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나는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잘못된 믿음(오신념)misbelief‘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잘못된 믿음은왜곡된 렌즈이다. 잘못된 믿음에 빠진 사람들은 이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을 하고또 그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잘못된 믿음은 일종의 과정이기도 한데 사람들을 점점 더 깊이 끌어당기는 깔때기와 같다. 이 책에서 내가 설정한 목표는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누구나 어떻게 잘못된 믿음의 깔때기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강조하는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다룬 책이라고 바라보면 가장 쉽다.
사람은 대부분(조금 똑똑하다는 사람뿐 아니라 엄청나게 똑똑해서. 아무리 어려운 과학적 · 수학적·철학적 문제라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사람조차도), 자기가 그동안 무척이나 힘들게 쌓아온 결론이 (자기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가르쳤으며 또자기 삶 전체를 지탱하는 그 결론이) 알고 보니 잘못된 것이었음을인정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는,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조차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예술이란 무엇인가(What IsArt?)》(1897)
사람들이 자기 눈에 비친 네 모습이 자기와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네 눈에 비치는 다른 사람들과 네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는 절대로 상상하지 마라. -루이스 캐럴(Lewis Carrol),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Wonderland)》
잘못된 믿음의 깔때기는 놀랍고도 복잡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일련의 의견과 믿음 덩어리를 가지고 깔때기 안으로 들어가지만, 결국처음과는 매우 다른 일련의 의견과 믿음을 만난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는 자신이 그렇게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이 바뀌어버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음모론에 대해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실제로 마음이 한결 더 편해진다는 이유로 음모론자들이 그 음모를 믿는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 진실이 있다면 그건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통제하는 것은 유대인 은행가도 아니고 회색 외계인이나다른 차원에서 온 12피트 크기의 파충류도 아니다. 이 세상의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데, 그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에는 통제자가 없다. -앨런 무어(Alan Moore), 다큐멘터리 <앨런 무어의 정신세계(The Mindscapeof Alan Moore)>(2003)
유능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이자 성공한 사업가이며 과학을 잘 아는똑똑한 사람인 제니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잘못된 믿음을 가진 오신자가 될 수 있을까? 또, 왜 그렇게 바뀌는 걸까? 그녀의 이야기는 잘못된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처음 시작하게 만드는 감정적인 조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첫째, 일반적인 스트레스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각자가 다양한 수준으로 경험했던 전례 없이 강력했던 스트레스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둘째, 이 스트레스는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좌우되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는 매우 힘든 경험을 만들어낸다. 셋째, 어떤 대상을반드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욕구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위험한길로 진입하게 만드는 어떤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스트레스는 우리 삶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잘못된 믿음과 관련해서는 스트레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해서 오신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다른 요소들과 함께 누군가가 오신자가 될 가능성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감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은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식별하는 데 서툴다. 이른바 ‘감정의 오귀인misattribution of emotions‘이며, 이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훌륭한 연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실험인 도널드 더턴DonaldDutton과 아서 아론Arthur Aron이 1974년에 수행한 심리학 실험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실험에서는 여성 실험 진행자가 남성 피실험자에게접근해서 어떤 여성의 사진을 본 다음에 짧고 극적인 이야기를 작성해달라고 하는 것을 포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응답을 요청한다.
회복탄력성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이라는 심리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네 살짜리 아이의 엄마 혹은 아빠이고 이 아이의이름은 네타라고 해보자. 어느 날 당신은 네타를 놀이터로 데려간다. 그리고 "가서 그네를 타렴"이라고 네타에게 말하고 벤치에 앉는다. 당신은 더 이상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네타는 그네로 달려가서 15분 정도 그네를 타고 놀다가 다시 당신에게 돌아온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안정 애착을 가진 아이를 키운 셈이다. 축하한다. 당신에게는 애밋이라는 다른 아이가 또 있다. 당신은 애밋에게 "가서 그네를 타렴"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애밋은 거의 1분에 한 번씩당신을 돌아보며 당신이 자기를 기다리는지 확인한다. 이 경우에는당신이 애밋을 안정 애착을 가진 아이로 키우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둘은 극단적인 사례이고 이 둘 사이에 놓인 스펙트럼에
안정애착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뭔가 나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때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주고 도와주리라는 것을 알아야 인생을살아갈 수 있다. 안정애착이라는 개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인 요소이다. 누군가가 나를 잘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둘러볼 필요가 없다. 만일 높은 수준의 안정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일종의 이상적인 보험에 가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보험만 있으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법처럼놀라운 느낌이다.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예를들어, 설령 일이 잘 안 풀린다 해도 누군가가 나서서 우리를 일으켜세우고 또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사업이든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넘볼 수 없는 낯선 사람과도 기꺼이 함께 위험을 무릅쓰며 낭만적인 모험을 시도할 것이다. 자기가 끝내 잘하게 될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는 분야를 두려움 없이 파고들어 공부할 것이다. 기꺼이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찾을 것이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이 들 수 있다. 요컨대, 안정애착은 우리가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에 더 집중하게 하고 부정적인면에 대해서는 덜 걱정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팬데믹의 일반적인 스트레스로 시작했지만, 이 스트레스는 경제적인 문제에 따른 어려움과 아들을 집에 둔 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겹쳐지면서 한층 악화되었다. 그러다가 이 스트레스는 아들 마이크가 교사에게 부당한 대우와 모욕을 받는 일로 인해 더욱 심각해진다. 이 모든 것이 제니의등을 떠밀어서 그녀를 한계점까지 밀어붙이고, 바로 이 시점에서 그녀는 자기가 놓인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자기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누군가 꾸며낸 고의적이고 사악한 음모의 결과라고설명하는 동영상을 온라인에서 계속 본다. 보면 볼수록 제니의 신념은 점점 커진다. 온 세상이 팬데믹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건 모두 가짜다. 실제로 바이러스는 없다.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사기극일 뿐이다. 마스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차단 목적이 아니라, 뇌로 유입되는 산소의 흐름을 차단해서 사람들을 순한 양
여기서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점은 실질적인 쟁점은 어떤 객관적 진실이나 주장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자기 고통의 이유를 해석하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느끼는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그가 놓여 있는 상태를 인정하고 고통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토론을 시작한다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나은 지점에서 시작하는 셈이 된다
‘설득당할 마음가짐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라는 문제의 핵심은, 옳은 일을 하는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를 포함하여 옳고자 하는 거의 보편적인 인간 욕구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도전을 받으면 자기 정체성이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공격을 방어하면서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것, 즉 자기가 옳다는 느낌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딥캔버싱은 이런 경향성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 이해에 대한진정한 관심과 열린 태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접근법으로대화가 이루어지면 방어기제가 줄어들어서 양쪽 모두 마음을 조금씩 더 열고(아주 조금만 더 열릴 뿐이니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나리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서로에게 다가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놓인 환경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통제하거나거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이나 사건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 다른 방식으로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된다. 자기 주변의조건을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불편한 느낌을 누그러뜨리는비교적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현재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주는 어떤 이야기(서사)를 찾고 또 비난을 퍼부을 대상을 찾으면 된다. 그 설명이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설명이 진실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저 그 설명과 비난이 자기에게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어리석음이나 인간적인 실수나 우연을 무시하면서까지 악의적인의도가 있다고 가정하는 태도는 과연 합리적인가? 나쁜 의도라는복잡한 그물망을 제안하는 태도는 과연 합리적인가? 그런 예외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 만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 세 면도날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설명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이세 개의 면도날을 이용해서 의도성과 복잡성과 불충분한 증거와관련해서 상대방의 편견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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