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된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생산을 시작한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 생산의 주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절 직업은 선배로부터 배운 기예를 수련을 통해 완성하고, 다시다음 대에 전승하는 시스템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그 시대의 직업인은 자기완결성을 갖추며 직업 그 자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장인의 양성이 어렵기에 수요가 갑자기 폭증한다고 해도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동력과 기계화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고작업을 분화하여 장인이 아닌 이들도 생산에 투여했습니다. 근대적 기업이라는 시스템은 대량생산을 하기 위한 설비 투자, 재료 수급과 운영 관리, 판매 촉진과 사후의 응대 등 경제주체로서 규모를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불과 200년 남짓의 이러한 ‘조직‘의 팽창은 반대급부로 ‘개인‘의 이름을 조금씩 잊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인장을넣은 장인의 표식은 기업의 브랜드로 대체되었고, 이름을 걸
이름을 걸고 만들어내던 품질의 보증은 각종 인증마크로 바뀌었습니다. 전체를 관할하지 못하고 일부를 맡게 된 참여자는 장인이 아닌 노동자로 불리며, 정규화된 프로세스로 인해 항상대체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핵개인이 예전의 장인과 동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전술한 유동화와 극소화는 작은 단위 조직 사이의 협업을 독려합니다. 전문화로무장한 핵개인들은 조직이라는 형식이 아니어도 다른 핵개인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더 섬세한 협업을 만들어 갑니다
홀로 선 핵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회, 호명사회가 다가옵니다. 호명사회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도, 숨을 필요도 없는 사회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공정한 시대가 옵니다.
사람은 가진 것이 없을 때보다,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이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더 슬퍼집니다.
입사후에는 실제로 쓰이지도 않을 기능들을 섭렵하고 지원서를채우는 ‘취준‘의 치열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취준의 현장에 본인을 내몰기 싫은 이들은 상시적 무기력을 학습했습니다. 무한대의 경쟁으로 내모는 시뮬레이션의 폐해는 정규직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과 불필요한 경험치를 쌓아나가는 스펙 경쟁으로 양극단에서 새로운 세대를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 아래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이들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쟁자들의 눈치를 보며 비대칭의 전력을 얻어내고자 무한대의 시뮬레이션으로자신의 우위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시뮬레이션 과잉‘이라고 정의합니다. 시뮬레이션 과잉의 이유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욕망이 커진것에 기인합니다.
누군가는 하루 세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식재료인 토마토를 던지며 축제를 벌이고, 어디선가는 새콤한 오렌지로 전투를 즐기기도 합니다. 또 다른 곳의 사람들 역시 손 위의 휴대폰속 화면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바라볼 만큼 우리의 세계는 빛의 속도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피적 시뮬레이션입니다. 대단한 사회적 성공을 거두거나 거대한 부를 거머쥐기는 어려울 것 같을 때,중요한 도전은 미뤄두고 작은 일의 효율화와 최적화에 매달리는 경우입니다. 애초에 매사에 들이는 노력을 줄이고 ‘가늘고 길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시민적 욕망을 반영하기도합니다. 이 경우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것도 실천하지 않기 위해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러한 비실천적 일상의 최적화 욕망은 ‘월급 루팡‘이나 ‘조용한 휴가(quiet vacationing)‘ 혹은 ‘조용한 퇴사(quietquitting)‘와 같은 냉소적인 선택을 출력합니다.
두 번째는 경쟁 과다 시뮬레이션입니다. 이때는 외부의환경 변화로부터 지속적인 자극을 받아 생존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문제는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문장으로부터 출발한 혁신의 욕망이 관망적 태도와 결합했을 때 조바심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개인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위협은 실천의 첫발을 내딛기 어렵게 만듭니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입력과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압도된 사람은 스트레스로 무엇이든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너무 많은 생각 속에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는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입니다. 외부 환경 변화에 자극받아 각성한 개인은 스스로의 혁신을 위해 변화의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목표와 실천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소득원을 위해 매일 몇페이지씩 아무 책이나 읽는다거나, 하루에 몇 번씩 자신이원하는 모습을 글로 쓰는 것과 같은 행위는 자기 만족감을가져다줄지 몰라도 구체적인 해결 방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기 충족적 시뮬레이션은 궁극적으로 번아웃과 탈진을 야기합니다.
네 번째는 적응적 시뮬레이션입니다. 이 역시 외부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부터 출발하나, 스스로가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결과를 바꿔보려는 실천적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사회에 다가오는 것을 이해한사람이 그 원리와 활용에 대한 교육과정을 알아보고 수강해그다음의 커리어로 연결되도록 기획하는 것입니다. 적응적시뮬레이션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 반복되며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점진적인 개인의 발전을 독려합니다.
결국 시뮬레이션 과잉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우리가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멀티버스처럼 자기 인생을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다면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가능성을 시험해 보려 해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일이든 충실히 하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눅 들기 마련입니다.10 영리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기에 옆에 있는 이들의 삶을 빌어와 자신의 삶을 모사해 보려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선 세대가 세워 둔 공식과 그 안에 담긴 변수들의 영향이 빠르게 쇠퇴하는 시대를살고 있는 것입니다.
철저한 결혼 준비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항목들이 사람들을 거치며 적층되면 누군가에게 부담으로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는 친구 사이에 "너는 그거는 안 해?"라는 말이 나오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처럼 시뮬레이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시뮬레이션이 과잉되면 ‘현타‘와 번아웃이 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원망과 분노가 사회 전체에 쌓이는 것입니다.
상호 경쟁의 인플레이션은 개인과 사회 양쪽 모두에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만듭니다. 개인에게는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을 안겨주고, 사회에는경쟁을 위한 경쟁을 만드는 선발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난이도 높은 선발의 과정은 그 사람의 성실성 혹은 열정 등과 같은 전반적인 노력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떤선발 시스템도 지원자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복합적인 사람의 재능과 능력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아직 우리 인류가 풀지 못한 숙제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평가의 유효성과 그 결과로 인한 편향이나 선입견의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특정한 목적에서는 평가가 도움이 될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 자체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과 관심이 모두 다르기에 그일에 적합한 사람을 뽑는 것일 뿐 더 우월한 사람을 선별해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는 불완전한 선발 시스템을 맹신하는 것도, 백안시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뜻을펼치기 위해서 때로는 타협하는 유연함도 필요하고 때로는그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불안에서 비롯된 최적화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 경주하며 한 방향으로만 목적지를 좇아 돌진할 때,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상호 경쟁의인플레이션이 격화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가 가진시간과 열정이라는 자원의 가치 폭락을 경험합니다.
다만 과거에는 이익집단의 영향력과 권위가 강했기에추종해야 했고, 지금은 힘이 약해졌으니 외면해야 한다는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공동체적 권위주의에서 핵개인의 시대로 가는 거대한 흐름 속, 개인에게 일생에 걸친 더 많은 기회가 허락되고 있다는 새로운 축복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기여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의미를 갖기까지 꾸준히 검증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루의 시험을 잘 본 이가 평생의 혜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거듭난 이가 스스로 성장하며 그 날카로움이 주머니를 뚫고 나올 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있습니다.
지금 사회의 분위기는 누구나 루팡을 꿈꾸는 듯하지만, 동료가 루팡이면 화가 나는 이중적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가장 훌륭한 복지는 좋은 동료‘라는 말들이회자됩니다. 만약 조직의 구성원들이 모두 루팡을 꿈꾼다면 그 조직은 누구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동은 자전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보태보태병‘ 이라는 키워드를 아시나요? 사회 초년생이 자동차를 사려고할 때 온갖 직장 선배들이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서 경차에서 시작한 모델이 안전성에 대한 지적을 받아 중형차를 거쳐 결국엔 롤스로이스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농담입니다. 이는 무엇을 하더라도 극단적인 최선을 추구하고자하는 현생 인류의 욕망이 구체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을 넘어 전 세계 최대 구독자를보유한 유튜버로 확장됩니다. 그의 성공 과정이 채널에 낱낱이 남아있기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얻게 되고, 이내 ‘나도 해야 하는데‘라는 강박을 가지기 십상입니다. 다시말해 ‘정보 과잉‘이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을 극한으로 쏘아 올리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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