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현대의 본질적 상황이다. 우리를 비관주의에 빠뜨린 것은 단지 세계대전만이 아니며 최근의경제 침체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시적인 부의 감소나 심지어 수백만 명의 죽음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비어 있는 것은 우리의 집이나 금고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이제는인간의 변치 않는 위대함을 믿거나 삶에 죽음으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영적 고갈과 의존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마치예수의 탄생을 갈망했던 그 시대처럼.

어쩌면 아시아가 유럽보다 더 심오했고 중세 근대보다 더 심오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과학으로부터 항상 적당히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가닿는 모든 것을 죽이고 영혼을 뇌로, 생명을 물질로인격을 화학으로, 의지를 운명으로 전락시키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어느 대담하고 금욕적이며 아직도 종교적 열정이 강한 인종이 죽음과의 ‘과학적인 사랑 속 에서 환멸에 빠진 서구인들을 사로잡아 흡수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것이야말로 사상의 최종 승리인 셈이다. 모든 사회는 분열될 것이며 마침내 사상 가 자신마저 무너지리라. 어쩌면 사상의 발명이야말로 인류의 근본적 실수가 아닐까?

그리하여 이 최후의 잔혹극에서 철학은 과학과손을 잡고 파괴에 착수한다. 철학이 그토록 오만하게설파하고 열렬하게 추구하는 총체적인 시각이야말로의지와 환희의 (매우 드물지만) 가장 위험한 적이다.
세상이 그토록 거대하고 생물 종은 무수히 많으며 시간은 무한한 것이라면 한 개인이 그 어떤 의미나 존엄을 지닐 수 있겠는가? 지식이 늘어나는 자에게는 그만큼 슬픔도 늘어나며, 지혜는 딱 그만큼의 허무뿐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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