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완벽함이란 모든 것이 잘 정렬되어 무결한 순간도, 기계적으로 이룬 완결의 상태도 아니다. 글머리에 인용한 존슨의 말대로 우리는 ‘완벽을 지향’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건 거기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안다 해도 어쨌건 줄곧 태양 빛을 받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몇 주 동안의 봉쇄 기간에도 사전은 마음의 위안처였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의무 격리quarantine를 겪으며 불안에 떨었지만, 이 상황을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니 위안이 되었다. 흑사병이 대유행하던 시절, 베네치아에 도착하는 배들은 40일quaranta 동안 격리해야 했다. 그 당시에도 절망despair 극복을 뜻하는 respair라는 말이 있었다는 사실이나, chortle킥킥 웃다이라는 단어가 루이스 캐럴이 chuckle낄낄거리다과 snort콧방귀 뀌다를 합해 만든 말이라는 사실 따위가 도시 봉쇄로 갑작스레 찾아온 삶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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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한, 나는 작은 덕들이 아니라 큰 덕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절약이 아니라 관대함과 돈에 대한 무관심을, 조심성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경멸과 용기를, 영악함이 아니라 정직과 진실에 대한 사랑을, 외교술이 아니라 이웃 사랑과 자기부정을, 성공에의 욕망이 아니라 존재와 앎에의 욕망을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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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면서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너무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 그러다 22년 전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없으면 집안도 병원도 제대로 안굴러갈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세상은 나 없이도 너무나 멀쩡히 잘 굴러갔다. 2014년 병원 문을 닫은 이후에는 그렇게나 많은 지인들도 다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내가 놓쳐서는 안 될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당신은 부디 나처럼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너무 닦달하지 말고,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말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화장실 문을 바라보는 대신 발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발을 한 발짝 천천히 떼었다. 신기하게도 발이 움직여졌다. 발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 발짝 움직였다. 그렇게 한 발짝한 발짝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화장실에 도착해 있었다. 보통 때면 2초 만에 갈 수 있는 화장실을 가는 데 5분 넘게 걸리긴 했지만 도착해서 볼일을 봤으니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아, 한 발짝이구나.‘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을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끝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 싶어도 나중에 보면 그 길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움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때론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때문에 화가 난 적도 있지만 분노의 힘이 나를 살게 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가장 빠른 직선 코스로 가야 한다는강박관념만 버린다면 한 발짝을 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이유는 없다.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봐야 그 기쁨을 같이나눌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픈 일이다.

차를 대고 한 시간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곤 했다.
가족들에게는 차가 밀려 귀가가 좀 늦어질 것 같다는 거짓말을하고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삶을즐기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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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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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대한 담론이나 이념, 세상을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이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2021년 3·1절 대통령 연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비 내리던 기념식 중간 고故 임우철 애국지사의 젖은 담요를 바꾸어 드리라는 대통령의 말과 눈빛은 여전히 또렷이기억한다. 결국 추억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 믿는다. 국민들도 결국에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로 문재인 정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PIS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문장으로 이 책의 문을 연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대한민국 청와대는 영욕榮辱의 공간이었다. 조선 시대부터지금까지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 모든 시대가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 아니다. 지우고싶고,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역사도 그 안에 있다. 하지만 그또한 역사다. 미국이 백악관을 영국에게 점령당했었다고 폐쇄하고 옮기지 않았듯이, 역사는 그러한 치욕까지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권력이 지난날로부터우고 새로운 날들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버리면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꿈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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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셜리 발렌타인을 단순히 갇힌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여성이 이혼한 친구의 제의로 그리스 해변으로 떠나는 이야기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연극이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여자를 통해 인간의 의미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셜리는 누구나 조금씩 닮은 보통 여자입니다. 나에게도 셜리의 모습이 조금은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마음속은 잘고도 깊은 상처로 금이 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여러 꿈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꿈과는 전혀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꿈을 잃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 그것이 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특히 여자가 끝부분에서 자신만 불행한 게 아니라남편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눈자체가 커진 것입니다.

그런데 김혜자는 그렇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단다.
"미안합니다만, 아마 영부인께서도 배우 김혜자가 앉아쉬었다고 말씀드리면 기뻐하실 거예요."
검은 정장의 남자는 "실례했습니다!" 경례를 붙이고 사라지더란다.

김혜자는 하나님께 붙들려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당당할 수 있다. 대통령비서실에서 어떤 요구를 해 와도-구체적으로 공개하긴 조금 거북하다-하나님의 뜻에 맞지않는다면 당당히 거절하고 오히려 충고를 할 수 있는 힘은그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영웅들,
세상의 권력자들, 성공한 사람들…………. 아무리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해도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인지를 배우 김혜자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김혜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이유다.

"오늘 난 백 살이 되었어요. 장미 할머니처럼요. 계속 잠이쏟아지지만 기분은 좋아요. 난 엄마랑 아빠에게 삶이란 참 희한한 선물이라고 얘기를 해 줬어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선물을 과대평가해요. 영원한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중엔 과소평가해요. 지긋지긋하다느니 너무 짧다느니 하면서 내동댕이치려고 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선물받은 게 아니라 잠시 빌린 거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래요, 삶은 선물이 아니에요. 잠시 빌린 것이죠. 빌린 거니까 잘써야죠.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픈 오스카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몸이 성한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며칠을살더라도 얼마만큼 가득 차게 사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삶은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D 저널의 방연주 객원기자라는 분은 「디어 마이 프렌즈」를보고 리뷰에 노벨문학상을 탄 쉼브르스카의 시를 인용했습니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 중에서).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사랑을 하면서 강한 사람은 없어. 사랑을 하면 모두가 약자야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니까. 그리워하게 되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지지 않으니까. 우리는 모두 약자야."

리젯 우드워스 리스라는 시인이 쓴 ‘삶에 대한 작은 찬가‘라는
시를 벽에 붙여 놓고 가끔씩 소리내어 읽습니다.

살아 있음이 기쁘다. 하늘의 푸르름이 기쁘다.
시골의 오솔길이 떨어지는 이슬이 기쁘다.
개인 뒤엔 비가 오고 비온 뒤엔 햇빛난다.
삶의 길은 이것이리, 우리 인생 끝날 때까지.
오직 해야 할 일은 낮게 있는 높이 있든
하늘 가까이 자라도록 애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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