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등장하는 ‘거목 이야기‘는 말합니다. 쓸모 있는 나무는 베여 대들보나 서까래로 사용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베이지 않고 거목으로 자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국가나 사회에 내가 어떻게 하면 쓸모가 있을지 고민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국가나 사회가 쓸모가 있는지 고민하라는 장자의 도전인셈입니다. 인재, 즉 체제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격렬히 거부하자는 것!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향유하자는 것! 크게는 국가나 사회, 작게는 회사나 가정에서정의를 추구하지 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담고 있는 곳에서쿨하게 떠나자는 것!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함께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들어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그 밟고 있는 땅이 사람에게 쓸모가있겠는가?" 혜시가 "쓸모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자명한 일이네." 「외물」
쓸모 있는 땅, 즉 밟고 있는 땅을 제외하고 지금 밟고 있지 않은 땅을 저지하 가장 깊은 곳 황천까지 파내보자는겁니다.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으니 없애도 지장이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죠. 자신이 발 디디고 있던 쓸모 있는 땅을 제외하고쓸모없는 모든 땅을 없애버린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수천, 수만 킬로미터 높이의 대나무 꼭대기에 서 있는 형국이 되겠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람은 현기증을 느끼고 저 깊은 황천까지추락하고 말 겁니다. 그가 밟고 있던 작은 땅, 그 쓸모 있다던 땅마저 휑하게 비어 쓸모가 없어지는 아이러니는 이렇게 발생합니다
마침내 장자는 역설합니다. 이렇게 쓸모없음은 알량한 쓸모 있음이나마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어쩌면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보다 더 쓸모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합니다. ‘밥도 나오지 않고 쌀도 나오지 않는‘ 쓸모없는 일들을많이 할수록 우리 삶은 행복하니까요. 시도 글도 그리고 사유도그리해야만 합니다.
시인이나 철학자는 농산물을 생산해 판매하는 농부라기보다텃밭을 가꾸는 사람과 같습니다. 물론 텃밭에서 나는 상추나 고추를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상추나 고추를 팔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농사를 제대로 지으라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농약을 쓰라고 유혹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텃밭을 지키려는 사람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텃밭을 일구는 행위는 쓸모에 전적으로 종속된 행위가 아니니까요. 그저 땀 흘리는 것이, 땅 냄새와 풀 냄새, 혹은 짧은 시간 동안 풍기는 꽃 냄새가 좋을 뿐입니다. 이마의 땀을 근사하게 만드는 싱그러운 바람도 좋고요. 텃밭을 가꾸는 사람에게 밭에서자라는 것들은 소용이 적고 무용이 많습니다.
시들어버리는 것도 많고 벌레의 공격을 받은 것들도 많습니다. 간혹 다른 사람과 나누기는 하지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말 테니까요. 누군가 맛나게 먹고 행복해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상추나 고추를 받고 그 대신 우유를 갖다 주는 사람도, 혹은돈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사양하다 안 되면 우유나 돈을받으면 그만입니다. 시인의 시와 철학자의 글은 텃밭을 일군 사람이 이웃에게 건네는 상추나 고추 같은 겁니다. 좋아서 한 일의 결과이고, 그 결과물을 이웃들에게 건넨 것이니까요.
우리 모두가 철학을 위한 장자의 변명을 ‘삶을 위한 변명‘으로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성적이 좋은 아이여서, 품이 덜 드는 아이여서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쓸모가 있는아이, 동년배보다 쓸모가 더 큰 아이라는 것이 사랑의 이유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시에 실패할 때, 취업에 실패할 때, 혹은정리해고라도 당했을 때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을 떠나거나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무용으로 아이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언젠가 병들고 나이 들어쓸모는커녕 주변에 짐이 되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 여러분을 쓸모로 평가하지 않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것, 바로 이것이 무용을 강조했던 장자의 진정한 속내였을 것입니다.
또한 너만 들어보지 못했는가?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 「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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