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게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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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이끈 것은 단순한 삶에 대한열망이었다. 쓸모없는 것들과 최대한 멀어져서 딱 본질에만 충실하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내 시간을잡아먹고,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집안일에 시간을 덜 쏟는 대신 아이들과 놀아주기, 중요한업무에 집중해서 빠른 시간 안에 끝내기, 오늘은 뭐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아침 운동하기. 그렇게 구체적인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다.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정신을 쏙 빼는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어떻게 중요한 것에 집중하겠는가. 일상은 루틴으로 만들어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고, 내 에너지를 빼앗는 흡혈귀 같은 사람들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었다. 신경을 빼앗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야 했다.

미니멀리즘은 물건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미니멀리즘을 향한 획일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한다. 당신이 상상하는 미니멀리스트의 하얗고휑한 집을 제안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모습을 일방적으로 좇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으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찾을 수있다. 한 가지 기준만 잊지 않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 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덜 중요한 것은 지워버려라.

흠 잡을 데 없이 합리적인 대답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말의 밑바탕에는 어느 날 그의 집에 있는 어떤 물건(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모든 물건)을 더 이상 쓰지 못할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세상이 바닥날지 모른다는 가정.
이와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다음에 살 신발이 지금 것만큼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너덜너덜해진 신발을 버리지 못한 적이 있는가? 다시는이만큼 파격적인 할인이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서 단골 매장에서 한 달 용돈을 모두 써버린 적이 있는가? ‘재고 5개‘라는 빨간색 작은 글씨가 눈에 띄어 장바구니를클릭한 적이 있는가?
이것이 희소성의 법칙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이사고 싶은 것이 바닥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알면서 이와반대로 자원은 바닥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대개 이런 착각에 빠진다. 희소성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무언가에 집착할 만한 합당한 이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것을 사는 일과 낡은 것을 버리지 않는 일, 이 두가지 행동의 결과로 우리는 지금껏 축적한 물건에 치여물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버거워한다.

내 조언은 단순하다. 부디 해로운 인간관계를 지금 상태로 방치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생각하자. 볼 때마다스트레스 받는 어수선한 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왜 이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인간관계를 그대로 방치하는가? 누군가를 멀리한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면서 자신과 관계를 맺는 대상을 부단히 경계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자신을 존중받도록만들 수 있는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들과 관계가 있을 뿐이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단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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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현대의 본질적 상황이다. 우리를 비관주의에 빠뜨린 것은 단지 세계대전만이 아니며 최근의경제 침체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시적인 부의 감소나 심지어 수백만 명의 죽음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비어 있는 것은 우리의 집이나 금고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이제는인간의 변치 않는 위대함을 믿거나 삶에 죽음으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영적 고갈과 의존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마치예수의 탄생을 갈망했던 그 시대처럼.

어쩌면 아시아가 유럽보다 더 심오했고 중세 근대보다 더 심오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과학으로부터 항상 적당히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가닿는 모든 것을 죽이고 영혼을 뇌로, 생명을 물질로인격을 화학으로, 의지를 운명으로 전락시키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어느 대담하고 금욕적이며 아직도 종교적 열정이 강한 인종이 죽음과의 ‘과학적인 사랑 속 에서 환멸에 빠진 서구인들을 사로잡아 흡수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것이야말로 사상의 최종 승리인 셈이다. 모든 사회는 분열될 것이며 마침내 사상 가 자신마저 무너지리라. 어쩌면 사상의 발명이야말로 인류의 근본적 실수가 아닐까?

그리하여 이 최후의 잔혹극에서 철학은 과학과손을 잡고 파괴에 착수한다. 철학이 그토록 오만하게설파하고 열렬하게 추구하는 총체적인 시각이야말로의지와 환희의 (매우 드물지만) 가장 위험한 적이다.
세상이 그토록 거대하고 생물 종은 무수히 많으며 시간은 무한한 것이라면 한 개인이 그 어떤 의미나 존엄을 지닐 수 있겠는가? 지식이 늘어나는 자에게는 그만큼 슬픔도 늘어나며, 지혜는 딱 그만큼의 허무뿐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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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파악되듯이 의미가 파악되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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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 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 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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