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일러스트를 보고 두 가지 이유로 놀랐다.
먼저 모모의 생김새가 상상과 달라서. <자기 앞의 생>을 맨 처음 읽은 것은 아주 어릴 때였고,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프랑스 사람=흰 피부+금발이었으니까. 심지어 아랍인인 모모가 백인들에게 차별받는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수시로 나오는데도 무지했던 청소년은 다른 모습의 프랑스 사람을 상상하지 못했고, 그 첫 감각이 아주 오래오래 남아 있었던 것이다 . . . 게다가 이 작가가 포착한 모모의 모습은 귀엽게 웃고 있는 순간(으레 아이 캐릭터에 기대하게 되는)이라고는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거나, 일부러 기괴한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화가 나서 눈썹을 한껏 올리고 있는 모습들.
두번째로 놀란 건 로자 아줌마가 예쁘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것도 어리석고 어린 자의 편견 때문인데, 여러 매체를 통해 보아오던 주인공, 특히 착한 사람은 너무도 그린 듯한 외모의 소유자였던 것. 심지어 병에 걸려 죽어갈 때조차 예뻐! 하지만 이 작가는 로자 아줌마를 미화하지 않았고, 어린 모모도 우리도 가장 직시하기 힘든 모습까지 에두르지 않고 표현한다. 거기 새삼 놀라는 내가 아주아주아주 부끄러워질 만큼.
이 책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하밀 할아버지, 롤라 아줌마, 은다 씨, 왈룸바 씨까지 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진짜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아름답게'만 그렸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들에게 등을 돌린 세상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소외시키는 일일 테니까. 그럼에도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건, 그림에 담긴 작가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겠지. 모모와 로자 아줌마에게는 아주 차가운 세상이지만 노란빛의 수채화로 채운 배경이 꼭 이들을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 같았다.
다들 모모를, 로자 아줌마를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있었을지. 나의 모모는 이렇지 않았지만, 이게 진짜 모모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