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생각한다. 그리고 가령 자식이 범죄자가 되어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받았을 때는 일체의 비판을 삼가고조용히 도와주면 그만이다. 부모만이 이 세상에서그런 상황일 때 비판을 버리고 구제하는 것이 허락되는 유일한 존재인 까닭이다.
‘어른다움‘의 미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훌륭하게 늙어가는 작업을 나이 들어서 시작한다면 이미 때늦은 게 아닐까? 어린아이 때 어른이 될 준비를 하듯 노인이 되기 위해 인간은어쩌면 중년부터 차차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 이다. 노인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스스로는 뒷전으로 물러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른다움‘의 미학을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구든지 한 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 번은 늙는다. 이만큼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스스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말이다. 늙는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런 행복을 포기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몸이 말을 안 듣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수밖에 없다고 변명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몸이 불편한 한 노파가 매일 밤도로로 난 창가에 등불을 놓고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은 그곳을 지나는 여행자를 위한 것이었다. 먼 길을, 암흑 속을 걸어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불빛이었다. 자연의 위압 속에서 조그마한 빛이 보일 때여행자들은 인간의 온화한 정에 포근함을 느낀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가 빛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밖에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노파지만, 타인에게 단지 등불을 비춰준다는 것으로도 자신이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인간의 본질을 갖추게 되며, 더욱이 그것으로 인해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 수족관에서 물고기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이 있는데 발이 긴 게였다. 이 게는 발의 관절이 붙어 있는 부분에 둥근 반점이생기면, 그것이 노화의 징조로 곧 그 부분의 관절에서 앞이 떨어져나간다. 이런 상황이 계속 진행되어 동그란 주먹밥 같은몸통만이 남아 살아가는 게가 있었다. 정상인 게들은 먹이를 양쪽의 집게발로 잡아 입으로 가져간다. 입이 아래쪽에 붙어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게는 발뿐만 아니라 양손격인 집게발도 없었다.
사육사와 나는 오징어 한 조각을 그게 바로 앞에매달아주었지만 게는 먹지 않았다. 입 근처까지 먹이가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게를 물에서 건져 올려, 입이 있는 아래쪽을 위로 향하게 젖혀놓고오징어 조각을 입에 넣어주려 했다. 그러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고 열리지 않았다. 그 사육사는 몇 년 전까지 어업을 하던 사람으로많은 책을 읽어가며 생활하는 학구열에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나는 학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입의 근육과 손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자꾸 듭니다. 이 게는 손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입의근육도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의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먹이를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이제 곧 굶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사육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저도 의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아무래도 다리와머리의 움직임은 연동 작용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걷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어의 해석을 한 번 더 빌리자면, ‘걷다‘라는 말은 ‘페리파테오‘라고 하는데 이는 ‘걸어 돌아다니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 사람답게 처신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또 무엇보다 ‘생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답게 처신하지도 생활할 수도 없다고 그리스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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