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들어보면 별일 아닐지도 모르겠다. 막상 해보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돈이 많아야 한다거나 힘이 세야만 한다는 등의자격도 필요치 않다. 오래 때를 기다리거나 애써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나이가 많거나 적어도 각자 나름 할 수있겠다.

하지만 여기, 작은 반전이 있다. 인간이란 때론 불편함이나 귀찮음을 뛰어넘어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존재라는 것. 만약 이 단어‘가 마음속에 있다면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스핑크스의짓궂은 수수께끼를 닮은 저 문장의 비밀을 활짝 열어 주는한 단어는....
일찍이 송창식 아저씨가 절절히 목놓아 부르신 노랫말로 대신해본다.
싸랑이야아아....
사랑이야아아아아아

‘베어 그릴스‘라는 영국인 탐험가가 있다. 그는 극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면서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야생 동물은 물론 곤충, 애벌레를잡아먹거나 동물의 배설물 속까지 뒤져 끼니를 해결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이 ‘인간의 음식과 아닌 것‘이라고 그어 놓은선도 결국 정답은 아니구나 싶었다. 창의성을 극도로 발휘하며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걸 거부할 때 인간의 생존력도 극한까지 올라간다는 걸 그는 몸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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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는 나만의 ‘주기설‘을 믿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는 나름대로 주기랄 게 있어서 이 주기에 따라 인생에 새로운 기회가 온다고 믿는 식이었다. 내가 믿던 것은 ‘2.5년 주기설‘이었는데, 2.5년마다 내인생이 갱신되면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물론기존에 그런 가설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었고 내 멋대로믿은 내 삶에 대한 미신적인 태도였다.

아이는 딜레마를 다루는 법을 배운다. 세상에 이것 아니면저것이라는 이분법만 있는 게 아니라, 제3의 방법이 있다는걸 알아간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 대부분이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수정해서 할지가 중요하다는 걸 배운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데 밥을 먹어야 한다면, 아이스크림을 먹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밥 먹고 나서 먹으면 된다는걸 납득하고 이해한다. 삶의 거의 모든 욕망이라는 것은 타협해야 한다는 걸 배운다.

어쩌면 절망의 시대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고, 미쳐버린 세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모든 시대에는 저마다의 절망이 있으며, 모든 인생에는 어딘지 미친 구석이 있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그런 시대나 사회를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통과해야만 한다. 그럴 때 자신을 지켜주는 건 그 모든 것을 대하는 자기만의 기준과 태도일 거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태도에 대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 또한 늘 ‘너는 잘못 살고 있어‘라고 속삭이는 세상의 말들을 들어왔다. 때로 그런 목소리는 누군가가 직접 내게 건네는 목소리였고, 때로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런 목소리가 옳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그 목소리에 굴복하기보다는 싸워야 할 일이 여전히 더 많다고 믿는다. 이 책이 그런 당신의 싸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본다.

인생이란 오직 자기만의 이익과 행복, 편안함을 좇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충분한 통념이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티끌만 한 행복도 타인을 위해 양보할 생각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체 인생 중 아주 일부에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이 아닌 다른 의미를 둘 여지가 있다면, 그 여지를 미래의 아이들에게 열어주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이후 세대의 희생에 발 딛고 있기때문이다. 생태적 위기, 부동산 버블현상, 양극화, 국가 부채증가, 각종 연금이나 기금의 고갈, 차별과 혐오의 문화 같은것들은 모두 후대에 미뤄둔 폭탄과 같다.

살아가면서 의무가 하나 있다면 바로 우리가 저질러놓은이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가지는게 아닐까 싶다. 그들을 문 앞에서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나는 그것이 삶에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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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ie 2023-01-2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헐..인생이란 오직 자기만의 이익과 행복, 편안함을 좇는것이 통념이 되었다니...개탄할 노릇이네요. 저렇게 살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데...자기의 이익만을 좇아서도 안되고 행복이 최우선 목표가 아닙니다. 행복은 부산물이지요. 그리고 편안함을 쫓는것이 최고선인줄 알고 살았는데 그게 독이었음을 50이 넘어서 깨달았는데...이런것이 통념이라...이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사랑과 자유가 왜 같은 것인지 사랑을 해보면 알아요.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자기가 자유로운지 아닌지를 아는 거죠. 부모님 말을잘 들었던 사람이 맹목적으로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고 살았는데, 어느날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구속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요.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는 데 일정 정도 부자유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거예요. 어쨌든 사랑을 하면, 8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하는 규칙을 어기기 시작해요. 그리고 독립을 하려고 해요. 사랑을 하려면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되어야 가능한 거예요. 자유로운 주체로서 상대방을 만나고 싶은 거죠.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뭔가가 생기면 내가 자유로운 상태인지 자유롭지 않은 상태인지를 알아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고 싶은데 생계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1, 2년간 모은 돈을 배낭여행 하는 한두 달에 쏟아붓잖아요.

자기 자신을 위대하게 보지 않으면 돼요. 스스로 배워야 되고, 세상에 대해서 평가 내리고 생각한 대로 떠들고 다니지 말아야 되고,
자신이 항상 작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돼요. 그 태도만 유지하면 돼요. 그리고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고맙게 여기는 태도는 기본이고요. 벽돌을 올리는 사람의 힘 자체가 얼마나 센 것인지를 알아야해요. 이삿짐 나르는 사람을 돈 주고 부릴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없다면 이사를 할 수 있겠어요?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 하는 거죠. 우리는 냉장고 하나도 혼자서 못 들어요.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착취하는 구조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있어야죠. ‘고생하셨어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돼요. 내가 돈을 주고 배달을 시키니까 저 사람

말이나 텍스트에 사로잡히면 안돼요.
우리가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능력을 기르는 거예요. 문자로 쓰인것만이 전부가아니잖아요. 이 세상에서가장 어려운 책은 배우지 못한 어머니아버지라는 책이고, 우리는 그것을 잘읽어내야 해요.

그래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화낼 때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대학까지 나왔고, 배웠다는 놈이 그거 가지고 화를 내고, 역정을 내고, 어미를 구박하고 타박하냐?‘ 진짜 맞는 얘기예요. 대학 가서 잘못 배운 거예요. 배웠다는 것은 표현을 잘 읽어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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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왕성했던 수전 손택은 학교가끝나도 곧장 집으로 가는 법이 없었다. 동네 근처 사막에 난돌길을 따라 걸으며 땅에 떨어진 예쁜 돌을 주워 모으는 한편,
길을 잃거나 재난이 일어나 혼자 살아남는 상상도 했다.
길 주변의 사물과 풍경에 호기심을 느끼는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제 여기서 말하는 길이란 ‘도로‘가 아니라 자기를 만들어가며 사는 일을 뜻한다. 그녀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이 길가에 흩어진 호기심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기만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같은 사진과 문화에 관한 비평에서부터 영화와다큐멘터리 작업에 이르기까지 수전 손택은 살아가면서 만난역사적 현상과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작품으로 승화해냈다.

그녀가 마냥 유행만을 따라간 것은 아니다. 호기심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앎의 영역을 언제나 아는 상태 그대로 남겨놓지 않고 비판적인 자세로 의심했다. 1966년에 출판된 <해석에 반대한다》는 이런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어떤 대상을 일부러 해석하지 않고 드러난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이야말로 큰 목소리로 내지르는 오해와 편견이 진실인 마냥고개를 내미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해석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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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느낀 것은 시대적인 감각에 뒤떨어지는 것은 그자체로 폭력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옛날 사람이 되고새로운 시대와 섞이기 어렵고 그래서 때론 안타깝고 불편하기만 한 사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폭력이 된다.

새로운 시대에 대해 감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련됨이나트렌디함을 아는 일을 넘어서, 그렇게 무엇이 폭력인지를 느낄 줄 알고 새로운 비폭력의 법칙 속에 자기를 위치시킬 줄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그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세련됨이라면 세련됨일 것이다. 반대로, 새로운 시대의 것이지만 감각하지 못하는 혐오나 차별이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경계해야 할 ‘요즘 젊은 것들‘의 악덕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런 것들을 피하며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만들어감에 대해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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