재의 고유한 자리‘로 향합니다.

만일 이러한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불안과 동요가 있게 되고, 질서 안에 존속할 때는 평화가 있게 됩니다. 나의 ‘무게‘, 나의 사랑이여! 나를 어디로 기울게 해도나는 그리로 향할 것입니다! 당신의 선물로 인해 우리는 불타오르며 위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영혼)는 불타오르고 움직일 것입니다!"

"사랑은 영혼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물리적 세상에서 중력은 인간 영혼의 차원에서 사랑이라는 운동 개념으로 변화한다("Pondus meus amor meum"). 그런데인간 영혼이 향하는 존재의 자리가 완성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닮음(하느님 모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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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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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기계가 우리의 정보채널을 선전 선동과거짓으로 넘쳐나게 만드는 걸 허용해야 할까? 모든 직업을 자동화해야 할까, 인간을 충만하게 하는 일들까지도? 어느 순간 우리를 수적으로 능가하고,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쓸모없게 만들고,
우리를 대체할지도 모르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할까? 문명에대한 통제권을 상실할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

환경을 지키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28 물론 자동차는 그 어떤 소비재보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성과 행동 사이의 괴리를 단순히 자동차에 대한 집착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니 말이다. 이와 관련해 20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조사의 결론은 이렇다. "시민들이 기후변화를 걱정한다고 하여, 그에 상응하는 조치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29기후위기와 축사 환경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육식을 지양하자고 제안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할지 떠올려보라. 자국의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들의 이민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그나저나 우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인터넷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사 결과 독일인의 80퍼센트가 인터넷 산업을 불신한다고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한 번 클릭할 때마다 드러나는 자신의 취향, 생각, 감정, 성격 등의 정보가 결코 우리에게 유익하게만 사용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찝찝함을 느낀다. 응답자의 단 3퍼센트만이구글, 아마존 등이 자신의 데이터를 어떻게 취급하든 알 바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마치 이런 정보 노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행동한다. 독일인의 87퍼센트가 서비스 제공자가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할지 의심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서비스들을 이용한다.33 좀 더 안전한 유료 앱을 쓰는 대신 의심스러운앱을 무료로 사용한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런 모순된 심리를 정확히 보여준다. 많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치 성향을 낯선 사람들이 알게 될까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려를 드러낸 사용자들 중 거의절반이 이미 오래전 성적 지향이나 정치 성향을 보여주는 게시물을 올린 상태였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몇개의 ‘좋아요‘를 받으려는 기대에 모든 우려를 깨끗이 잊어버린듯 말이다.

<로마서>의 바로 다음 구절에서 그는 놀랍게도 교묘한 사고를 선보인다. 그는 악을 행하는 장본인이 스스로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다른 힘이 그를 불행으로 내몰고 있다고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 일을 하는은 내가 아니고 내 속에 거하는 죄이다"라고 말이다.
바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며, 죄 앞에서 자신은 무력하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구원을 통해 구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한다-모든 것이제자리를 찾기를 희망한다.바울이 최초로 묘사한 이 같은 사고방식을 오늘날에는 중화기제 techniques of neutralization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리는 결정 조차 지구 반대편에있는 지역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더 이상 몰랐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그 연관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까. 유럽에서 티셔츠를 구입하는 사람은 아시아에서일어나는 노동력 착취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셈이며, 차에시동을 거는 사람은 후대가 짊어져야 할 짐을 공기 중에 내뿜는 셈이다.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은 공장식 축산으로 키워지는동물들의 고통뿐 아니라, 소의 대량 사육이 상당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삼림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자신의 책임을 축소하려 해봤자 소용없다.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윤리학자 존 놀트John Nolr는 한연구에서 산업국가의 평균적 시민이 일생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다음 세대에 최소 한 명 이상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35동시에 우리는 도덕적 존재다. 선하게 살고 싶어 하며 그렇게살 때도 많다. 심리학에서는 바울이 맨 처음 묘사한 정신상태를
‘인지부조화‘라 부르는데,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만큼 인지부조화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신념과 태도, 행동이 서로 상충되면 이성은 인지부조화를 겪는다. 우리는 이런 모순을 최소한 어느정도는 인식하고, 인지부조화를 음이 안 맞는 음악처럼 불쾌하게 느낀다. 실제로 인지부조화는 라틴어로 ‘정신적인 불협화음‘을 뜻한다. 인간의 이성은 조화를 갈망한다. 그리고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우리가 자초한 모순이다.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행동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딜레마다.

자정 1분 전, 우주선이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 남자가속삭였다. 벽시계가 잘못되었나봐. 그는 벽난로 선반 위의 두번째 시계를 가리켰다. 그 시계는 정말로 10분 더 느리게 가고있었다. 사람들은 벽시계의 시곗바늘을 제대로 맞췄다. 새로 조정한 시계로 자정이 되기 1분 전, 시스터 테드라는 희망에 차서외쳤다. "아직 그 어떤 계획도 빗나가지 않았어요." 우려스러운점은 여전히 클라리온의 외계인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사람이 누군가 아직 금속 조각을 몸에 지니고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사실이었다. 한 단원이 치아를아말감으로 때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빨을 뽑았다. 하지만 우주선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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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마다 갇힌 것과 깨부수는 장면을 동시에상상한다. 엘렌 식수의 말을 빌려 글쓰기는 H이기 때문이다.
H, 이 글자는 두 개의 I와 그 사이를 잇는 하나의 선으로이뤄져 있다. 두 ㅣ는 각각의 다른 언어이며, 가운데 선은그 둘을 잇는다. 여기까지는 식수의 말이다. 나는 이것을이렇게 해석한다. 내가 내 안에 깊숙이 가둬둔 언어, 가둬둔것을 깨부수고 꺼내는 또 하나의 언어, 그리고 그 둘 사이를격렬하게 잇는 것. 그것이 바로 H, 글쓰기라고.

또한 식수는 H에서 ‘사다리의 윤곽‘을 봤다. 그는그것을 ‘글이 오르는 사다리‘라고 불렀다. 식수의 말에 의하면이 사다리는 ‘내려가는‘ 쪽으로 움직인다. 웅덩이 아래로,물속으로, 차가운 바닥으로, 일단 내려가봐야 한다. 그래야 그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또 무엇을 부수고 올라와야 하는지 알수있다

뒤라스의 산문집 《물질적 삶》에서 그의 주방 벽에 붙어있던 물건의 목록을 본 적이 있다. 가는소금부터 락스, 철수세미, 절연 테이프까지 꼼꼼히 적혀 있던 생필품들. 두번의 전쟁을 겪었던 그의 어머니가 늘 벽장 속에 채워뒀던물품들과 꼭 닮은 목록이다. 우리는 어머니가 만든 집을 떠나어머니를 닮은 집을 만들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우리에게돌아갈 집 그 자체가 되어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그런 집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자들이다. 뒤라스의세계에서 집으로 유토피아를 창조하고, 스스로 집이 되고,그곳에 결국 ‘혼자’남게 되는 것은 언제나 여자들이다.

뒤라스의 어머니는 ‘개간 가능한 토지‘라는 정부의말에 속아 황무지를 매입하며 전 재산을 잃었다. 하지만포기를 몰랐던 그의 어머니는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으려했다. 태평양을 막으려는 여자와 그가 쌓은 제방을 매번무너뜨리는 바다. 내게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신화, 정확히는실패한 신화처럼 읽힌다. 이렇게 실패한 신화는 우리의삶에 두 가지 방식으로 남는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우리를형성하거나, 뒤라스에게는 양쪽 다였던 듯하다. 어머니와바다는 평생 그를 괴롭혔고, 또 그를 형성했다. 어머니와바다가 없었다면, 그 둘의 광기를 목격하지 않았다면뒤라스의 문학이 존재했을까. 오해는 없길 바란다. 뒤라스의문학을 만든 것은 광기를 응시했던 그의 시선이지 광기 그자체는 아니다.

뒤라스의 눈으로 여자와 바다를 보자. 무너질 것을알면서도 다시 제방을 쌓는 여자. 그 여자의 행위는현실의 부정이 아니라 반복의 중독에 가깝다. 무너진 것을다시 세우고 또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은 제방이성공하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세우지 않는 상태를 견딜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자의 광기는 이해할 수 없는행위가 아니라, ‘멈출 수 없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뫼르meurs‘는 프랑스어 동사, ‘죽다(mourir의 일인칭현재형과 철자가 같다)‘를, ‘소saut‘는 ‘도약‘을 떠올리게 한다.
죽음과 움직임, 멈춤과 도약이라는 이중적인 이미지가담긴 이름이다. 한낮의 태양과 닮았다. 생명의 근원이자만물을 비추는 빛이 숨 막히는 열기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재앙을 예감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태양에도 그이중적인 얼굴이 있다. 작열하는 빛에 이마에 땀이 흐르고,뜨거운 열기가 목덜미를 파고들 때,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사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불편함과 고통을 견뎌야 하는육체로 축소된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슬픔도 예외는아니다. 하지만 그는 태양과 싸울 수도, 그것을 이해할 수도없다. 그저 견딜 뿐이다.

의미 없이 산꼭대기까지 바위를밀어올리는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처럼. 애도의순간에도 냉혹하게 빛을 쏟아내는 태양, 고통에 상관없이계속 굴러떨어지는 바위, 인간의 감정과 세계의 무심한사이의 이 간극을 카뮈는 ‘부조리‘라고 불렀다.

피해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글은 고발의 열기로뜨거울 수 있지만, 우리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틀 안에창작물,
갇히게 된다. 반대로 만족은 세계에 안주하게 한다. 자신의위치에 안주하는 순간, 예술가는 더 이상 질문하지않고, 질문이 없는 예술은 생명력을 잃는다. 카뮈에게 가난과빛은 그 두 극단을 막아주는 장치였다. 전쟁에서 사망한아버지, 글을 읽지 못하고 청각이 좋지 못했던 어머니, 좁은집, 어릴 때부터 침묵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일상을 살아온그는 일찍부터 세계의 불공정과 침묵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가난은 비참한 불행이 아니라, 세상의 본질을 날것 그대로마주하게 하는 힘이었다.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 정확히아는 사람은 쉽게 자기연민이나 오만에 빠지지 않으니까.
또 그에게는 유년의 햇살이 있지 않았던가. 그의 말을 빌려고향의 태양은 그에게 ‘가난이 불행이 되지 않도록 빛을뿌려줬고 그가 현실을 반항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수용하게하는 원동력이 됐다.

카뮈는 《최초의 인간》을 쓰기 시작한다.
알제리의 유년과 어머니, 가난과 빛의 세계로 돌아가는이야기다.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은 후에 거대한 이념이아니라 가장 사적인 기억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카뮈답다.
정의를 지지하는가,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가를 묻는 말에
‘정의보다 어머니를 지키겠다‘라고 말했던 카뮈가 아닌가.
추상적 이념보다 구체적 생명을 택한 카뮈에게서 내가 배우고싶은 것은 대단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한계 안에서 인간이지켜야 할 품위이다.

1960년, 상스의 국도에서 자동차 한 대가 플라타너스나무를 들이박는다. 그 사고로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카뮈가즉사한다. 부조리를 말했던 철학자의 삶은 이렇게 부조리로끝났다. 사고 당시 그의 가방 안에는 《최초의 인간》의 원고가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로 삶은 멈췄지만, 한 인간이 남긴의미는 소멸하지 않았다는 의미였을까. 어쩌면 그것이 카뮈가말하는 마지막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없듯이 우리는 부조리를외면하거나 초월할 수 없다. 하지만 카뮈의 말처럼 그것을마주하며 세계와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는 법을 배우고자기만의 창조적 방식으로 반항할 수는 있다. 삶에 초월적구원은 없겠지만, 스스로 의미를 만들면서 순간의 아름다움과기쁨에 집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카뮈가 그랬듯이 어쩌면그런 것들이 절망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게 하는 힘이되어주지 않을까.

바람이 잠잠해진다. 다시 빛이 방 안을 휘감는다.
이제야 신이 침묵하는 이유를 알겠다. 신은 답하는 자가아니라 질문하는 자. 그는 빛을 창조할 수 있지만, 의미를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오롯이 빛을 가진 자의 몫이다.
이 빛은 내게 무엇인가. 내게도 질문이 왔다. 답을 찾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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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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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잠은 적이다. 우리는 날마다 커피를 입안에들이부으며 잠과의 전쟁을 치른다. 많은 이들이 잠자는 것보다 무언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하지만 잠은 뇌 안의 기억 공간을 확보하고,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며, 나쁜 경험을 좋게 만들어 주고, 몸을 회복시키고 면역력을 높이는 최고의 보약이다. 피곤한데도 안 자고 일하느니, 그냥 자는 게 행복한 삶을 사는 데더 도움이 된다. 잠이야말로 우리가 변치 않고 챙겨야 할 가장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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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 일의 시대는 어떻게 읽는 사람을 집어삼켰는가
미야케 가호 지음, 서영찬 옮김 / 동아시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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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책도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노동 방식이 ‘보통‘인 사회가 이상한거잖아!?‘

어떻게 해야 일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수이 질문의 본질을 파고들면 결국 이러한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인간답게, 노동과 문화를 양립시킬 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과 함께 ‘일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지금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보자.
왜 일을 하면 책을 읽을 수 없는 걸까?

내 친구들이 "가슴에 와닿았다"라고 말한 지점은 무기와 키누의 연인관계 그 자체보다 오히려 독서에 대한 무기의 태도였다. "일을 하기 시작한 무기가 책을 못 읽게 되고,
허무한 표정으로 <퍼즐앤드래곤> (2012년에 출시하여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모바일 게임)을 하는 장면, 딱 ‘나구나!‘ 하고 생각했어." 친구들은 몇 번씩이나 그렇게 말했다. 일을하기 시작하면 책을 못 읽게 된다는 말은 아무래도 영화속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 듯하다.

학습서적을 살 정도로 배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복받은사람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격차는 동기부여 단계에서 가장 먼저드러난다(가리야 다케히코谷剛, 『계층화하는 일본과 교육 위기: 불평등 재생산에서 의욕격차사회』, 유신도 코분샤有信堂高文社, 2001-원문주).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기에 배움의 동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공부니 학문이니, 다 소용없어"라며 툭 내뱉고 마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운 좋게 동기를 가질 수 있었던 ‘복 받은 이들‘을헐뜯기까지 한다. 한편 헐뜯는 자들을 얕잡아 보는 ‘의식이 높은이들‘은 스스로를 배움의 동기가 부여된 부류라고 생각하고 싶은 나머지, 이런저런 학습 서적을 닥치는 대로 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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