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상황은 유익한 것이다. 어떤 위기는 치명적일 수 있지만, 성장을 위한 위기도 있는 것이다. 페기는 문명의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도 기간périodes과 시대époques를 구별하였다. ‘기간‘
이란 별다르게 중요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시기요, 개인도 집단도 정해진 궤도를 순탄하게 살아가며, 중대한 결단을 요구하는 도전을 받지 않는 시기이다. 반면, ‘시대‘란 무엇인가 일어나는 시간, 인간의 본질인 자어유가 도전받아 잠을 이룰 수없는 시간이다. 시대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비 상태로부터 탈출해야만 하는 진정으로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중대한 결단들을 내려야만 한다.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없다. ‘결단‘, 나는 아주 여러 번 이 단어를 말할 것이다. 곧우리는 우리가 내린 결단에 값하는 존재라는 것, 하찮은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바로 우리가 내린 결단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정, 사랑, 문화, 음악, 아주단순한 동지애 등과 같이 이미 의미 있는 것에 훨씬 더 깊은두 번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의미 없는 것에도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입원해있는 그 젊은 여성에게 닥쳐온 때 이른 죽음에 대해 그녀와 더불어 항의하고 난 다음 순간 그녀에게 말했던 바의 요지이다.
"우리가 여기서 멈추어서야 되겠는가? 사실상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이 죽음이라는 사건에 당신 자신이 한 의미를 부여할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가? 의미가 사물들 자체에 있지 않음을 알고, 의미를 갖지 않은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데 바로 우리 자유의 위대함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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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저는 한 유대인 처녀를 만났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도딴 곳으로 가지 않고 그곳을 지키고 있었지요. 왜 그랬는지 저는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모든 형제자매를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잃었습니다. 그들이 온 식구를 가스실에 밀어 넣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 혼자 남았던 거지요.

당황해서 물었습니다. "여기서 뭘 해요? 왜 이런 비인간적인 곳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녀는 대답했지요. "수용소에서 보낸 마지막 몇 주 동안 맹세했습니다. 살아남아 나치와 수용소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겠다고요.
그러나 마침내 해방군이 왔을 때 전 그 사람들을 보며 혼잣말을 했지요. ‘아냐. 마음먹은 대로 한다면 나도 히틀러보다 나을 게 없어."
그래봤자 또 다른 증오와 폭력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는 것과 다를게 없을 테니까요. 신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짊어질 수 있는 짐만주신다고 믿는다면, 세상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고 믿는다면, 마이다네크의 비극과 참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 인생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을 미쳐 그를 나쁜 생각과 증오와 복수괴로움에서 구하여 봉사하고 사랑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있을 것이고 내가 살아남은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요."
부정적인 마음은 부정적인 마음만 불러옵니다. 부정적인 마음은암세포처럼 자라지요.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였습니다. 그 모든과거를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는 그녀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래서그녀는 끔찍한 광경과 냄새가 서린 이 참혹한 장소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바라크로 갔습니다. 그리고 나비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린 소녀들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요. 삶과 죽음에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내게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살짝 히틀러가 숨어 있는 것 같지않아요?"
우리는 너무 일찍 깨달았습니다. 봉사하고 사랑하는 인간이 되려면 우리 안에 숨은 부정의 마음, 우리에게도 깃든 부정의 잠재력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히틀러가 될 잠재력 못지않게 마더 테레사가 될 잠재력도 똑같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한 달 전에 아이는 완쾌 판정을 받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전이된 암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그때 넌 처음 깨달았을 거야. 두 번 다시 가고 싶은 학교로돌아갈 수 없을 것이고, 선생님이 되지도 못할 것이라고."
리즈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전 말했습니다. "딱 한 가지 대답만 해주렴. 담임 선생님이 가끔힘든 숙제를 내주시잖아. 그런 풀기 힘든 숙제를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내주실까? 그런 숙제를 반에서 공부 제일 못하는 친구에게내주실까, 반 전체한테 다 내주실까? 아니면 반에서 공부를 제일잘하는 몇몇 학생들한테만 내주실까?"
리즈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리즈가 말했습니다. "정말 딱 몇 명한테만 내주세요." 리즈는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축에 속했고 그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전 다시 이렇게 물었지요. "하느님이 선생님이라면 너한테 풀기 힘든 숙제를 내주실까? 아니면 반 친구 다풀 수 있는 숙제를 내주실까?"
아이는 - 다시 비언어적 상징 언어로 돌아가 볼품없이 망가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온통 상처뿐인 거대한 몸뚱이와 말라비틀어진 팔다리, 그런 자신의 몸을 살면서 치렀던 시험 문제지처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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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삶이란 우리의 가장 깊숙한 자아로 ‘우리의동료 인간들에게로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발돋움입니다.
사실 발돋움reaching out 은 이 책의 분위기와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삶 가운데서 우리는용감하고 솔직하게 내면의 자아를 향해 발돋움하도록 부름을 받고있습니다. 또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향하여 발돋움하도록,
또 기도로써 하느님을 향하여 점점 더 발돋움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의 불안과 이웃을 향한뒤섞인 감정과,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하느님이 없다는 의심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탐구해야 합니다.

매우 엄격한 고행자였던 7세기의 요한John of the Ladder이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시내 산에서 혼자 살았던 고행자였습니다. 분별에 대해 쓴 부분인 영적 사다리 26번째 계단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과거의 나쁜 습관에 여전히 지배를 받으면서도 단지 말로만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가르치도록 내버려두십시오. 언젠가는 자기가 한 말을 부끄러워하며 언젠가는자신의 가르침을 실행할지도 모르니까요.?

... 영적인 삶은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양극 사이와적대감과 따뜻한 환대의 양극, 환상과 기도라는 양극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움직임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게 외로움과적대감과 환상이 있음을 고백하면 할수록 우리는 고독과 따뜻한환대와 기도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설사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예전보다 더 외로워하고 더 적대적이고 더 환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자주 느낄지라도, 이런 모든 아픔을 통해서고독과 따뜻한 환대와 기도의 삶을 향해 발돋움하려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분명해졌음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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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깨달음과 지금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말할 때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후고가 말하는 빛 (lumen)은 인간을 빛나게 한다. 지혜에 다가가면 읽는사람은 광채를 발하게 된다. 후고가 말하는 공부를 위한 노력은 읽는 사람 자신의 ‘자아‘에 불이 붙어 빛이 반짝이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후고는 독자에게 페이지에서 발산하는 빛에 자신을 드러내라고, 그리하여 자신을 인식하라고, 자신의 자아를 인정하라고 권한다. 페이지를 밝히는 지혜의 빛을 받을 때 읽는 사람의 자아에 불이 붙을 것이며, 그 빛 속에서 읽는 사람은 자신을 인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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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늘 그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 가라.

그렇지 않으면 원치 않는 힘에 이끌려
원치 않는 곳으로 가게 되리니.

삶이란 늘 그런 것.

삶이란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니.

수천 년 전을 살았던 사람에게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삶이란 늘 이해할 수 없고 힘겨운, 그런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삶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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