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도입부에서는 야구가 실패와 함께하는 게임이라고 단언한다. 우승을 거둔 팀은 1년에 60~70 경기를 패하게 되어 있다. 연봉이 1000만 달러가 넘는 데다 야구의 명예의 전당에 진입한 위대한 타자들은 열 번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6~7번 실패한다. 야구의 가장 냉혹한 의미는 승리가 아닌 실패에 있다. 실패를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대처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패와 어울려 살아가는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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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성이라는 개념은 무척이나 모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지도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현실을 잘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현대인들은 익명의 사람들 틈에서 간섭받는 것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고독, 외로움, 관계의 상실, 무위(無爲), 소외의 상태에 빠지는 것 역시 두려워합니다. 이처럼 친밀하고 유대적인 관계‘와 ‘낯선 익명의 관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거리 조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횡단성의 상태인 것 같습니다.

…서로 몸을 껴안아 따뜻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가시가 서로를 찔러서 너무 아파 그들은 곧 다시 흩어졌다. 그러나 추위는계속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한 번 가까이 모였고 다시 한 번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두 악(추위와 가시로 인한 아픔)에서 자신들을보호하기 위한 아주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기까지 이렇게 모이고 흩어지는 일이 계속되었다."

얇은 정보량이 많아야 성립되는지 적어야 성립되는지의 문제도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는 환경에서 앎과인식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량의 정보를 분류하고 처리하는과정에 이내 지칠 테니까요. 오히려 정보 값이 적을수록 앎이 비로소가능하게 됩니다. 정보 엔트로피 값이 높을 경우에 앎이 성립된다는,배움에 대한 기존의 교육관은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달달 외우는 식의 수용자적 태도로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보 엔트로피값이 낮아야 비로소 습(習)으로서의 앞을 체득할 여지가 생깁니다.

여기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위해서 전 세계를 여행해야 할까?
아니면 가까이 있는 사람의 깊이와 잠재성을 발견해야 할까?‘라는질문이 등장합니다. 엄밀히 말해 둘 다 맞는 얘기입니다. 멀리 떠나더라도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면 유목민이 아니고, 떠나지 않더라도언제나 새로움을 발견하고자 하면 정주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들은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자신이 머무르는 장소에 대한독특한 촉지적 느낌을 가지고 존재합니다. 떠나는 노마드, 즉 이행하고 횡단하는 노마드와 머무르는 노마드, 즉 둘레환경의 깊이와 잠재성을 발견하고 시추하는 노마드로서의 면모를 둘 다 갖고 있는 셈이지요. 머무르는 노마드‘라는 개념에 대해 역설적이라고 느낄 수도있겠습니다만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공간, 인물, 대상으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할 줄 안다면 그것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닌 것에 필적하는노마드인 셈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치는 결코 일방적이거나 자동적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상황에 따라 생각과 말과 행동의 조각을 끊임없이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는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배치를 반복으로서의 배치인 ‘기계적 배치‘와집합적 편성으로서의 배치인 ‘집단적 배치‘로 나누어 말하기도 합니다. 기계적 배치는 ‘차이 나는 반복‘과 ‘동일성의 반복‘이라는 두 가지 반복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계절, 생애 주기, 낮과 밤,밀물과 썰물 등은 차이 나는 반복의 배치입니다. 생명과 생태, 생활은 계속 반복되지만 그 생명력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 나는 반복의 형태를 띱니다. 차이 나는 반복은 생명과 삶을 만드는 우리 살림의 배치인 셈입니다. 반면에 그야말로 단순하고 기계적인 동일성의 반복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군대, 감옥, 병원 등은 동일성의 반복으로서의 문명을 주조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한 마리의 고양이는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난 시간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 고양이를 ‘대심이‘라고 호명함으로써 생명의 유일무이성을 각인한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습니다. 대심이와의 시간은 이 순간이 삶에서 단 한 번뿐인 ‘실존의 시간‘, ‘삶의 시간‘, ‘생명의 시간‘임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찰나는, 이 순간이 유한한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순간이라는 점에서 더 소중하게 아끼고 돌봐야 하는 생명살림의 의미를갖습니다. 시간의 깊이와 잠재성으로 더 들어가기 위해서는, 찰나의의미를 소비하고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주변 가까이를 보살피는 행위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미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까닭은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그 돌봄을 통해서 자신이 더욱 성숙해 가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봄은 돌보는 자기 자신이더 미세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환대의 의미는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그저 낯선 것에 대해 마음을 여는 정도의 환대가 아니라, 나의 약점과 허점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확 열어두겠다는 것이 환대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 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낯설고 이질적인 사람이 다가오면우리는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나기 십상입니다. 더 나아가 낯선 존재가 다가오면 더럽다며 혐오하거나 배제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환대는 단지 낯선 이방인을 위한 행동이 아닙니다. 낯선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삶을 재발견하고 재창조하여우리 자신이 풍부해지고 다양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다양성은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에 대한 차별이 아닌 존중의 태도에서시작됩니다.

관계없음의 지평은침묵하고, 고요하고, 시선만 보내고, 얼른 자리를 피하고, 더럽다고생각하는지 관여하지 않고, 어떤 소동이나 갈등조차도 없는 고립무원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없음의 지평이 우리 사회를 장악한 혐오의 정체입니다. 관계 자체가 갖고 있는 사랑, 욕망, 돌봄의 특징에 대해서 사람들은 촌스럽고 낡은 구닥다리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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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벨은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으로 살라." 거짓 논리로 현실이 지탱되는 사회에서는 진실과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위협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죄의대가가 가장 무거운 법. 그래서 "모든 개개인이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고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힘없는 자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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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루고자하는 물음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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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없는 나라가 있고 연애소설이 없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알았을 때, 뭐? 하며 놀란 적이 있다. 노을이 없는 나라에 노을에 대한 시가 많고 연애소설이 없는 나라에 성性에 대한 갈등도 없다는것을 알고 또 한번 놀랐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해가 지면 곧 어두워지기 때문에 노을을 볼수 없다고 한다. 노을에의 그리움 때문인지 노을에 대한 시가 가장많고, 스웨덴에서는 성이 개방적이고 자유스럽기 때문에 성에 대한결핍과 갈등이 없어 연애소설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 그것은 새로운 것이며, 오래된 것일수록 현재의 의미를 갖는다는 말을 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나는, 시를 남겨두고 시의 뒤로 숨어버린 시인들이 가장 멋진 시인들이 아닐까싶었다. 왜냐면 가장 멋진 시인들은 자기 독자들과 함께 죽어서도살아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이다. 그 멋진 시인들의 독자가 되어 나는 시를 읽는 내내 감동하면서 행복했다.

"아픈 물고기들을 치료하려고 물에다 귀를 대요. 물고기의 말을 듣고 치료해 주는 거죠."
《둘리틀 선생 항해기》에 나오는 수의사 둘리틀 선생의 말이다.
물에다 귀를 대고 물고기들의 말을 들으려는 수의사의 마음을 어떻게 신기한 몽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수의사의 말 옆에다 시인의 말을 놓아 본다.
"아픈 사람들을 읽으려고 가슴에다 귀를 대요.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아픔을 달래 주는 거죠."

중세 아랍문학의 대표작인 《아라비안나이트>에 여자 노예 이야기가 나온다. 타와우드‘ 라는 여자 노예는 재색을 겸비한 노예다.
빚진 금과 1만 디냐르에 팔려간 그녀에게 주인이 장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시 짓는 일에 뜻을 두고 우드를 잘 타며 그 곡에 맞추어어떻게 노래를 부를 것인지, 그 현을 어떻게 울릴 것인지를 터득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런 것들이 금화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자부했던 중세 아랍의 서정시는 우드의 현과 더불어 귀중한 재산이나 보물처럼 여겨왔다. 나는 타와우드의 ‘어떻게 란 말이, 시는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 겹쳐져서 예사로 생각되지 않는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사랑받는 것 … 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사랑보다 우정이 오래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잠기다.
가 헤세가 생각한 우정을 떠올려 보았다. 무엇을 구하지 아니하고어린애처럼 단순한 심성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아름다웠다는 헤세의 곧은 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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