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미워하지 않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일인 분의행복이라도 우리의 몫으로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눈 뜨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삶 하나를 온전히 나를 위해 할애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될까. 늘 새롭게 닥쳐오는 하루. 그러나 결코 무한하지 못한 생애, 얼굴 찌푸리고, 후회하고, 증오하고, 자책하며 살기보다 행복하게 살수있었으면 좋겠다.

불현듯 타인의 눈빛이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의 인정 어린 시선에 흔들리고, 다른 이의 평가에 따라 내 가치를 재단하곤 했다. 나를 가장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자꾸만 잊곤 했다. 종종 혼자 걷는 조용한 골목길에서 나에게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시간을 가져본다.
"오늘은 어땠어?"
"지금 네 마음은 좀 어때?"
삶의 본질은 그렇게 단순한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대화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가뿐히 지나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무게를 근사하게 견디는 일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짐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가벼워질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우아하다. 잘하고 싶다는 완벽의 강박을잠시 내려놓으면 우리 곁엔 더 투명한 휴식이 자리 잡는다.

나는 오늘도 작고 조용한 것들을 믿고 싶다. 내일을 약속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 정직한 문장 하나, 혼자서도기꺼이 웃을 수 있는 시간.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견고한 지반 같은 것.
하루를 겨우 건너온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애써 지켜낸 작은 것들은 생각보다 단단하다고. 언젠가 그조각들이 당신의 삶을 천천히 구해낼 거라고.
심심하고 지루한 것들이 당신을 겅중겅중 뛰놀게 한다.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사랑을 말하고자할 때는 숨기는 것과 거짓 하나 없이 하얀 마음을 건네야한다. 옳은 감정의 교류란 서로가 서로에게 한 뼘씩 더 다가가고자 용기 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네 인생 최대의 과제는.
세상 시시콜콜한 이야기와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 모두를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나의 소원과 달리 아버지의 소원은 우리 가족의 건강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두세 시간씩 쪼그려 앉아 번데기의등을 찢으며 나오는 잠자리를 구경하는 것을 군말 없이 기다려주셨고, 가재나 송사리를 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발이 젖는 것에 개의치 않고 계곡의 돌을 전부 들어주셨다. 서른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나는 그 시절의 사랑을 바로어제의 것처럼 품고 산다. 좋은 사랑은 가만히 기다려주는것이며, 낭만이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임을 내내 곱씹으면서.
내가 조금은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숨은 소원을, 순수함을 모두 잃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랑은 결코 정해진 형태가없으며, 누구를 위하고 또 얼마큼의 마음을 담았느냐에 달린 것 아닐까. 아까워 않고 나에게 전부 내주었던 아버지의일요일이 그랬듯이. 숨통이 막힐 때마다 생명처럼 손 더듬어 찾게 되는 것.

"부모는 모른다. 자식 가슴에 옹이가 생기는 순간을 알기만 하면 다 막아 줄 터라, 신이 모르게 하신다. 옹이 없이크는 나무는 없다고 모르게 하고, 자식의 옹이가 아비가슴에는 구멍이 될 걸 알아서 쉬쉬하게 한다."

언제고 부모님 여린속의 대못이었으며 영영 아픈 손가락일 막내아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자, 한자, 배려하고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나왔다"라는 금명이의 말이 내 지난 시절을 따끔하게 회초리질했다. 부모를 향한책감은 언제나 다른 매개체를 통해 발현된다. 자식 가슴의옹이처럼 신이 쉬쉬하게 하는 것이 아닌데도.
내 삶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삶 또한 그들에겐 처음이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엄마와 아빠는 내 멋대로 슈퍼맨 원더우먼 시켜두고, 나만 처음을 방패 삼아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부모의 사랑은 양과 농도를 측정할 수 없는 독립된 무엇 같다. 말도 안 되게 크고 달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이타적이다. 자신의 유익은 안중에도 없고 자식을 향해 몰아치는 비바람을 틈 없이 막는 데에 혼신을 다한다. 엄마 아빠에게도 엄마 아빠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건 부모라는 명찰을 달고서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신은 자식에겐 후하고,부모에겐 박하다 지나친 편애에도 불평 1번 않을 것을 알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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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 삶의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서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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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다는 확신 속에서는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랑받는다는 걸 알면 아무것도증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걸 알 때만 본연의 모습으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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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주도권을 디자인하라 - AI를 도구를 넘어 무기로 만드는 질문의 힘
박용후 지음 / 경이로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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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inertia의 라틴어 어원은 ‘게으름iners‘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성질,익숙한 흐름을 유지하려는 태도는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다. 인간심리의 본질이기도 하다. AI 시대에도 이 현상은 똑같이 나타난다. 앞서 우리는 기본적 증강과 본질적 증강을 살펴보았다. 이 두 가지 증강사이, 즉 ‘더 빠르게‘에서 ‘더 깊게‘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할 벽이 있다. 바로 관성, 다시 말해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AI 시대의 가장 교묘한 적이다. 챗GPT가 요약해 주고,
정리해 주고, 구조화해 주는 덕분에 우리는 점점 더 ‘사고하지 않게‘된다. 편하게 답을 얻을수록, 우리는 질문을 덜 던지게 되고, 익숙한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될수록 새로운 탐색은 줄어든다. 따라서 본질적 증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마찰이다. 사고의 관성을 깨뜨리는 저항, 낯선 충격, 불편한 질문과 같은 마찰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통찰과 사고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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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도구가 아니다. 인간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무기다. 더 나은 질문과 깊은 사고로 들어가는 자만이 AI 시대의 주도권을 거머쥐는 ‘사유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AI 시대에는 기술의 진화를 선택한 인간보다 생각의 진화를 선택한 인간이 앞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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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AI를 업무에 도입할 때 주로 ‘더 빠르게‘ 또는 ‘더정확하게‘를 기대한다. 예컨대 챗GPT를 이용해 문서를 요약하는 일,회의록을 정리하는 일,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방식은 기본적인 증강이다. 이미 존재하는 업무 틀 안에서 도구를 활용하여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증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AI가 제공하는 응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응답의 구조를 해체하고, 질문을 재구성하며, 기존 사고의 프레임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회의록을 요약한 결과를 보고 "이 요약은 왜 이런 방식으로 정리되었는가?"라고 묻고, "이 구조가 정말 최선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순간, 증강은 단순 보조가 아닌 사유의 확장이 된다. 이런 증강은 인간이 기존의 인지 틀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차원의 인지구조로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기존의 생각을 ‘더 잘 하게‘돕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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