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공감은 타인에 대한 정서가 수반된 반응이라는 점에서동정심과 매우 유사하며, 일반적으로 차이를 두지 않고 혼용해 쓰곤 한다. 하지만 상담 분야에서는 공감과 동정을 엄격히 구분한다. 공감을 할 경우, 자아는 이해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에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반면, 동정은 다른 사람의 곤경이나 정서에 대한 민감성을 강화해 자의식이 감소한다. 즉 공감할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로 대체하지만, 동정할 때 우리는 우리를 다른 사람과 대체한다. 따라서 동정은 공감보다 타인의 정서에 더 깊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이며, 자신과는 서서히 분리된 감정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벤 카슨의 선택이 가슴에 와 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벤 카슨은 모든 상황에서 환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환자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에 두렵지만 새로운 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차후에 얻게 된 명성은 처음부터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벤 카슨의 결정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환자에게 가장 최선이 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이 비록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는 일이고, 자신도 처음이라 두려움과 위험을 안고 가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심을 하기 전, 벤 카슨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연구하고 실력을 쌓았다. 결국 벤 카슨이 의학사에 있어 ‘최초‘ 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의 마음가짐과 실력 함양을 위한 끝없는 노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는 삶이 존재할까? 아마도 그런 삶을 산사람은 단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한평생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에 휘청거릴 때가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때, 그 어려움에 대응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인생을 성공과 감동의 삶으로 만들거나 또는 그것과는 거리가먼 삶으로 전락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말기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던 카네기 멜런대학의 랜디 포시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어떤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반드시 벽에 부딪히게 되지만 벽이있는 이유가 있다. 그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원래의 모습에서 멀어진 우리를 누가 진지하게 대해줄까요? 우리의 이상한 행동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바꾸고, 자기에 대한 자기 인식도 바꿔버립니다. 우리는 바보처럼우스꽝스러워지고, 무능해집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병이죠.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있고, 진행되며, 치료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그렇기에 저 자신에게 순간을 살라고 말합니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란 형광펜으로 줄을쳐가며 연설문을 읽는 앨리스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같은 병을앓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우리는 앨리스의 연설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과정이 기억을 상실해가는 과정이지만, 자아를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함을 느낄 수 있다.
낙인의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낙인 효과‘를 불러오는 편견이라 할 수 있다. 하워드 베커의 주장처럼 낙인이 찍힌 사람 대다수는 관습, 도덕, 법 등 사회규범에서 벗어난 일탈 행위를 저지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전혀 의도치 않게 실수로 잘못이나 죄를 범했고, 그에 따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사람조차도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다. 한 번 찍힌낙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낙인찍힌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의지와 기회를 잃게 되고,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초래된다. 결국 이러한 낙인 효과‘는 사회규범을 어긴 자는 또다시 규범을 어길 것이라는 부정적인 편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설령 잘못을 의도적으로 범했더라도깊이 반성하고 그 죗값을 치른 사람에게는 편견을 갖지 않고, 그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게 옳다.
제니는 과거에 초인종에 응답하지 않았던 선택을 계속 후회하기보다, 지금 소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과거의 행동에 매여 있어도 달라지는 것은없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과거가 아니라 지금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제니는 알았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언노운 걸‘, 즉 신원미상의 소녀는 유럽에 거주하는 흑인 이민자 소녀였지만, 우리나라에도 또 다른 배경을 가진,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된 많은 언노운 걸이 존재한다.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가 가장 궁핍하고 소외된 계층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한 개인의 도덕적 가치는 그가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진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소외된자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로 평가할 수 있다. 영화 <언노운 걸〉을 만든 형제 감독이 원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언노운 걸들이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숙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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