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다 보면 부정하고 싶은,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부정하고 싶은 순간을 부정한다는 것은 오늘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다. 자기를 부정하면 시기심에 사로잡히고, 시기심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게 된다. 행복할 리 없다. 부정하고 싶은 순간을 부정하고픈 자기 자신을부정하고 넘어서는 이가 바로 초인이다.
하지만 초인은 단 한 번의 넘어섬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새 부정하고 싶은 순간을 부정하고픈 자기로 돌아가기때문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자기 부정의 태도를 끊임없이넘어서는 게 초인이다. 우리는 자기를 부정하려는 자기와 자기를 긍정하려는 자기 사이의 끊임없는 겨룸과 혼돈 속에서살아간다. 초인의 끊임없는 넘어섬은 끊임없는 초기화와 같다. 늘 처음처럼 새롭게 태어나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다. 폭발하지 않는 별은 빛나지 않는다. 춤추는 별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으로 빛난다. 결국 끊임없이 넘어서는 초인 사상과 끊임없이 돌고 도는 영원회귀 사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초인과 영원회귀 사상은 자기의 모든 운명을 사랑하라는 운명애의 메시지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며, 어떻게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이고 철학적인 지침이다. 이것이 삶이던가. 좋다, 다시 한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태초의 아담과 이브로 돌아가 선도 악도 모른 채마냥 행복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금지된 선악의 열매를 따 먹지 않는 이에겐, 자유의 독배를 삼키지 않는 이에겐 방황도 성장도 자유로운 삶도 없다. 초콜릿처럼 너무 달콤해서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악마의 입술에 입 맞추고, 매혹적에 인 위스키처럼 너무 달콤해서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독이 든성배를 목 깊숙이 들이켜는 삶, 내 몸 마음 영혼까지, 내 마지막 춤과 내 차가운 숨까지도 다 바치게 하는 삶은 그에겐 없다. 우리를 방황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자유의 유혹도 자유로운 삶도 없다. 피도 땀도 눈물도.
자유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저주받은 은총이다. 자유의 독배를 삼키지 않는 이에겐방황도 성장도 자유로운 삶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