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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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까닭에, 훗날 교황이 된 저는 바티칸을 벗어난 첫 여정으로람페두사섬을 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지중해의 이 작은 섬은 희망과 연대의 전초 기지가 되었지만, 동시에 이주민의 비극과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해상 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람페두사로 떠나기 몇 주 전, 또 다른 난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그생각이 마음속 가시처럼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계획에 없던여정이었지만, 저는 가야만 했습니다.

16세기 스페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로페 데 베가의 희곡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폭정을 일삼는 총독에 맞서 푸엔테 오베후나 마을 주민들이 봉기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총독을 처단했지만, 서로 입을 맞추어 범인을 밝히지 않기로 합니다. 왕의 판사가 "누가 총독을 죽였는가?"라고 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푸엔테 오베후나입니다, 나리."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연루되었지만, 동시에 아무도 범인이 아닌 셈이 된 것이죠.
오늘날에도 그 물음은 강렬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흘리는 이 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 모두 "나는 아니다."라고 발뺌합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공범이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아니야. 나와는 상관없어. 다른 누군가겠지. 나는 확실히 아니야."
무관심의 세계화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만초니의 소설 속 ‘이름 없는자들innominati‘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이름 없는 자들, 얼굴 없는 자들처럼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 우리 자신의 역사와구원의 여정마저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우리를 어리석음의 나락으로몰아넣을 이 두려움 앞에서,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던지신 그 질문이세월을 넘어 우리 귓가에 끊임없이 메아리칩니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먼저 prima‘라는 말은 ‘가장작은 이들이 먼저prima gli ultimi‘라는 뜻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이 먼저입니다. 매일같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자신들을 짓누르는 온갖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애원하는 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변방에서 신음하는 이, 속임을 당해 사막에 버려져 죽어 가는 이, 보호소에서 고문과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이, 바다의 무자비한 파도와 맞서 싸우는 이....... 바로 이들이 가장 작은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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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현실‘과 ‘가상‘ 사이에 진한 선을 그어도 몸은 그 경계선을 쉽사리 넘나든다는 것입니다. 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자유분방합니다. 몸은 ‘뭐? 그런 것도 한다고?‘라고 놀랄만한 일을 잔뜩 벌입니다. 몸은 ‘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 않습니다. 몸은 대체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나갑니다.

몸의 ‘자유분방함‘은 때때로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속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현실이 아니라고 아는데도, 몸은 무심결에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의미로몸은 무척이나 ‘느슨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느슨함이 몸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만들어냅니다. 만약 몸이 빈틈없이 단단한 것이었다면, ‘켄다마해냈다! VR‘ 같은 기술을 이용해서 몸의 상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겠죠. ‘몸은, 제멋대로 한다.‘ 몸의 느슨함이 반대로 몸의 가능성을 넓혀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식이 무너진 순간, 그때까지 믿었던 자신의 공식을고집하지 않고 피아노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계획했던 연주를 변형하는 것. 그 자리에서 건반에 손을 대며 새로운 공식을 세우는 것. 그것이 ‘최고의 연주‘이며,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열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연이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잘되면 좋겠다.‘ 하고 요행을 바라는 자세로는 멋진연주를 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로 ‘탐색‘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평소와다른 연습실에서 연습해보기. 평소와 다른 시간에 피아노를연주해보기.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식의 세세한 차이에도 탐색할 부분이 있겠죠. 그렇게 탐색하면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라는 공식 바깥의 세계를 더 민감하게 느낄 수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후루야 씨에게 "연습과 실전은 가설과 증명 같은 관계" 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얼마나 나 자신을 스스로 흔들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탐색하는 과정의 폭과 질이 본 공연의 연주를 좌우합니다.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아가고 마는 능력이 피아노 연주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죠.

앞서 인용한 대로 후루야 씨에게 "연습과 실전은 가설과 증명 같은 관계입니다. 얼마나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얼마나 나 자신을 스스로 흔들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탐색하는 과정의 폭과 질이 본 공연의 연주를 좌우합니다.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아가고 마는 능력이 피아노 연주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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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모한 노력 때문에, 오히려 멍청한 인간은 ‘나야말로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대단한 영웅’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 당신이 멍청한 인간을 좋은 길로 이끌려고 애쓸수록 그는 굴복하기는커녕 더 강하게 저항한다. 결국 당신도 멍청한 인간처럼 변하고, 이렇게..

-알라딘 eBook <[대여 페이백]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중에서

"멍청한 인간은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많이 아는 사람은 의심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생각한다."
_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세르주 시코티

-알라딘 eBook <[대여 페이백]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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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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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있는 그대로 곧고 맑았다.
반듯한 심성과 굳은 의지, 꾸밈없는 기상을 지녔으니,
말은 적어도 뜻은 깊었고,
걸음이 더디어도 먼 길을 가는 이들이었다.
니노 코스타(Nino Costa, 1842~1945)
미래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전부터,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우리를 변화시킨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자전적 문학은 개인사에 관한 기록이지만 순례자의 보따리와도 같습니다. 기억이란 단순히 우리의 회상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입니다. 기억은 단지 과거에 있었던 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멕시코의 한 시인은
"기억은 영원히 흐르는 현재"라고 노래했습니다.
어제인 듯 여겼던 기억은, 바로 내일의 이야기입니다.

동사 ‘에스페라르esperar‘가 ‘희망하다‘와 ‘기다리다‘라는 두 가지 뜻을아우르는 만큼 이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희망은 행동을위한 미덕이자 변화의 원동력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꿈을 실현하기 위해 기억과 이상을 하나로 모아 주는 힘입니다. 꿈이흐려질 때면, 우리는 기억 속에 깃든 작은 불씨에서 희망을 피워 내어그 꿈을 새롭게 꾸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순간은 제 기억 속에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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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건대, 사람을존재, 나이나 성별, 학력, 지역으로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행동으로 구분할 수는 있다. 폭력은, 폭행은, 폭도는 그 어떤 이유든 납득될 수도 설득될 수도 허용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한가문 일족의 파멸은 공적인 삶을 버리고 사생활, 고독에 기대어 산 결과이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일생내내 연구를 하거나 근친상간의 사랑에 빠진다. 연구와근친상간의 공통점은 바로 외부, 차이와의 단절이자 폐쇄성이다. 고독은 단절의 대가다. 부엔디아 가문은 역사와 세계로부터 도망쳐 자신들만의 공간에 숨어들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공공의 연결을 잃은, 타인이 부재한 무세계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엄혹한 현실일지언정 맞서서 대면하지 않는다면 돼지꼬리가 달린 기형적 결과물과 만날 수밖에 없다. 고독은 결코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다.

바보를 뜻하는 ‘이디엇(idiot)‘의 어원에는 사적인삶만 사는 자가 포함되어 있다. 사적인 삶만 있는 자가바로 바보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적인 삶만 있는 자들의 바보 같은 삶을 경계했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등장하는 ‘악의 평범성‘은 그런 의미에서 악의 세속성이자 악의 고독성, 직업적 순응성이라 바꿔 부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나만의 삶에만 충실한 사람, 나만 중요한 사람, 무관계성 속에서 타인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들은 고독한척 하지만 사실상 악한자 일수 있다

책을 읽는 자들이 토요일 집회에 나간다. 책을 읽는 문해력이 문화와 독재를 읽고, 자유를 갈망하는 집회가 문화와 연결되고 닿아 있는 것이다. 2030 여성의 문화 소비는 ‘가치소비‘로 요약된다. 가치 있다 생각된다면 그 소비재가 무엇이든 진심으로 전력을 투자한다. 이는 지금껏 청년 세대의 주류 가치로 여겨졌던
‘가성비‘와 대조된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아깝지 않다.
돈도, 시간도, 열정도. 그리고 지금 2030 여성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렇게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선택의 대상, 자유의 표상, 문화적 대상이 되었다. 전통적 의미의정치적 각성이나 관여가 아니라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와 관계성에 대한 진심이 전력 투사된 물리적

남태령 대첩 직후 12월 24일 안국역에서 있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다이-인(die-in)" 현장에서부터 남태령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시민들의 발언과 행동이 폭발했다. "남태령을 겪으며 깨달았다. 연대는 무조건적이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내 마음이 동한다면 어떤 현장이라도 달려가 몸을 던져 구호를 외치고 손잡고 어깨를 걸 수 있다는 용기를 여러분들을 더이상 외롭게, 고통 속에 남겨두지 않겠다." 사람들의 진심어린 외침이 남태령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가득 채웠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사학비리 공학전환 반대 투쟁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농성에서, 제주항공 참사 공항 현장에서, 한강진의 3박 4일 키세스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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