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가령 부자와 빈자가 있다고 칩시다. 돈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지적인 부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불러보자고. 이 경우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전 총리)는가난하지. 나는 부자고(웃음). 내가 보기에 TV는 지적 빈자를 돕고, 반대로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도왔어. TV는 오지에 사는 이들에겐 문화적 혜택을 주지만 지적인 부자들에게는 바보상자에 불과해. 음악회에갈수도 있고, 도서관을 갈 수도 있는데 직접적 문화적 경험 대신 TV만보면서 바보가 되어가잖소.

반면 인터넷은 지적인 부자들을 도와요. 나만 해도 정보의 검색이나여러 차원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하지만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지적인 빈자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미쳐요.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이야. 특히 블로그에 글 쓰는 거나 e북으로 개인이 책을 내는 자가 출판 Self Publishing은 더욱 문제요. 종이책과달리 여과장치가 없어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오. 특히 쓰레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지적 빈자들에게는 이 폐해가 더 크지. 인터넷의 역설이오"
•출처: 움베르트 에코 인터뷰 중

더 심각한 문제는 사용자의 인식 변화다. AI 검색 시스템은 아주빠르게 ‘그럴듯한‘ 답변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이 빠른 답변을 쉽게 신뢰하고, 그 순간 궁금증이 해결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답변이 완전하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깊이 있는 탐색 없이 ‘그럴듯한 정보‘에 만족하게 되면, 잘못된 정보나 얕은 지식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필터 버블, 즉 ‘정보 거품‘ 현상이 심해진다.
AI는 사용자가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자주 클릭하는 정보 유형을 학습해 그에 맞는 결과만 계속 보여준다. 사용자는 점점 자신의 생각을확인시켜 주는 정보만 보게 되고, 다른 의견이나 관점을 접할 기회는줄어든다. 다양성과 균형은 사라지고, 확증편향은 강화된다.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는 착각이 생기고, 이는 사고 확장을 가로막는다.

이처럼 필터 버블과 정보 중복 현상이 겹치면서 전체적인 정보 질서는 무너진다. 과거에는 다양한 정보 출처를 비교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원하는 답을 찾아냈다. 지금은 AI가 미리 정리해 준 정보만소비하면서 사용자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검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가 되는 것이다

이 무너진 질서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콘텐츠 미로‘에 갇히게 된다. AI가 만든 콘텐츠는 너무나 정교해서 사용자가 그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에 맞춘콘텐츠만 끊임없이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안에서 점점 더 갇힌다. 이미로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이 의도적으로 의심하고 질문하고, 여러 관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결국 AI가 제공한 좁은 정보 세계 안에서만 사고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AI를 ‘얼마나 빨리 콘텐츠를 생산할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바라본다. 이럴 경우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되면 AI가 만든 콘텐츠는 겉보기에 화려할 수는 있어도, 방향성 없는 콘텐츠의 미로에 갇히게 된다. 가야 할 방향을잃은 채 ‘더 많은‘ 것만 만들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AI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AI를 ‘많이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쓸 것인가, 아니면 ‘잘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쓸 것인가.이 선택은 단순한 생산 방식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가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이다.

효율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해야 할 일은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는 점이다. AI에게 ‘무엇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진짜 만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자만이 AI 시대에도 창조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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