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신비를 찾아 헤맨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으니까.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든가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대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아버지는 웃으면서, 유리로 만들고 형광색을 칠한, 약간 조악한 입체 은하수모형 위에 죽 꽂혀 있는 갈색과 녹색 장정의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중에서 한 권을 꺼냈다. 우리는 같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고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신이 나서 들썩였다.

어원을 더 많이 알수록라틴어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백과사전 항목 하나를 읽을때마다 퍼즐 조각 하나를 제자리에 끼워넣는 기분이었다.
곧 퍼즐 전체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자라면서 이 퍼즐에는 가장자리도 테두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방으로 끝도 없이 계속 뻗어나가기만 했다. 새 조각을 얻을 때마다 부족한 조각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될 따름이었다.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날은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 어떤 것이라도 세상을 탐구하는 의식,itual의 실마리가될 수 있었다. 나는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면 이런 생각을했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의 이름이 뭐지? 거리 이름은? 동네 이름은? 도시는? 나라는? 이런 고유명사가 붙여진 데는무언가 이유가 있을 텐데 사람 이름을 딴 것일까? 아니면이곳을 탐험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붙였나?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영어로 옮겨 적은 것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이 압축되어 이렇게 되었나? 뉴욕New York이 영국 요크York 지방에서 따온 이름이라면 뉴질랜드의 ‘질랜드’는 어디에 있지?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신경세포 연결이 발달하고 시냅스가 나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기록적인 속도로 형성되어갔을 것이다. 불필요한 것들은 성장하면서 ‘가지치기‘ 과정을 통해 사라진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 시기를 직관적 사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분별 연령the age of reason‘이라고 부른다. 뭐라고 부르건간에 네 살에서 일곱 살 사이의 작은 인간이 단순한 논리적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때다. 이 시기를 기념하는 의식은 아동기의 시작과 끝인 출생이나 사춘기를 축하하는 의식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가톨릭교도는 이때 첫영성체를 한다. 일본에서는 시치고산七五三’이라는 명절에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이 된 여자아이와 세살, 다섯 살 남자아이가 전통의상을 입고 신사에 가서 무사히 성장하고 발달했음을 축하한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남자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군에 입대했다. 오늘날, 지구상거의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세 살에서 여섯 살 사이에 통과의례를 거친다. 새 옷을 입고, 특별한 가방을 메고, 사진을찍고, 입맞춤을 받은 다음 보통 노란색인 커다란 차를 타고집 근처에 있는 교육시설로 간다. 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생체 변화를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만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기 길을 걸어가기 시작할 만큼 몸과 지능이 자랐다는 뜻이다.

나는 딸아이가 좀 자란 뒤에 세계의 역사와 예술과 그 안의 존재들과 그들 삶의 방식, 우주에 관한 탐구를 노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에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는다. 방과후에, 주말에, 여름방학 때도 아이가 내가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을 집에서 날마다 수행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수많은 답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아이가 편안하게 받아들이게끔 되지 않을까.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덩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ㅂ더 많은것에 다가갈 수 있다.

영영 답을 얻을 수 없는 비밀도 있다. 우리는 아마 살아생전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결국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얻을수 있는 답도 있다. 지금, 아버지와 마루하는 내가 옛날에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알게 될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루 안에도 배우고 축하할 것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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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상자와 서랍을 더 많이만들어서 그들을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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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페르세포네가 망자와 저승의 신, 고대 그리스의 악마격인 하데스에게납치를 당하자 데메테르는 제정신을 잃었다. 올림포스산에서 내려와 지상으로 가서 비천한 노파의 모습을 하고 한없이 딸을 찾아 헤매다니느라 곡물을 관장하는 신의 역할은내팽개쳤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해졌다. 사람들이 굶주렸다. 다른 신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들이 힘을 모아 페르세포네를 구해오자고 합의했다. 페르세포네가 무사히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자 세상에는 꽃이 피고 먹을 것도 풍부해지고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하 세계에 있는 동안에 페르세포네가 석류알을 몇개 먹었기 때문에 지하 세계와의 연을 영원히 끊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페르세포네는 해마다 다시 지하 세계로돌아가야 했다. 그리하여 지상 세계에서 아무것도 자라지않는 겨울과 다시 생명이 돋는 봄의 순환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이것이 계절의 기원이었다.
봄과 관련된 전설들은 하나같이 수난의 시간이 끝나고가슴 벅찬 기쁨이 찾아오는 이야기다. 모든 게 사라진 듯 보일 때 비밀, 감춰진 기적, 희망을 다시 찾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봄이란 그런 것이다. 재생, 재탄생, 부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주제에서는 종교적 이상이 자연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식물의 생태로부터 영감을 받아 종교의식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존과 내가 날마다 하는 작은 의식이 몇 가지 있다. 매일 아침 존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커피를 만들어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한잔을 가져다준다. 그러면 나는 존에게 고맙다고 하고 내가 존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한다. 이 작은 사랑의 행위가 우리가 보낼 하루 그리고 우리가함께하는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저녁때 존은 퇴근하면서 출발!!!"이라고 나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이 문자를받으면 여전히 가슴이 살짝 떨린다. 좋아하는 사람을 곧 만나게 되리라는 설렘이다. 이것도 작은 의식이다.

사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특별한 행동은 그게 무엇이든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의식이다. 다른 식으로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하지 않고 굳이 이 방식을 거듭할 때 사소한 행동들이 의식이 된다. 존이 아무 예고 없이 그냥 집에 올 수도 있지만, 문자로 알려주는 덕에 나는 기분 좋게 들뜬 마음이 된다.

누구에게나 이런저런 일상적 의식이 있다. 출근할 때 어떤 길을 택해서 가는지, 혹은 아이들 저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의식이 될 수 있다. 날마다 하는 일과 함께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이야기 토막도 여기에 넣을 수 있다. 나는 자기전에 얼굴에 보습 크림을 바르면서, 젊어지는 샘물 전설을떠올린다. 주름개선 크림 광고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작은 의식들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일종의 리듬이나 패턴을 만들어주고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스킨케어 습관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늦출 수 있다면 물론 그것은 엄밀히 말해 전설 때문이 아니라 과학 때문일 것이다.이렇게 둘을 칼같이 나누어놓으면 재미가 사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마루하는 죽으면 천국에 가고 천국에는 하느님이 있고천사들이 하프를 연주한대. 그런데 엄마 아빠는 죽음이 영원히 꿈꾸지 않고 자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했잖아. 누구 말이 맞아?"
부모님은 입을 맞춘 듯이 바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아무도 몰라!"
그냥 그렇게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치 그게 정말좋은 일이라는 듯이 활짝 웃으며 열띤 목소리로 즐겁게 말했다.
이 대화가 나에게는 정말 큰 깨달음을 주었다. 죽음이라는 미스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지는 않았지만 삶의 본질을 엿보는 창을 얻은 것 같았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불확실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얼버무리거나 덮어버릴 필요가 없다. 최대한 많이 알려고 애쓰는 도중이라도 불확실성이 있음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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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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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의 가족은 우주의 경이로움을 일상의 매순간에 투영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 그 자체가 ‘코스모스를 품은 창백하고 푸른점‘이었다. 별과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결국 우주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체득한 자만이 보이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이해, 삶과 죽음에대한 겸손하면서도 의연한 태도들이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칼 세이건을 바라본 딸이 전하는 내밀한 부성애! 사샤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그렇게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샤 세이건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넘어, 그 스스로 훌륭한 작가로 성장했음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한다. 가족과의 사랑을 성숙하게 실천하는 대목에서,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당당하면서도 사색적 태도에서, 그는 『코스모스의 전우주적 성찰이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책은 『코스모스의 가족 버전이다.
정재승 (뇌과학자, 『열두 발자국, 저자)

당연하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을 좋아한다. 우연의 산물이며 찰나에 불과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전능한 신을 믿지 않아도, 이야기와 음식과 노래와 작은 의식들로 우리는 매일을 축일로 만들 수 있다. 저자의 어머니 앤 드루얀의 말처럼 "누구한테 감사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감사할 수는 있지"(나의 영웅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사적인 모습과 말들을 딸의 시선으로 접하는 것도 값진 일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새삼동지가 지나면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봄이 당도한다는 사실이 얼마나근사하게 느껴지던지! 이 작고 유일한 삶에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결코당연하지 않은 삶을,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책이다.
김하나 (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저자)

‘죽음‘이라는 게 그때 나에게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개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그랬다. 디오라마에 곰과 가젤이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거기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정확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디오라마에 대해서도 나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 말이 옳다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동물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한테는 꼭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위험해."

아버지는 부모님을 다시 만나기를 세상 무엇보다도 더간절히 원하긴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게 믿고 싶더라도 무엇이 사실인지아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다. 가슴속의 진실이나 나에게만진실인 것, 진실처럼 들리고 느껴지는 것 대신, 입증하고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택하겠다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향이 있어."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다시 디오라마를생각했다. 아버지 말이 옳았다. 내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사실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집에서 세상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부모님은 사람들이 아무리 열렬히 신봉하는 것이라고 해도그게 반드시 사실이라는 법은 없다고 가르쳤다. 물론 어떤생각들은 주관적이다. ‘이게 내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라거나 ‘저 사람이 내가 본 가장 잘생긴 사람일 수는있다. 보는 사람 관점에 따른 판단이니까.

옛날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해가 지구 주위를 돈다고믿었다. 하지만 믿는다고 해서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우리가 믿는 것들 가운데에도 나중에는 어떻게 그것도 몰랐느냐고 폭소와 경악을 자아낼 일들이 분명 있을 테다.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앎도 달라진다. 아니 달라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생각이 맞는지 검증해보고 실제 현실이 어떤지 알아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님은 그럴 때 쓸 수 있는 것이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과학자였다. 천문학자이자 교육자 칼 세이건이 바로 내 아버지다. 과학은 아버지의 일이기도 했지만 세계관이자 철학이자 삶의 원칙이기도 했다.

이제 존은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민족이자문화이자 종교이자, 이 세 가지가 겹치지만 완전히 겹치지는 않는 벤다이어그램 같은 거지.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아닌데 유대교를 받아들인 개종자가 있는 것처럼 혈통적으로 유대인인데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는 거고."

예전 피플란트리 촌장(사르판치arpanch 라고 부른다)이 만들어낸 전통인데, 촌장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뜬 딸을 기억하고 싶었다. 마을에 여자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나무를 심어 수천 그루가 되었는데, 흰개미 떼 피해를 볼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해충을 막아주길 기대하며 알로에베라를 심었다. 곧 피플란트리에는 수백만 그루의 알로에베라가 자라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전혀 몰랐다. 그러다 마을 여자들이 알로에베라로 주스와 연고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고, 곧 알로에베라가 마을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의식에서 예상하지않은 축복이 생겨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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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bject of life is not to be on the side of the majority,
but to escape finding oneself in the ranks of the insane.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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