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정치면 기사 속에는 온갖 갈등과 분노를 표출하는 공격적인 단어와 문장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단어와 문장에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장착되어 있어, 그런 날카로운 대화나 기사들을 듣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이 증오와 폭력의 언어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제도로서의민주주의는 안착되었지만 ‘심리적 차원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요원한 것 같다. 심리적차원의 민주주의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제 민주주의가 절차적 차원과제도적 차원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고 믿는다. 심리적차원의 민주주의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민주주의이며, 내 주장을 말했을 때 남들이 받을 충격이나 상처까지 헤아리는 민주주의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비폭력적인 대화, 타인의 마음에 상처와 충격을 주지 않는대화를 나누는 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어웨이(Away)>를 보며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대화의 기술을 배웠다. 3년 동안 화성탐사선을 타게 된 우주비행사 엠마 그린(힐러리 스웽크)은 젊은 여성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아 리더십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다. 여성에 대한 교묘한차별, 나이 어린 리더에 대한 불신, 팀원들의 질투와 오해, 3년 동안 어린 딸과 남편을보살필 수 없게 된 상황 등으로 인해 ‘화성탐사선의 리더‘라는 영광보다 그로 인한 고통이 더 큰 것이다. 하지만 엠마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베스의 가족과 이웃은 베스의 내성적인 성격을 향해 그 어떤 비난도 질책도 하지 않는다. 베스가 남들보다 좀 더 천천히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한없이 기다려주고, 그녀가 자신의 재능과 마음을 숨기려 하지만 말없이 온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깊은속내를 헤아려준다. 비폭력 대화란 이런 것이다. 그 어떤 판단도 조건도 유보하는 것,
그가 언젠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길을 열어주는 것. 조건 없는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차분한 기다림은 어떤 마음의 장벽도 밀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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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부풀다 절망으로 꺼진 자리,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텅 빈 자리와 텅 빈 말이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걸었던가.
목적과 이유를 잃고 오래 허둥댔다. 그러나 ‘위해서 와
‘때문에‘를 지워가니 침묵이 소리를 내고 빈자리가 모습을 보인다. 희망이 눈을 빼앗고 절망이 눈을 감게했던 자리. 도대체 이 침묵과 빈자리를 어떻게 대해야하는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말은 하고 싶다. 이정표를 잃은 곳에서 길이 보인다. 아, 나는 이런 길 위에 있구나.

정작 나 자신이 듣지 못했으면서 함부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언해버렸다. 내 안의 영리한 철학자가 자신의 듣지 못함을 그들의 말하지 못함으로 바꿔치기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수십 번이고 똑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준 야학 학생들 덕분에 겨우 몇 마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알아차린 것 하나. 세상에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다만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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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미米 자에 팔십팔八十八 자가 숨어 있잖아. 건조한 숫자라도 보기에 따라서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어. 아라비아의 숫자 8은 또 어떻고, 옆으로 눕히면 수학의 무한대의 기호가 되지. 그리고 안과 밖이 연접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기도 해. 둘 다 일상의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한 세계의 이야기잖아. 한자의 팔도 마찬가지야. 글자 모양을 보면 끝이 열려있어. 그래서 앞날이 환히 열린 개운開運을 상징하고, 그 발음 역시 ‘펼 발자와 같아서 발전發展, 발재發財의 뜻과 통해, 중국 사람들은 자동차 번호나 전화번호에 팔자가 겹친 것이 있으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요."

"눈에 선해요. 코로나 때문에 작은 일상의 행복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운 뒤통수가 보이는 것 같아요."
"별것 아닌 모임, 사사로운 오후의 대화, 이런 일상의 작은욕망도 무참히 짓밟혀버린 코로나 팬데믹의 격리 생활, 그게바로 솔제니친의 굴라크 군도 정신병동이거나 안네가 겪었던유태인 구역의 은신처이거나 나치의 집단 수용소 아니겠어. 아니면 전쟁 때의 포로수용소와 방공호 속이거나. 우리는 지금그 같은 격리된 감금의 역사를 살고 있는 거지. 코로나가 아니라도 벌써 그런 상황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었던 거지.
이 눈물 없는 황무지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얻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내가 만약 유럽에서 태어났고 누군가 내게 우리 가문의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면 나는 이걸로 정했을 거야. ‘왜?‘ 어떻게?‘ 하는 물음표가 있어야 ‘아!‘ 하고 무릎을 탁 치는 느낌표가 생기지.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야."
"어른이 되어서도 물음표는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우엉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삶이었어. 누가 나더러 ‘유식하다, 박식하다고 할 때마다 거부감이 들지. 나는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거든.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여겨도 나 스스로 납득이 안 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어.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는 것복하면 산 게 아니지."
어제와 똑같은 삶은 용서할 수 없어. 그건 산 게 아니야. 관습적 삶을 반이 내 인생이고 그 사이에 하루하루의 삶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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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피노키오는 진실이 아닌,
혹은 논리학자들의 표현대로라면 ‘참이 아닌 이야기를 해야만코가 길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어" 라는 피노키오의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일까, 거짓일까? 만약피노키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코는 길어지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지금 내 코가 길어지고 있어" 라는 말은 거짓이다. 반대로 피노키오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면 코는 길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참이다. 그렇다. 이것은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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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라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그렇게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당연하지." 노인은 무슨 단단한 것이라도 뱉어내듯이 말했다.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게 하나라도 있는가." 그러고는 행을 바꾸듯 간결하게 헛기침을한 번 했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인생의 크림." 그가 말한다.
내가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빠져나갈 때처럼."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다보면 다시 알 수 없어졌다. 그러기를 되풀이한다. 아마 그것은구체적인 도형으로서의 원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원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무언가에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이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거나, 신앙(혹은 신앙 비슷한 것)을 발견하거나 할 때,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그 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되는 게 아닐까 ㅡ 어디까지나 나의 막연한 추론일 뿐이지만,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크림이 되거든.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백발의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가을이 끝나가는 흐린 일요일 오후, 고베의산 위에서. 그때 나는 작고 빨간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지금도 여전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특별한 원에 대해, 혹은 하찮고 시시한 것에 대해, 그리고 또 내 안에 있을 특별한 크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볼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살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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