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들이 경험하고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줄임말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특정 카테고리를 넘어서 기업의 고유 브랜드까지 모든 것은 이미 모조리 줄여서 불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파리바게뜨를 빠바‘라고 부르고, 미스터피자를 미피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고기뷔페와 초밥뷔 페의 경우도 ‘고부’, ‘초부‘로 부르고 있으며, 문화상품권도 ‘문상‘
으로 부른다. 이미 모든 카테고리와 브랜드는 조금이라도 부르기 쉬운 단어로 불리고, 만약 이를 모르고 있다고 해도 몇 번 카톡이 오가는 순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대의 줄임말들은 그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되면서, 기존의 모든 단어에 급속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줄임말은 단순히 그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를 넘어 전체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한국어 줄임말을 배우고 익히는 시대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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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는 그 특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기성세대와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대를 제대로 알기 위한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하다.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함에 따라 생각도 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처럼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곳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각 세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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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늘 바람을 담는다. 숲은 바람에 대책 없이 흔들린다.바람은 끊임없이 산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산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내가, 내 삶이 산처럼 의연한가. 의연하게 산다는 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의연함조차도 지루할 것이다. 미약한 존재인 내가 어찌 바람에 흔들리지 않겠는가. 적당히 흔들리며 산다. 하지만 바람에 굴복하지는 않는다. 바람을 읽어낼 심안(心眼)이면 이겨낼수 있다. 맞서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의연하게 살아야 한다. 내면에 뜨거운 열정과 염원이 사위지 않은 채 담기고 가열해야 제대로 의연할 수 있다.
의연함은 역동적이고 농밀하다. 시시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바람 하나 시시하지 않은데, 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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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적당히 흔들리며 부러지지 않을 만큼 바람에 흔들려줘도 좋다. 바람은 언젠가 가버린다. 그 바람을 견뎌낼 힘 정도면 충분하다. 그지점만 명확히 인식해도 조금은 더 당당하게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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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며 독립적이지 못한 어른은 나이만 먹었을 뿐 아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평생 배우고 공부해야 비로소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을 넘어서는 배움의 즐거움 자체를 느낄 때 비로소 인간은 성숙한다. 취미와 놀이를 배우는게 평생교육이 아니다.
제대로 배우고 인식하면 자유로워진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명제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다. 지성이 갖춰지면 삶에서 부딪히는 일에 일희일비 휘둘리지 않는다. 시야는넓어지며 그만큼 마음도 넓어진다. ‘나‘ 중심적인 사고에서도벗어날 수 있다. 그게 진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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