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동안 강의에서 핵가족 비판은 정말 많이 해왔는데, 이걸 이렇게 섬뜩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다니, 한편 봉감독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하더라고요. 앞에 나온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죠. 「괴물」, 「설국열차」, 「옥자)는 다 비정상적 가족이에요. 특히 엄마가 다 없어요. 그래서 외부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 그래서 또 출구가 있어요. 기생충은 반지하건 대저택이건 완전체 핵가족이죠. 엄마, 아빠, 아들 하나, 딸 하나. 완벽한 만큼 꽉 막혀 있어요. 외부로 통하는통로가 없어요. 왜냐? 그것만이 내 세상이니까요..
외부가 없으면 내부는공기가 희박해져요. 우리가 세상의 전부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윤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죠. 우리 가족만 잘살면 돼. 잘 산다는 것도 방향은 딱 하나죠. 다 취직해서돈 벌고 그 돈으로 펑펑 쓰고 먹고 마시고…. 이게 다예요. 이런 걸 사랑이라고 거대한 착각을 하는 겁니다. 오마이 갓!
영화 중간에 보면, 큰 체육관에 수재민이 되어서 함께 누워 있을 때 아버지가 말하죠.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거기서는 다소 냉소와 절망이 담긴 말이지만 뉘앙스만 바꾸면 딱 맞는 말이에요. 계획을 더 이상 하지 않는거, 무계획의 삶을 살아 내는 거. 그래야 비로소 핵가족은 사방이 막힌 폐쇄회로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핵가족을 꽁꽁 묶어 놓는 게 바로 그 ‘우라질’ 계획이라는 거 아닙니까? 명문대를 가야 해, 공무원이 되어야 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해,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사야 해, 갭투자를 해야 해, 비트코인을 사야 해, 등등. 이놈의 계획만 내려놓으면 가족은 서로 멋진 커뮤니티가될 수 있어요. 엄마, 아빠, 아이가 친구가 되는 거죠. 친구는 친구를 부릅니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가 되잖아요? 잘감이 안 오나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혈연적 관계란 기본적으로 베이스캠프에 해당합니다. 베이스캠프가 뭐예요?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아가게 해주는 뒷배경인 거죠. 해가 뜨면 나가서 활발하게 움직이다가 해가 지면 돌아와 휴식과 충전을 하는 곳. 그게 베이스캠프죠.
내일은 한 걸음 더 세상 속으로 갈 수 있을 테니. 그래야 삶이 재미지고 살아 있다고 느껴요. 그런데, 핵가족은 완전히 거꾸로 되어 버렸어요.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어 매는 곳. 어디서 뭘 하든 늘 돌아가야 하는 귀「설국열차의 부녀, 옥자의 기이한 가족 등이 바로 그환처가 되고 말았어요. 니체 말대로 현대인은 뭔가를 손에 들고 집으로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죠. 이제 그걸 그만두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 주고 걱정한다면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직 경제적 이익 말고 없잖아요? 그 결과 존재가 너무 무거워졌어요. 가족을 떠올리면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하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고 답답하고 부담스럽죠. 사랑할수록 짐이 되는 관계, 그게 가족인 거죠. 그런 상황에선 서로에 대한 존중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일단 계획을 버려야 합니다. 계획이 없는, 무계획의 관계, 오직 생명 차원에서의 연대. 세상을 향해나가도록 힘차게 응원해 주는 관계, ‘살아 있음‘만으로충분한 관계. 그래야 합니다. 괴물의 비정상적 가족, 설국열차의 부녀, 옥자의 기이한 가족등이 바로 그런 거였어요.
바로 기생충의 키워드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위험하면 주저 없이, 가차 없이 온몸으로돌진해서 기어코 새로운 길을 내는 것. 제가 늘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가족은 생사확인이 젤 중요하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생명과 생명으로서의 연대감. 멋지지 않나요? 그러면 저절로 자존감을 지키게 되고 세상에 나가서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그런 든든한 배경이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속이고 삥뜯고 짓밟고 하겠어요? 봉준호 감독은 ‘이제 그런 식의 대안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여전히 그 길밖엔없어요. 감독이 버린 카드라 해도 다시 주워서 재생시킬수밖에요. 이런 식으로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기생충의 비극은 계속될 겁니다. 집집마다 묵시록을 찍어야겠죠. 출구가 봉쇄된 채 정서적 집착과 경제적 이익만을 기준으로 하면 결국 서로 속고 속이고 미워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파국이 오기 전에 핵가족을 베이스캠프로 바꾸는 거 이건 정말 절실한 문제입니다. 디지털이온 세상을 연결하는 이런 시대에 핵가족의 쳇바퀴 안에서만 사는 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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