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새들에게 배워야 할 단 한 가지를 선택해야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우리의 삶을 자연과 다시연결하고, 그리하여 다양한 감각과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찬 삶을 사는 거라 답할 것이다!
우리가 삶의 루틴 속에 좀더 자주 주변을 관찰하는습관을 넣는다면 어떨까? 무감각한 일상에서 벗어나자신과 자연을 연결하고, 주변과 상호작용하기 위해서 시각,
후각, 청각을 예민하게 갈고닦는다면? 새들이 날아가는모습을 바라보고 티티새와 제비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한시간을 갖는다면? 올빼미의 신비로운 울음소리가 밤의침묵을 깨고 지평선으로부터 커다란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지켜본다면, 그러면 우리의 삶에는 시가 넘쳐흐르기 시작할테고, 더 이상 회색빛 일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삶이 모험 한가운데에 있을 때 작은습관들을 심어두는 게 좋다. 기운을 돋우는 오전 11시의커피 한잔, 일요일 저녁을 느긋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처럼말이다. 해로운 습관은 삶을 지루하고 우중충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가두고, 구속하고, 경직되게 한다. 반면좋은 습관은 진정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생활을 튼튼하게쌓아올리고, 안정감 있는 흐름 위에 놓는다. 해마다 다시돌아오는 철새들은 언제나 같은 장소에 새집을 짓는다. 마치우리가 좋은 추억이 있는 공간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는것처럼, 예기치 않은 경험으로 꽉 찬 삶을 살고 있을때 습관은 버팀목, 표지판, 좌표의 역할을 한다. 위대한모험가들조차도 지극히 사소한 자신만의 습관을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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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상을 할 수 있는유일한 시간은 걷고 있을 때다.
걸음을 멈추면 사고가 멈추게 되므로다리가 움직일 때만 뇌가 작동한다."
- 장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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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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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본다*이 새롭고 끔찍한 발명품에서 또 어떤 새롭고 끔찍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있나 볼까- 2016년 11월 10일, @missokistic이 올린 트윗

나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대담 Negotiations』속한 문단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무의미한 말들, 말도 안 되는 양의 단어와 이미지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음은 절대로 눈이 멀거나 말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독과 침묵이 있는 약간의 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틈에서 사람들은 결국 할 말을 찾아낼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세력은 자기표현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표현하라고 강요합니다. 할 말이 없다는 것,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입니까. 오로지 그때에만 말할 가치가 있는 극히 드문 것을 만들어낼 기회는 있습니다

해양 동물을 수집하다 보면 어떤 편형동물은 워낙 연약해서 건드리면 부서지고 찢어지는 까닭에 온전한 형태로 붙잡는 것이 거의불가능하다. 이럴 때는 그 동물들이 자기 의지로 흘러나와 칼날 위로 기어오르게 해야 한다. 그다음에 살짝 들어 올려 해수가 든 병에 집어넣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쓰는 방식도 그와 같을지 모른다. 페이지를 펼쳐 이야기들이 스스로 기어오르게 하는 것.

엘리너 코폴라는 샌프란시스코 전역에 있는 수많은 창문을 시각적 랜드마크로 선정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공동체 전체가 고유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예술 작품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변형되거나 갤러리로 이동하는 일 없이 제자리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

나는 이 작품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공공미술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보통 공공미술 작품은 우주에서 쇼핑몰 앞에 착륙한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다. 코폴라는 그 대신 도시 전체에절묘한 프레임을 씌운다.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는 예술을 인식한 가볍지만 유의미한 방식이다.
좀 더 최근에 이와 유사하다고 느낀 프로젝트는 2015년 샌디에이고 카브리요 국립 기념지에서 있었던 스콧 폴라크Scott Polach 의 <박수를권하다 Applause Encouraged>이다. 노을이 내리기 45 분 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가장자리에 붉은색 로프를 두르고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은공간에서 안내원이 관객을 맞이했다. 안내원은 관객들을 좌석으로 안내하며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고 알렸다. 관객들은 노을을 감상했고, 해가 다지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후에는 다과가 제공되었다.

딥 리스닝 역시 이러한 기법 중 하나였다. 올리베로스는 이 행위를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금 무엇을 하든,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듣는 것. 이렇게 주의를 기울여서 듣는 대상에는 음악뿐아니라 일상생활과 자연, 자기 생각의 소리도 포함된다. 올리베로스는 듣는 것과 들리는 것을 구분한다. "들리는 것은 신체적인 의미의 인식이다. 듣는 것은 자신이 청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인식하는 대상에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딥 리스닝의 목표이자 보상은 고조된 수용감각과, 관찰하기보다는 순식간에 분석하고 판단하라고 가르치는 평소의 문화적 훈련을 뒤집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들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각 작품에서 예술가가 만들어낸 구조(그것이 지도든 붉은 로프를 친 공간이든, 또는 물건을 올려놓은별것 아닌 선반이든)는 사색의 공간을 열어젖히고, 끊임없이 그 공간을닫으려 위협하는 습관과 익숙함, 산만함에 맞선다.

1916년판 『존 뮤어의 기록 The Writings of John Muir』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윌리엄 프레더릭 베이드William Frederic Badé가 각 부의 서문을 썼다. 2부 서문에서 베이드는 뮤어가 이 자아성찰의시기를 통해 "삶은 매우 짧고 불확실하며, 시간은 벨트와 톱 앞에서 낭비하기엔 참으로 귀중하다는 것, 자신이 수레바퀴 공장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신은 이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시력이돌아온다면 신이 이 세상을 만든 과정을 연구하는 데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라고 말한다‘ 뮤어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고통이 나를향기로운 들판으로 이끌었다."

달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초라한 나와 직면하게 되는 그 순간을 견뎌야 해." 그러나 그 시기에 아버지는 창조성과 열린 상태, 어쩌면그에 필요한 지루함과 무늬를 배웠을 것이다. 코미디 집단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의 존 클리즈John cleese가 1991년에 했던 창조성에 관한 강연이떠오른다. 그때 클리즈가 말한 창조성의 필수 요소 다섯 가지 중 두 가지는 시간이었다.
1. 공간2. 시간3. 시간4. 자신감5.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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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에서 인용한 데이비드 실즈의 말이다.

잘츠부르크의 소금 광산 깊은 곳에 겨울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둔 후 두세 달이 지나 꺼내 보면 그것들은결정들로 반짝인다. (중략) 나뭇가지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란 힘들다. 내가 결정화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하는대상의 모든 모습에서 새로운 장점을 끌어내려는 영혼의 작용이다. 스탕달 ‘연애론’

this is my answer: not that I loved Caesar less, but that Iloved Rome more.
이것이 내 대답이오. 내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연발하다 한 무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란의 소설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무덤 앞이었다. 그의 소설 《눈먼 부엉이》의 인상적인 첫 문장이 생각났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없다. 타인들은 결코 그런 고통을 믿지 못하고 정신 나간이야기로 치부할 뿐이다. 만약 누군가 그 고통에 대해서 묘사하거나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남들의 태도를 따라서, 혹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 섞인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무시해버리려고 한다. 아직 인간은그런 고통을 치유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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