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는 안단테 - 김형석 에세이
김형석.스토리베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교를 졸업할 때 은사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창작의 영역에서 스승이란, 제자의 손을 잡고 만리장성 앞까지 와서 제자가 스승의 등을 밟고 올라가 만리장성을 넘어가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자가 그 만리장성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그의 세상이다."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안내하고받쳐주는 스승이 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카메론》의 원서는 ‘인간답다Umana‘라는 단어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하다. ‘인간답다‘ 함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만, 신과 달리 재난과 운명에 취약하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이런 불운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 연민, 예의 바른 태도, 다정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정원이 기적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14세기 피렌체에 살았던 열 명의 남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나마 함께 웃고 울며, 기쁨을 주고 위안을주는 곳이 될 수는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식의 탐구와 실천 자체는 무해하지만, 방향성을 잃은 탐색은 이렇게 위험하다. 여기에는 정원 일도 포함되는데, 어디 허리라도 다치기 전에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모든 것에 실패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이들이 다시 필경을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들은 머지않아 또 정원 일을 시작할 것이다. 정원은 그런 것이다.

소설은 낙원과 같던 핀치콘티니 가문의 세계가 인종법과 파시즘, 홀로코스트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몰락 직전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담히 보여준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와 동시에 금방 닥칠 겨울의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눈부신 가을은 그 이후의 역사를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욱더 비극으로 다가온다.

조르조는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아 핀치콘티니가의정원과 그곳에 있던 이들을 기억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한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글쓰기란 "묻히지 못한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보이지 않는 비석"이라고 했다. 하나의 단어가 한 사람의 얼굴, 하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 홀로코스트와 같은 수많은 죽음을 수긍하는 일은 이를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억하고 기록하면 이들은 그저 숫자로 추상화되는 익명의 망자로 지워지지 않고, 이름이 있는, "언젠가 산적이 있는 사람들"이 된다. 이들의 눈부신 시절을 기억하고, 또 기록하여,
이를 다시 역사 속에 놓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임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상대측과 마주치고 말았다. 우리 쪽 둘, 상대 쪽 둘. 네 명 모두 숨 한번 크게 쉬지못하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숫자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때, 상대 쪽 직원이 별안간 침묵을 깼다. 그가 한 말은 귀를 의심해야 할 만큼 그 상황에서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혹시...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 발톱을 내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나를 공격해온 사람이 내게 사인 요청이라니. 무려 법원에서 조정을 앞두고 어색하고 뻘쭘한 얼굴로 내게 요구하는 게 고작 사인이라니…

사인이라니. 허탈함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긴장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결심했다.
‘오늘 합의해줘야겠다.‘
화가 나고 서운했던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과 나를 그렇게 만든 ‘세상‘
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새처럼, ‘현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사람과 사람 간에나쁜 감정이 없어도 사회와 세상이 정한 역할에 따라 서로미워하고 등 돌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역지사지의 의미를 알려준, 운명의 엘리베이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속도는 안단테 - 김형석 에세이
김형석.스토리베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이켜보면,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소소한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좋아서 노를 젓던 카약을 탄 것과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작은 카약은 강물을 벗어나 바다로가는 돛단배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모터가 달린 크루즈가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아날로그와디지털을 거쳐 A.I.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하고 싶은 이야기도 조금씩 쌓였다. 음악, 프로듀싱, 제작,사업, 작곡,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내가 삶에서 만나고 있는것에 대한 고민이 하나둘 이어져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쓰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슬프게도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은 이상 ‘리스너’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가?
어떤 지점에서 이 음악이 ‘좋은 음악‘으로 평가받는가?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수도 없는질문을 던지며 음악을 분석하는 것이 내 일이다.
누구보다 마음을 다해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만으로 음악을 대할 수 없는 것이 작곡가의 숙명이다. 음악의 설계자라면, 영감은 마음에서 얻더라도 설계는 머리로 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음악이 나아갈 길을 생각하면더 그렇다. 의상, 춤, 가사, 여러 마케팅까지, 음악은 더욱많은 곳에서 응용될 것이다. 분석, 또 분석해서 대중이 음악을 사랑하는 바로 그 지점, ‘마스터키‘를 찾아내야 내가음악인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모순적이다. 마음도 바쁘지만, 머리도 바쁘다.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 내가만드는 음악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마음과 머리를 굴린다.

많이 읽은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림을 많이 보는 사람은 화가들일 것이고, 요리를 많이 한사람은 요리사일 것이다. 음악도 그렇다. 많이 들어본 사람을이겨낼 도리가 없다. 내게는 음악이 생활 그 자체였다. 세수하고 이 닦고 밥 먹는 것처럼 피아노 소리는 항상 내곁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리면 이런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다음 멜로디는 이렇게 쓰겠어.‘
가요든 동요든 가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다음 멜로디를 상상했다. 그러다 다음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내가상상한 멜로디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썼네. 멜로디 정말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 연결. 특이점singularity. 기본 소득basicincome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인연이나 자유에 대한 강조, 타자에 대한 배려, 타자와 맺는관계의 번거로움 등과 같은 다양한 국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 책에서 홍콩에서 살아가는 탄자니아인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형성하는 경제 구조를 독해하여 우리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힌트를 제공할수 있다면 좋겠다

호수성:
문화인류학 용어로, 영어 reciprocity 등의 번역어다. 보통
‘호혜‘로 많이 번역되며 ‘상호성‘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책 뒷부분에도 나오듯이 이는 좋은 의미의 ‘혜(惠)‘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며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에 여기서는 국내에 번역된 가라타니 고진 등의 책을 참고하여 ‘호수성‘으로 번역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