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상대측과 마주치고 말았다. 우리 쪽 둘, 상대 쪽 둘. 네 명 모두 숨 한번 크게 쉬지못하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의 숫자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때, 상대 쪽 직원이 별안간 침묵을 깼다. 그가 한 말은 귀를 의심해야 할 만큼 그 상황에서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혹시... 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 발톱을 내세우고 으르렁거리며 나를 공격해온 사람이 내게 사인 요청이라니. 무려 법원에서 조정을 앞두고 어색하고 뻘쭘한 얼굴로 내게 요구하는 게 고작 사인이라니…

사인이라니. 허탈함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긴장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결심했다.
‘오늘 합의해줘야겠다.‘
화가 나고 서운했던 대상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과 나를 그렇게 만든 ‘세상‘
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날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새처럼, ‘현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사람과 사람 간에나쁜 감정이 없어도 사회와 세상이 정한 역할에 따라 서로미워하고 등 돌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역지사지의 의미를 알려준, 운명의 엘리베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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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는 안단테 - 김형석 에세이
김형석.스토리베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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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소소한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좋아서 노를 젓던 카약을 탄 것과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작은 카약은 강물을 벗어나 바다로가는 돛단배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모터가 달린 크루즈가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아날로그와디지털을 거쳐 A.I.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하고 싶은 이야기도 조금씩 쌓였다. 음악, 프로듀싱, 제작,사업, 작곡,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내가 삶에서 만나고 있는것에 대한 고민이 하나둘 이어져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쓰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슬프게도 나는 음악을 업으로 삼은 이상 ‘리스너’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가?
어떤 지점에서 이 음악이 ‘좋은 음악‘으로 평가받는가?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수도 없는질문을 던지며 음악을 분석하는 것이 내 일이다.
누구보다 마음을 다해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만으로 음악을 대할 수 없는 것이 작곡가의 숙명이다. 음악의 설계자라면, 영감은 마음에서 얻더라도 설계는 머리로 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음악이 나아갈 길을 생각하면더 그렇다. 의상, 춤, 가사, 여러 마케팅까지, 음악은 더욱많은 곳에서 응용될 것이다. 분석, 또 분석해서 대중이 음악을 사랑하는 바로 그 지점, ‘마스터키‘를 찾아내야 내가음악인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모순적이다. 마음도 바쁘지만, 머리도 바쁘다.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 내가만드는 음악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마음과 머리를 굴린다.

많이 읽은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림을 많이 보는 사람은 화가들일 것이고, 요리를 많이 한사람은 요리사일 것이다. 음악도 그렇다. 많이 들어본 사람을이겨낼 도리가 없다. 내게는 음악이 생활 그 자체였다. 세수하고 이 닦고 밥 먹는 것처럼 피아노 소리는 항상 내곁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리면 이런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다음 멜로디는 이렇게 쓰겠어.‘
가요든 동요든 가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다음 멜로디를 상상했다. 그러다 다음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내가상상한 멜로디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썼네. 멜로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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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 연결. 특이점singularity. 기본 소득basicincome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인연이나 자유에 대한 강조, 타자에 대한 배려, 타자와 맺는관계의 번거로움 등과 같은 다양한 국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 책에서 홍콩에서 살아가는 탄자니아인의 삶의 모습과 그들이 형성하는 경제 구조를 독해하여 우리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힌트를 제공할수 있다면 좋겠다

호수성:
문화인류학 용어로, 영어 reciprocity 등의 번역어다. 보통
‘호혜‘로 많이 번역되며 ‘상호성‘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책 뒷부분에도 나오듯이 이는 좋은 의미의 ‘혜(惠)‘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며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의미도 담고 있기에 여기서는 국내에 번역된 가라타니 고진 등의 책을 참고하여 ‘호수성‘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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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미워하지 않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일인 분의행복이라도 우리의 몫으로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눈 뜨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삶 하나를 온전히 나를 위해 할애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될까. 늘 새롭게 닥쳐오는 하루. 그러나 결코 무한하지 못한 생애, 얼굴 찌푸리고, 후회하고, 증오하고, 자책하며 살기보다 행복하게 살수있었으면 좋겠다.

불현듯 타인의 눈빛이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의 인정 어린 시선에 흔들리고, 다른 이의 평가에 따라 내 가치를 재단하곤 했다. 나를 가장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자꾸만 잊곤 했다. 종종 혼자 걷는 조용한 골목길에서 나에게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시간을 가져본다.
"오늘은 어땠어?"
"지금 네 마음은 좀 어때?"
삶의 본질은 그렇게 단순한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대화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가뿐히 지나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무게를 근사하게 견디는 일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짐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가벼워질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우아하다. 잘하고 싶다는 완벽의 강박을잠시 내려놓으면 우리 곁엔 더 투명한 휴식이 자리 잡는다.

나는 오늘도 작고 조용한 것들을 믿고 싶다. 내일을 약속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 정직한 문장 하나, 혼자서도기꺼이 웃을 수 있는 시간.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견고한 지반 같은 것.
하루를 겨우 건너온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애써 지켜낸 작은 것들은 생각보다 단단하다고. 언젠가 그조각들이 당신의 삶을 천천히 구해낼 거라고.
심심하고 지루한 것들이 당신을 겅중겅중 뛰놀게 한다.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사랑을 말하고자할 때는 숨기는 것과 거짓 하나 없이 하얀 마음을 건네야한다. 옳은 감정의 교류란 서로가 서로에게 한 뼘씩 더 다가가고자 용기 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네 인생 최대의 과제는.
세상 시시콜콜한 이야기와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 모두를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나의 소원과 달리 아버지의 소원은 우리 가족의 건강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두세 시간씩 쪼그려 앉아 번데기의등을 찢으며 나오는 잠자리를 구경하는 것을 군말 없이 기다려주셨고, 가재나 송사리를 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발이 젖는 것에 개의치 않고 계곡의 돌을 전부 들어주셨다. 서른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시절의 사랑을 바로어제의 것처럼 품고 산다. 좋은 사랑은 가만히 기다려주는것이며, 낭만이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임을 내내 곱씹으면서.
내가 조금은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숨은 소원을, 순수함을 모두 잃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랑은 결코 정해진 형태가없으며, 누구를 위하고 또 얼마큼의 마음을 담았느냐에 달린 것 아닐까. 아까워 않고 나에게 전부 내주었던 아버지의일요일이 그랬듯이. 숨통이 막힐 때마다 생명처럼 손 더듬어 찾게 되는 것.

"부모는 모른다. 자식 가슴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을 알기만 하면 다 막아 줄 터라, 신이 모르게 하신다. 옹이 없이크는 나무는 없다고 모르게 하고, 자식의 옹이가 아비가슴에는 구멍이 될 걸 알아서 쉬쉬하게 한다."

언제고 부모님 여린속의 대못이었으며 영영 아픈 손가락일 막내아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자, 한자, 배려하고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나왔다"라는 금명이의 말이 내 지난 시절을 따끔하게 회초리질했다. 부모를 향한책감은 언제나 다른 매개체를 통해 발현된다. 자식 가슴의옹이처럼 신이 쉬쉬하게 하는 것이 아닌데도.
내 삶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삶 또한 그들에겐 처음이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엄마와 아빠는 내 멋대로 슈퍼맨 원더우먼 시켜두고, 나만 처음을 방패 삼아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부모의 사랑은 양과 농도를 측정할 수 없는 독립된 무엇 같다. 말도 안 되게 크고 달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이타적이다. 자신의 유익은 안중에도 없고 자식을 향해 몰아치는 비바람을 틈 없이 막는 데에 혼신을 다한다. 엄마 아빠에게도 엄마 아빠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건 부모라는 명찰을 달고서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신은 자식에겐 후하고,부모에겐 박하다 지나친 편애에도 불평 1번 않을 것을 알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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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 삶의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서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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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다는 확신 속에서는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랑받는다는 걸 알면 아무것도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걸 알 때만 본연의 모습으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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