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일과 커피 내리는 일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꽤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점 점이 그렇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그렇고,점점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렇고, 결국 독서의 질과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독서가와 바리스타는 독서하는 그 자체, 커피 내리는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듯했다. 민준은 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차라리 노력했던 모든 것이 완전히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그때가 더 나았다. 그때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 포기할 수 있었다. 노력에도 임계점이 있다면 이미 그것을 넘은 상태였으니까. 혹시더 노력했다면, 한 번 더 시도했다면 될 수도 있었을까, 나는 그때99도에 도달해 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99도에서100도가 되는 데 필요한 건 노력이 아니라 운이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내게 운이 없다면, 내내 99도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어야 했겠지.
얼마 전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보았을 때도 이런 생각은 이어졌다. 세이모어 번스타인 역시 피아니스트의 삶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아닌 삶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화려한 명성을 쌓던 세이모어가 피아노를 치는 대신 피아노를 가르치고자 선택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여든살이 넘은 세이모어는 그때의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악에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만약 제가 최근 1년 동안 영화를 전혀 보지 않았다고 하면, 어느 날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지난 1년간 영화를 보지 않았네, 나 영화를 안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네, 하고요. 이후 1년 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식에서 사라지고난 영화를 안 좋아하는구나‘ 하는 해석만 남는 겁니다. 그러다가언제나처럼 글을 쓰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이런 문장을 쓰는 거죠. 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틀린 말 같지 않잖아요. 저 스스로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요. 그런데 사실은 이래요. 저는 그런대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일이 너무 바빠서 못 보기 시작한 게 1년 전이라는 겁니다. 천천히 깊게 생각하면 진실에 다다르는데, 그러지 않을 경우엔 거짓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일부러 하려던 게 아닌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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