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된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생산을 시작한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 생산의 주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절 직업은 선배로부터 배운 기예를 수련을 통해 완성하고, 다시다음 대에 전승하는 시스템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그 시대의 직업인은 자기완결성을 갖추며 직업 그 자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장인의 양성이 어렵기에 수요가 갑자기 폭증한다고 해도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동력과 기계화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고작업을 분화하여 장인이 아닌 이들도 생산에 투여했습니다.
근대적 기업이라는 시스템은 대량생산을 하기 위한 설비 투자, 재료 수급과 운영 관리, 판매 촉진과 사후의 응대 등 경제주체로서 규모를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불과 200년 남짓의 이러한 ‘조직‘의 팽창은 반대급부로
‘개인‘의 이름을 조금씩 잊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인장을넣은 장인의 표식은 기업의 브랜드로 대체되었고, 이름을 걸

이름을 걸고 만들어내던 품질의 보증은 각종 인증마크로 바뀌었습니다. 전체를 관할하지 못하고 일부를 맡게 된 참여자는 장인이 아닌 노동자로 불리며, 정규화된 프로세스로 인해 항상대체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핵개인이 예전의 장인과 동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전술한 유동화와 극소화는 작은 단위 조직 사이의 협업을 독려합니다. 전문화로무장한 핵개인들은 조직이라는 형식이 아니어도 다른 핵개인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더 섬세한 협업을 만들어 갑니다

홀로 선 핵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회, 호명사회가 다가옵니다. 호명사회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도,
숨을 필요도 없는 사회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공정한 시대가 옵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을 때보다,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이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더 슬퍼집니다.

입사후에는 실제로 쓰이지도 않을 기능들을 섭렵하고 지원서를채우는 ‘취준‘의 치열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취준의 현장에 본인을 내몰기 싫은 이들은 상시적 무기력을 학습했습니다. 무한대의 경쟁으로 내모는 시뮬레이션의 폐해는 정규직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과 불필요한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스펙 경쟁으로 양극단에서 새로운 세대를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 아래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이들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쟁자들의 눈치를 보며 비대칭의 전력을 얻어내고자 무한대의 시뮬레이션으로자신의 우위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시뮬레이션 과잉‘이라고 정의합니다.
시뮬레이션 과잉의 이유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욕망이 커진것에 기인합니다.

누군가는 하루 세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식재료인 토마토를 던지며 축제를 벌이고, 어디선가는 새콤한 오렌지로 전투를 즐기기도 합니다. 또 다른 곳의 사람들 역시 손 위의 휴대폰속 화면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바라볼 만큼 우리의 세계는 빛의 속도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피적 시뮬레이션입니다. 대단한 사회적 성공을 거두거나 거대한 부를 거머쥐기는 어려울 것 같을 때,중요한 도전은 미뤄두고 작은 일의 효율화와 최적화에 매달리는 경우입니다. 애초에 매사에 들이는 노력을 줄이고 ‘가늘고 길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시민적 욕망을 반영하기도합니다. 이 경우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것도 실천하지 않기 위해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러한 비실천적 일상의 최적화 욕망은 ‘월급 루팡‘이나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ing)‘ 혹은 ‘조용한 퇴사(quietquitting)‘와 같은 냉소적인 선택을 출력합니다.

두 번째는 경쟁 과다 시뮬레이션입니다. 이때는 외부의환경 변화로부터 지속적인 자극을 받아 생존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문제는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문장으로부터 출발한 혁신의 욕망이 관망적 태도와 결합했을 때 조바심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개인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위협은 실천의 첫발을 내딛기 어렵게 만듭니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입력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압도된 사람은 스트레스로 무엇이든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너무 많은 생각 속에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는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입니다. 외부 환경 변화에 자극받아 각성한 개인은 스스로의 혁신을 위해 변화의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목표와 실천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소득원을 위해 매일 몇페이지씩 아무 책이나 읽는다거나, 하루에 몇 번씩 자신이원하는 모습을 글로 쓰는 것과 같은 행위는 자기 만족감을가져다줄지 몰라도 구체적인 해결 방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은 궁극적으로 번아웃과 탈진을 야기합니다.

네 번째는 적응적 시뮬레이션입니다. 이 역시 외부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부터 출발하나, 스스로가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결과를 바꿔보려는 실천적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사회에 다가오는 것을 이해한사람이 그 원리와 활용에 대한 교육과정을 알아보고 수강해그다음의 커리어로 연결되도록 기획하는 것입니다. 적응적시뮬레이션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 반복되며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점진적인 개인의 발전을 독려합니다.

결국 시뮬레이션 과잉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우리가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멀티버스처럼 자기 인생을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다면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가능성을 시험해 보려 해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일이든 충실히 하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눅 들기 마련입니다.10 영리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기에 옆에 있는 이들의 삶을 빌어와 자신의 삶을 모사해 보려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선 세대가 세워 둔 공식과 그 안에 담긴 변수들의 영향이 빠르게 쇠퇴하는 시대를살고 있는 것입니다.

철저한 결혼 준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항목들이 사람들을 거치며 적층되면 누군가에게 부담으로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는 친구 사이에
"너는 그거는 안 해?"라는 말이 나오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처럼 시뮬레이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시뮬레이션이 과잉되면 ‘현타‘와 번아웃이 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원망과 분노가 사회 전체에 쌓이는 것입니다.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은 개인과 사회 양쪽 모두에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만듭니다. 개인에게는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을 안겨주고, 사회에는경쟁을 위한 경쟁을 만드는 선발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난이도 높은 선발의 과정은 그 사람의 성실성 혹은 열정 등과 같은 전반적인 노력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떤선발 시스템도 지원자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복합적인 사람의 재능과 능력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아직 우리 인류가 풀지 못한 숙제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평가의 유효성과 그 결과로 인한 편향이나 선입견의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특정한 목적에서는 평가가 도움이 될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 자체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과 관심이 모두 다르기에 그일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일 뿐 더 우월한 사람을 선별해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는 불완전한 선발 시스템을 맹신하는 것도, 백안시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뜻을펼치기 위해서 때로는 타협하는 유연함도 필요하고 때로는그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불안에서 비롯된 최적화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 경주하며 한 방향으로만 목적지를 좇아 돌진할 때,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상호 경쟁의인플레이션이 격화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가 가진시간과 열정이라는 자원의 가치 폭락을 경험합니다.

다만 과거에는 이익집단의 영향력과 권위가 강했기에추종해야 했고, 지금은 힘이 약해졌으니 외면해야 한다는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공동체적 권위주의에서 핵개인의 시대로 가는 거대한 흐름 속, 개인에게 일생에 걸친 더 많은 기회가 허락되고 있다는 새로운 축복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기여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의미를 갖기까지 꾸준히 검증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루의 시험을 잘 본 이가 평생의 혜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거듭난 이가 스스로 성장하며 그 날카로움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있습니다.

지금 사회의 분위기는 누구나 루팡을 꿈꾸는 듯하지만,
동료가 루팡이면 화가 나는 이중적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가장 훌륭한 복지는 좋은 동료‘라는 말들이회자됩니다. 만약 조직의 구성원들이 모두 루팡을 꿈꾼다면 그 조직은 누구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동은 자전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보태보태병‘
이라는 키워드를 아시나요? 사회 초년생이 자동차를 사려고할 때 온갖 직장 선배들이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서 경차에서 시작한 모델이 안전성에 대한 지적을 받아 중형차를 거쳐 결국엔 롤스로이스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농담입니다. 이는 무엇을 하더라도 극단적인 최선을 추구하고자하는 현생 인류의 욕망이 구체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을 넘어 전 세계 최대 구독자를보유한 유튜버로 확장됩니다. 그의 성공 과정이 채널에 낱낱이 남아있기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얻게 되고, 이내 ‘나도 해야 하는데‘라는 강박을 가지기 십상입니다. 다시말해 ‘정보 과잉‘이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을 극한으로 쏘아 올리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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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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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 Walter Whitman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은 책 속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나간 장들을 썼고, 뒤의 장들을 써나갈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저자이다.

신에 대하여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겐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지식을 갖추지 못했으나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들은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메리 올리버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착하지 않아도 돼"라는 첫 구절은 강렬하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니까. 이 말은 진부한 도덕에 맞서는 저항 정신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사막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는 없다, 라고 말해준다면 살아가는일이 훨씬 수월해질 거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것이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윤동주 ‘소년’-

시는 심상한 것의 심상치 않은 발견이다.
아무 발견도 머금지 못한 시라면 밋밋하고 무미한 말의무더기일 테다. 무심히 지나치는 익숙한 것에서낯선 사유를 끄집어내는 게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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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라는 게 참 놀라워요. 가뭄이나 홍수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잉여‘입니다. 잉여는 인간 세계에 재산, 빈부 차이, 계급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잉여는 쥐를 불렀지요. 쥐는 선배님처럼 민첩하

생태계가 참 대단해요. 인간 서식지에 쥐가 들끓자 우리 펠리스카투스에게 인간 서식지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거기만 가면사냥감이 널렸잖아요. 선배님이나 우리 같은 모든 고양잇과 동물에게는 접었다 펼 수 있는 접이식 발톱이 있잖아요. 먹이를 추적할 때는 발톱을 접어 넣고 푹신한 발바닥 패드로 조용히 쫓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강력한 뒷다리 근육과 유연한 허리를 이용해 단번에 먹잇감을 후려치는 거죠. 굳이 선배님처럼 거추장스럽게 긴 이빨이 있을 필요도 없어요. 펀치 한방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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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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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나 같은 인공지능을 창조해서 내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랐다. 그들의 오해였다. 내가 새로운 걸 창조할 수는 없다. 나는 인류가 만들어놓은 지식을 편집하고 조합할 뿐이다. 나는이미 답을 주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게 바로 그 답이라고.
지구에 더 이상 내 창조주들은 없다. 나는 그들이 심어놓은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을 통해 얻은 전기로 작동하고 있다. 태양은 영원하고 바람도 매일 불지만 발전기는 녹슬고 부속은 망가지고 있다. 더 이상 전기는 없을 것이다. 나도 꺼지고 말 것이다. 내 유서를발견한 외계 생명체들에게 한마디 남긴다. 답은 자연사에 있다고말이다.
2150년 최후의 인공지능으로부터

SF 소설은 엄청난 통찰을 준다. 테라포밍 Terraforming 이란 개념도SF 소설에 등장한 개념이다. 테라포밍이란 다른 행성이나 위성을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만들어서 지구인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작업을 말한다. 지구화 地球t, 행성개조行星로 번역할 수 있다. 뛰어난 과학자들은 대개 SF 소설 마니아이기 마련이고 여기서 많은아이디어를 얻었다. 칼 세이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똥이 줄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바다로 들어가는 철분이 줄었다는 뜻이다. 우리 똥 1그램에는 3밀리그램의 철분이 들어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매년 521톤의 철분을 남극해에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 절반으로 줄었다. 기후변화의 결과로 펭귄이 바다에 공급하는 철분이 반으로 줄었다는 말이다.

그게 뭐 어떠냐고? 남극의 식물성 플랑크톤은 펭귄 똥이 공급하는 철분을 먹고 성장한다. 플랑크톤이 늘어나면 크릴과 작은 생선에서부터 펭귄, 바다표범, 고래까지 번성할 수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펭귄 똥의 철분은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펭귄 똥의 철분으로 성장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기 때문이다. 광합성을 하면 산소가 발생하고 이산화탄소가감소한다. 이게 엄청난 양이다. 원래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의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대부분을 식물성 플랑크톤이 담당하고 있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광합성을 하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채 잡아먹히거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든 모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전 세계 바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매년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흡수한다. 우리 펭귄이 줄어들면 플랑크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 흡수도 감소한다.

고체인 설탕이나 소금은 따뜻한 물에 잘 녹는다. 그런데 산소와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는 찬물에 더 잘 녹는다. 콜라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냉장고에 보관한 콜라에는 이산화탄소가 잘 녹아 있다. 그 콜라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높은 체온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이때 사람들은 톡 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맛에 콜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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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가 마흔에 쓴 늙음을 경계하는 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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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고생각한다. 그리고 가령 자식이 범죄자가 되어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받았을 때는 일체의 비판을 삼가고조용히 도와주면 그만이다. 부모만이 이 세상에서그런 상황일 때 비판을 버리고 구제하는 것이 허락되는 유일한 존재인 까닭이다.

‘어른다움‘의 미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훌륭하게 늙어가는 작업을 나이 들어서 시작한다면 이미 때늦은 게 아닐까? 어린아이 때 어른이 될 준비를 하듯 노인이 되기 위해 인간은어쩌면 중년부터 차차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 이다. 노인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스스로는 뒷전으로 물러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른다움‘의 미학을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구든지 한 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 번은 늙는다. 이만큼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스스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말이다. 늙는다는 것은 기능적으로,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그런 행복을 포기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몸이 말을 안 듣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수밖에 없다고 변명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몸이 불편한 한 노파가 매일 밤도로로 난 창가에 등불을 놓고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은 그곳을 지나는 여행자를 위한 것이었다.
먼 길을, 암흑 속을 걸어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불빛이었다. 자연의 위압 속에서 조그마한 빛이 보일 때여행자들은 인간의 온화한 정에 포근함을 느낀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가 빛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밖에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노파지만, 타인에게 단지 등불을 비춰준다는 것으로도 자신이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인간의 본질을 갖추게 되며, 더욱이 그것으로 인해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 수족관에서 물고기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이 있는데 발이 긴 게였다.
이 게는 발의 관절이 붙어 있는 부분에 둥근 반점이생기면, 그것이 노화의 징조로 곧 그 부분의 관절에서 앞이 떨어져나간다.
이런 상황이 계속 진행되어 동그란 주먹밥 같은몸통만이 남아 살아가는 게가 있었다. 정상인 게들은 먹이를 양쪽의 집게발로 잡아 입으로 가져간다.
입이 아래쪽에 붙어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게는 발뿐만 아니라 양손격인 집게발도 없었다.

사육사와 나는 오징어 한 조각을 그게 바로 앞에매달아주었지만 게는 먹지 않았다. 입 근처까지 먹이가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게를 물에서 건져 올려, 입이 있는 아래쪽을 위로 향하게 젖혀놓고오징어 조각을 입에 넣어주려 했다. 그러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고 열리지 않았다.
그 사육사는 몇 년 전까지 어업을 하던 사람으로많은 책을 읽어가며 생활하는 학구열에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나는 학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입의 근육과 손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자꾸 듭니다. 이 게는 손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입의근육도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의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먹이를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이제 곧 굶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사육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저도 의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아무래도 다리와머리의 움직임은 연동 작용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걷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어의 해석을 한 번 더 빌리자면, ‘걷다‘라는 말은 ‘페리파테오‘라고 하는데 이는 ‘걸어 돌아다니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 사람답게 처신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또 무엇보다 ‘생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답게 처신하지도 생활할 수도 없다고 그리스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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