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없이 살았다며 삶을 마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영원히 현재진행형이다. 심지어 죽음마저도 그 일부일 뿐 이다.
오늘은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니다. 따라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I am not what I was).
이제까지의 삶이 주로 크로노스(양으로서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삶은 카이로스(질로서의 시간)이어야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무엇을 하는시간이 아니라 창조적 영감을 가져다주고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는 시간이다. 이제 그런 시간으로서의 삶을 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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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이는 직선의 시간이 아니라 곡선의 시간이다.
빠르게 내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느려도 밀도를 채우는 시간이다. 속도가 풍경을 담고 풍경은 속도를 품는 시간이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길고 험한 길 건너왔다. 직선에 익숙해서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곡선의 시간에 적응하지 못한다.
감속에 분통을 터뜨리거나 정반대로 잔뜩 겁을 먹고 엉금엉금 긴다. 속도 조절을 배우지 못하며,살았고 그렇게 달려왔으니 그게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늘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 함함하게 사는 지혜를 누릴 시간이다.
성찰은 그래서 필요하다.
영원한 삶은 없다. 매 순간 충실하면 된다. 성찰된 그 짧은시간들이 우리의 삶의 농밀함을 결정한다. 그런 시간이 되었다. 가끔 제주도에 가면서 걸었던 길, 올레, 오름, 해변은 단순히 이국적인 풍광이어서가 아니라 성찰과 사유의 깊이와 너비‘를 채우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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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매일 뜨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간들은 늘 그게
그것인 듯하지만 한순간도 같은 시간이 아니다.
다만 어떤밀도의 시간이었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바쁘게 산다고, 성공적인 삶이라고 농밀한 시간은 아니다. 나의 사유와 성찰,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실천이 밀도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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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서히 로마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전의 로마인들은 항상 미래를 더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더 잘 살기 위해,
오늘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과거가 더 훌륭했다는 생각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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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고의 과정이 인간들에게는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자영업자들의 상당수가 실패의 고배를 마시지만, 새로 자영업을 시작하는 상당수의사람들 또한 본인만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교수의 절반 이상이 본인이 나머지 절반보다 훨씬 더 강의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운전자의 상당수도 본인이 과반수보다는 운전을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착각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조명 효과 -pot.
light fict라고 하는데, 우리는 항상 스스로가 다른 사람보다도 잘하고 다른 사람이 이러한 나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관심을 갖고있다고 믿는다.
이는 분명 고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로마의 황제들도 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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