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셜리 발렌타인을 단순히 갇힌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여성이 이혼한 친구의 제의로 그리스 해변으로 떠나는 이야기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연극이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여자를 통해 인간의 의미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셜리는 누구나 조금씩 닮은 보통 여자입니다. 나에게도 셜리의 모습이 조금은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마음속은 잘고도 깊은 상처로 금이 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여러 꿈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꿈과는 전혀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 그것이 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특히 여자가 끝부분에서 자신만 불행한 게 아니라남편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눈자체가 커진 것입니다.
그런데 김혜자는 그렇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단다. "미안합니다만, 아마 영부인께서도 배우 김혜자가 앉아쉬었다고 말씀드리면 기뻐하실 거예요." 검은 정장의 남자는 "실례했습니다!" 경례를 붙이고 사라지더란다.
김혜자는 하나님께 붙들려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당당할 수 있다. 대통령비서실에서 어떤 요구를 해 와도-구체적으로 공개하긴 조금 거북하다-하나님의 뜻에 맞지않는다면 당당히 거절하고 오히려 충고를 할 수 있는 힘은그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영웅들, 세상의 권력자들, 성공한 사람들…………. 아무리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해도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인지를 배우 김혜자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김혜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이유다.
"오늘 난 백 살이 되었어요. 장미 할머니처럼요. 계속 잠이쏟아지지만 기분은 좋아요. 난 엄마랑 아빠에게 삶이란 참 희한한 선물이라고 얘기를 해 줬어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선물을 과대평가해요. 영원한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중엔 과소평가해요. 지긋지긋하다느니 너무 짧다느니 하면서 내동댕이치려고 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선물받은 게 아니라 잠시 빌린 거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래요, 삶은 선물이 아니에요. 잠시 빌린 것이죠. 빌린 거니까 잘써야죠.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픈 오스카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몸이 성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며칠을살더라도 얼마만큼 가득 차게 사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삶은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D 저널의 방연주 객원기자라는 분은 「디어 마이 프렌즈」를보고 리뷰에 노벨문학상을 탄 쉼브르스카의 시를 인용했습니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사랑을 하면서 강한 사람은 없어. 사랑을 하면 모두가 약자야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니까. 그리워하게 되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지지 않으니까. 우리는 모두 약자야."
리젯 우드워스 리스라는 시인이 쓴 ‘삶에 대한 작은 찬가‘라는 시를 벽에 붙여 놓고 가끔씩 소리내어 읽습니다.
살아 있음이 기쁘다. 하늘의 푸르름이 기쁘다. 시골의 오솔길이 떨어지는 이슬이 기쁘다. 개인 뒤엔 비가 오고 비온 뒤엔 햇빛난다. 삶의 길은 이것이리, 우리 인생 끝날 때까지. 오직 해야 할 일은 낮게 있는 높이 있든 하늘 가까이 자라도록 애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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