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 지식은 그 자체로 힘이 아니며, 해석이 더해질 때에야 비로소 힘이 된다. 따라서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간의 사고는 더 깊어져야 한다. AI가 빠르게 문장을 생성하는 시대에도, 사유의 속도는 인간만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지적 부자이고, AI 시대의 진정한승자는 답을 가진 자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자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정보를 다루고 있는가? 아니면 정보에 휘둘리고 있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지적 풍요인가? 아니면 겉으로만 풍요로워 보이는 빈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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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가령 부자와 빈자가 있다고 칩시다. 돈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지적인 부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불러보자고. 이 경우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전 총리)는가난하지. 나는 부자고(웃음). 내가 보기에 TV는 지적 빈자를 돕고, 반대로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도왔어. TV는 오지에 사는 이들에겐 문화적 혜택을 주지만 지적인 부자들에게는 바보상자에 불과해. 음악회에갈수도 있고, 도서관을 갈 수도 있는데 직접적 문화적 경험 대신 TV만보면서 바보가 되어가잖소.

반면 인터넷은 지적인 부자들을 도와요. 나만 해도 정보의 검색이나여러 차원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하지만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지적인 빈자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미쳐요.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이야. 특히 블로그에 글 쓰는 거나 e북으로 개인이 책을 내는 자가 출판 Self Publishing은 더욱 문제요. 종이책과달리 여과장치가 없어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오. 특히 쓰레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지적 빈자들에게는 이 폐해가 더 크지. 인터넷의 역설이오"
•출처: 움베르트 에코 인터뷰 중

더 심각한 문제는 사용자의 인식 변화다. AI 검색 시스템은 아주빠르게 ‘그럴듯한‘ 답변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이 빠른 답변을 쉽게 신뢰하고, 그 순간 궁금증이 해결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답변이 완전하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깊이 있는 탐색 없이 ‘그럴듯한 정보‘에 만족하게 되면, 잘못된 정보나 얕은 지식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필터 버블, 즉 ‘정보 거품‘ 현상이 심해진다.
AI는 사용자가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자주 클릭하는 정보 유형을 학습해 그에 맞는 결과만 계속 보여준다. 사용자는 점점 자신의 생각을확인시켜 주는 정보만 보게 되고, 다른 의견이나 관점을 접할 기회는줄어든다. 다양성과 균형은 사라지고, 확증편향은 강화된다.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는 착각이 생기고, 이는 사고 확장을 가로막는다.

이처럼 필터 버블과 정보 중복 현상이 겹치면서 전체적인 정보 질서는 무너진다. 과거에는 다양한 정보 출처를 비교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원하는 답을 찾아냈다. 지금은 AI가 미리 정리해 준 정보만소비하면서 사용자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검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가 되는 것이다

이 무너진 질서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콘텐츠 미로‘에 갇히게 된다. AI가 만든 콘텐츠는 너무나 정교해서 사용자가 그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에 맞춘콘텐츠만 끊임없이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안에서 점점 더 갇힌다. 이미로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이 의도적으로 의심하고 질문하고, 여러 관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결국 AI가 제공한 좁은 정보 세계 안에서만 사고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AI를 ‘얼마나 빨리 콘텐츠를 생산할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바라본다. 이럴 경우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되면 AI가 만든 콘텐츠는 겉보기에 화려할 수는 있어도, 방향성 없는 콘텐츠의 미로에 갇히게 된다. 가야 할 방향을잃은 채 ‘더 많은‘ 것만 만들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AI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AI를 ‘많이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쓸 것인가, 아니면 ‘잘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쓸 것인가.이 선택은 단순한 생산 방식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가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이다.

효율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해야 할 일은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는 점이다. AI에게 ‘무엇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진짜 만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자만이 AI 시대에도 창조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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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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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
이는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바라보신 순간, 그 자비로운 눈길 속에 이미 선택이 담겨 있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훗날 저는 이 말씀을 주교 모토로, 이어 교황 모토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를 장인이 정성껏 작품을 빚어내듯, 할아버지 프란치스코가 목공소에서 나무를 다듬어 가구를 만드시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그를 자비로 빚어 가셨다."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라틴어 성무일도를 바치다가 이 구절을 발견했을 때, 주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저를 장인처럼 빚어 오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라딘 eBook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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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인공지능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뇌 위에 인공지능 층layer을 만들고 자연적인 두뇌와 인공두뇌를 연결하는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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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인공지능처럼 두는가.‘ 이것이 프로기사들의 실력을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2010년대 후반 바둑계에서는 ‘AI 일치율‘
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어떤 인간 기사가 인공지능이 추천한 수대로 돌을 둘 확률을 가리키는 말이다. ‘AI 일치율이 높다‘라는 말은곧 그 기사가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AI 수법이 그냥 너무 바둑계에 스며들어서, 사실 이미다 당연하게 그냥 두고 있어서 그런 고찰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 그런 고민 하지 않아요. 그냥 ‘더 공부해야지, 더 나아져야지‘ 다 지금 그렇게가고 있어요. AI에 대해서는 그냥 그 존재를 인정했고, 얼마만큼내가 AI를 따라 둬서 수준이 높아질 것인가 하는 생각이죠. 다들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경쟁은 사람이랑 하니까요. 그냥 ‘내가 AI를 더 습득해서, 더 발전해서 저 사람을 이겨야되겠다‘ 뭐 이런 식이죠. AI에 대해서는 그 엄청난 경지를 봤기 때문에 그거는 그냥 받아들였고요."

서울에서 40년간 제비들이 쫓겨나고 비둘기가 번성한 이유는제비들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비둘기들이 현명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서,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대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일으킨 인간도딱히 제비를 혐오하거나 비둘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이 그저 우연히도 제비에게는 불리했고 비둘기에게는 유리했다.
‘AI-환경‘도 그러할 것이다.

조훈현 9단은 자서전에서 ‘류‘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둑에는 ‘류‘라는 것이 있다. 기사마다 바둑을 두는 기풍을뜻하는 말인데, 여기서 각자의 성격과 추구하는 바가 나타난다.
(...) 바둑기사에게 자신만의 ‘류‘는 일종의 자아다. 바둑을 어떤 식으로 놓는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나만의 선언이다. 그래서 거장들의 바둑 대결은 이러한 세계관과 가치관의충돌처럼 다가온다. 바둑이 무려 4천 년을 살아남았고 아직도 건재한 이유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생관과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윌리엄 어니스트헨리의 시 「인빅투스」 마지막 구절을 조금 변형해 책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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