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도 결국은 잘 살기 위해서잖아요. 나누는 것 외에는 다른 답이 없더라고요. 저는 특히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함께하고 나누는 건 생명력이 굉장히 길어요.

예를 들면 딸아이가 파리로 공부하러 가기 전에 저희가 1년치 학비를 모아놨어요. 그런데 쌍용차 소식을 접하고 너무 가슴이 아픈데, 관련해서 금전적으로 돕고 싶은 두세 군데의 단체가 있는 거예요. 딸아이도 쌍용 상담 현장에 늘 같이 갔으니까 불러서 물었어요. ‘얘, 아버지가 여기다 네 학비를 내고 싶어, 어떻게 생각하니?’ 딸이 그러더라고요, ‘내! 프랑스는 무료로 갈 방법을 찾아볼게. 안 되면 1년 쉬었다 가지 뭐.’ 그래서 그 돈을 다 냈어요. 그 직후에 『홀가분』이 나왔는데 딱 그만큼 인세가 들어왔어요. 그 경험을 하니까 ‘어 이거 봐라, 되게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요즘 제가 돈을 무지하게 잘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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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무의식까지 가면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근원이 있고 동기가 있어요. ‘환자는 언제나 옳다(Patient is always right)’는 말도 무의식까지 사람을 깊이 이해했을 때 나오는 거죠.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옳죠.
극성맞은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굉장히 유한 분이어서 저는 권위를 실감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무의식에 굉장히 충실해요. 제가 살아오면서 겉으로 보기엔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 같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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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이생에도 좋고 다음 생에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결정적으로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글쓰기 말고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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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본성과 쓰기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등. 그래서 존재론을 먼저 구축한 다음 실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실전부터 했다가는 금방 밑천이 바닥나 버린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해 버린다. 뭐든 근본에 닿아 있어야 삶의 기술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실용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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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치유책은 간단하다. 막힌 곳을 뚫으면 된다. 연암이 바로 그렇게 했다. 청년 연암은 명약이나 명의를 찾기보다 거리로 나가 사람을 만났다. 거리의 괴짜들이나 어깨들과 접선하고 신선술을 닦는 노인을 찾아 헤매고 이야기꾼 노인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지금 의학의 기준으로 봐도 최고의 치유법에 해당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치유의 길로 나선 것이다. 연암식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이 점이 청년 연암과 우리 시대 청춘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연암의 청춘도 시퍼렇게 멍들었다. 시대적 차이야 있겠지만 누구에게도 청춘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몸이 보내는 메시지다. 저 깊은 심연에서 보내는 생명의 메시지. 연암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응답했다. 입신양명이라는 주류적 코스에서 벗어나기로 한 것. 궤도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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