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예술을 감상할 때 우리는 눈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우리의실제 몸의 일부는 상상적 신체는 그것을 자기에 맞추어 변형하라고암묵적으로 기대하고 요청하는 작품이 있다. 우리는 우리 곁 그 대상의기대에 귀 기울이고 그 요청에 화답해야 한다. 작품의 감상은 따라서온몸을 사용하는 운동 또는 무용이자 그 움직임을 통해 점진적으로기존의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는 생성의 체험이다. 조형물 앞에서관람자는 자신의 신체를 새로 조형하고, 이로써 비로소 작품을완성시키고, 그러므로 자신 역시 예술의 일부가 된다.
이것은 아름답고 창의적인 기계로서, 누구든 공부를 즐기는 사람,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통풍에 걸린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하고편리하다. 이런 기계가 있으면 한곳에서 움직이지 않고도 여러 권의책을 보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계는, 지력이 있는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듯, 설치한 장소에서거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 상당히 편의적이다. 이 바퀴는보다시피 다음과 같이 고안되었는데, 말하자면, 책들을 독서대에올려놓으면 앞서 말한 바퀴를 아무리 빙빙 돌려도 그 책들이 자기자리에서 떨어지거나 흔들리지 않게, 그렇게 항상 같은 상태에머물러 있으면서 독서대에 놓인 그대로 읽는 사람 앞에 다시나타나도록 제작되었다. 이 바퀴는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 크거나작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바퀴의 교묘한 장치들에서 각 부품의비례는 지켜야 한다.
기술자가 자기의 기교와 기발한 창안력을 뽐내는 수단으로써, 그리고유희적인 속성으로써 주목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라멜리의 텍스트를 조금만 눈여겨 읽으면, 권위 있고 진지한어조로 기계의 제작과 사용 방법을 설명하는 전문가의 목소리의결에, 듣는 사람이 알고서도 속아 넘어가주어야 하는 장난과 허세가스며들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난감이다. 유럽각지에서 참혹한 전쟁이 산발하는 시대에 군장비 기술을 책임지는궁정인을 장터의 사기꾼으로 둔갑시키는 문헌적 카니발의 도구다. 이 현실 감각 없는 장난감이 주는 쾌락의 원천은 그러므로 이것의실제적이고 감각적인 사용이 아니라 이것이 환기하는 상상의 영역안에 있다. 그 상상이 바로 이 이미지 텍스트 장난감의 사용법이자우리의 놀이다.
설명이 막힐 때, 당신은 마치 두려움이나 분노나 슬픔 속으로처럼동어반복으로 도피한다. 언어의 우발적인 결핍과 무능은 당신이(언어로 표상하려다 실패하여 대상의 본연적인 저항이라간주하고자 하는 것과 마술적으로 동일시된다. 동어반복에는이중의 살해가 있다. 당신에게 저항하므로, 당신은 합리성을 죽인다. 당신을 배반하므로, 당신은 언어를 죽인다. 동어반복은 적절한시점에서의 실신이며 유익한 실어증이다. 그것은 죽음이다. 또는만약 당신이 희극을 원한다면, 동어반복은 언어에 대항하여 권리를요구하는 실재의 분개 어린 "공연"이다. (…] 동어반복은 언어에대한 깊은 불신을 입증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없으므로 당신은 그것을 내던진다. 그런데 언어의 전적인 거부는 일종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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