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를 이루는 글자 중 더위 서 앞에 오는 처‘에는뜻이 많다. ‘멈추다‘라는 뜻으로 읽으면 더위가 멈출 무렵이되고, ‘머무르다‘로 읽으면 아직 더위가 머물러 있는 때가 되며
‘쉬다‘로 읽으면 더위가 쉬는 때가 된다. 처에는 ‘처리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더위를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 쪽이 조금 더마음에 든다. 그건 여름과 작별한다는 뜻일 테니까.

호미씻이보다 마음을 빼앗긴 두 번째 풍습은 ‘‘다. 볕에 쬘 포‘에, 볕에 말릴 쇄 장마가 있는 여름을 지나는 동안 눅눅해진 책이나 옷을 모두 꺼내어 햇볕에 쬐고 바람에 말리던 일을 뜻한다. 책을 만드는 데 사용된 한지는 습기에 약해 썩거나 벌레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이나 옷을 보다오래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이라고.

송나라 유의경이 편집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다.
한낮에 해를 보고 누웠기에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답하기를
나는 배 속의 책을 말리고 있소.
배속의 책을 말려야 했던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눅눅했을까. 젖은 문장이 다 마를 때까지, 번진 자국이 옅어질 때까지 바깥에 오래 누워 있자고 말하고픈 계절이다. 초가을이라부르기엔 아직 이른 8월, 여름과 천천히 작별하고 있다.

도토리는 참나뭇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들의 열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한 종류의 ‘도토리나무‘가 있는 게아니라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등의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 부른다. 참나무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재질이 다른 나무보다 좋아 옛날부터곡괭이, 쟁기 같은 농기구나 수레바퀴, 배를 만들 때 사용됐다. 태워서는 ‘참숯이 되어 끝까지 쓰였다. 이처럼 유독 쓰임이 좋아 ‘진짜‘ 나무라는 의미에서 ‘‘이 붙었으니 다른 모든나무를 가짜 나무로 만들어버리는 그 패기 넘치는 이름에서부터 조상들의 편애가 느껴진다.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 역시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양식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에 사또가 부임하면가장 먼저 도토리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책 속에서 ‘봄‘은 계절의 자리를 바꿔주러온 여름으로부터 그럼 자신은 ‘가을‘이 올 때까지 힘내겠다는말을 듣고, 문득 단 한 번도 가을을 만난 적 없다는 사실을깨닫는다. 어떤 애야? 하고 물으면 겨울은 따뜻하다고 말하고 여름은 차갑다고 말하는 가을, 봄은 계절의 건너편에 있는 ‘모르는 친구‘ 가을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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