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깨닫는다고 하여, 사회적 현실이 곧 변하지는 않지요. 변화란 쉽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인간의 열망에 호소할수 있을 때만 변화가 가능하겠죠. 중국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참가했다가 북한 여성 한 명과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나네요.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이 궁금하여 이것저것 묻다가, 이렇게물었습니다. ‘북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녀는 준비라도 한 듯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인격이 훌륭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오, 과연. 재차 물었습니다. 인격이 가장 중요한가요? 인격이 훌륭하면다른 것들은 상관없나요?‘ 그녀는 여전히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돈이 없어도 인격이 훌륭하면 여성들이 좋아합니다. 다시금 물었습니다. 남자가 대머리여도 상관없나요?‘ 갑자기그녀가 주춤하고,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벌목 중인 야산과같은 내 두피를 흘낏 본 뒤, 이내 ‘대머리여도…… 상관없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대답했습니다. 그것으로 그 대화는 끝났지만, 나는 북한 사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짧은 침묵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모호한 표현으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고자 할 때,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발화자가 아니라 청자다. 표현이 모호하면, 발화자는 그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를 나중에 자의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누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호한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봐야 하는 책임은 청자에게로넘어가기 일쑤다. 모호했던 말이 나중에 멋대로 바뀌었을 때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청자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모호한 말들을 남발하면,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그 말뜻을 구체화하라고요구해야 한다. 새 정치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선거가끝난 다음에 하면 너무 늦을 수 있다. 결혼하고 나서, 동전 방석을 건네는 남편에게 "오빠가(우) 말한 돈방석은 지폐 방석이 아니었어?"라고 따지면 너무 늦은 것이다. "동전은 돈 아니야?"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동전 방석이라니, 세상에. 약속대로 빨리 지폐로 방석 만들어줘"라고 거듭 요구하면, 베네수엘라 지폐로 방석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베네수엘라는근년에 자국 통화를 95퍼센트 이상 평가절하했고, 베네수엘라의 최저임금 노동자는 월급의 3분의 1을 줘야 기껏 콘돔 한상자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어느 나라 지폐로 방석을 만든다고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있었나."
그렇다고 해서, 구분이 다 능사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구분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과 같은 인종 구분은 서구 제국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정착되었다. 나는황인종으로 분류되지만, 내 뽀얀 우윳빛 속살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황인종이라는 ‘사실‘을 의심한다. 인종 구분과 같은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구분이 단지 현상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노예라는 말을 생각해보라. ‘노예‘라는 단어는 단지 특정 현상을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가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렇기에, 조선 시대 노비를 노예로 부를 것인가, 위안부를 성노예로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치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퀸틴 스키너(Quentin Skinner)가 말했듯이, 평가어는 해당사회의 의식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어떤 단어에 단순히 변화를 준다고 해서, 해당 사회가 곧 바뀌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의식을 개선하기 위하여, 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장애우‘라는 말을 택한다고 해서 관련된 사회의식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명실상부한 사회의식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장애우라는 신조어는 오히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스트레스만 줄 수도 있다. 친구로 대하지도 않으면서 왜 친구라고 부르는거야...
영정 사진은 망자를 상기시키기 위해 거기에 있지만, 영정 사진이 곧 망자는 아니다. 즉 재현은 그 어떤 대상을 상기시키지만 그 대상 자체는 아니다. 어떤 풍경화도 그것이 표현하는 풍경 자체는 아니다. 어떤 나라의 지도도 그것이 가리키는 나라 자체는 아니다. 어떤 지구본도 지구 자체는 아니다. 호르헤 보르헤스는 이 점을 혼동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일이 벌어지는지 일종의 사고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누군가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궁극의 지도를 만들겠다고 꿈꾼다. 그는 실제의 풍경과 모든 점에서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하는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될수록 그 지도는 점점 더 커져간다. 그래서마침내 지도가 현실과 완벽하게 조응하게 되었을 때, 그 지도의 크기는 현실과 똑같은 크기가 된다. 문제는 그렇게 큰 지도는 들고 다닐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과 똑같다면그냥 현실을 들여다보면 되는데, 무엇 하러 똑같은 크기의 지도를 들여다보겠는가? 요컨대, 대표 혹은 재현이라는 것은 복제나 모사(模寫)가아니다.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적인 특징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목달기도 대표 혹은 재현의 일종이다. 글 내용을 최대한 모사적으로 전달하려 든다면, 책 내용 전체가 그냥 제목이 되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마치 호르헤 보르헤스가 말한,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정확한 지도가 실제 풍경과 똑같을 정도로거대한 크기가 되어버렸듯이...
이처럼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목으로 인해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멋진 경우도있다. 미국의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시를 한 편 읽어보자. 아래의 시는 그 제목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믿기지 않겠지만 갈등이나/고통없이 평탄하게/살아가는 사람들이/정말 있다./그들은 잘 차려입고/잘 먹고 잘 잔다./그리고 가정생활에 만족한다./슬픔에 잠길 때도/있지만/대체로 마음이 평안하고/ 가끔은 끝내주게/행복하기까지 하다./죽을 때도 마찬가지라 대개 자다가 죽는 것으로 수월하게 세상을 마감한다./믿기지/않겠지만그런 사람들이 정말존재한다." 찰스 부코스키가 지은 이 시의 제목은 외계인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말했다. "가장 행복한 것은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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