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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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107)

스토너는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홀리스 로맥스에게 끌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로맥스의 거만한 태도, 달변, 유쾌한 신랄함 속에서 스토너는 비록 조금 일그러지기는 했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데이브와 그랬던 것처럼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마음을 스스로 인정한 뒤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 (132-133)

처음 며칠 동안은 집이 텅 빈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서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는 이디스를 생각할 때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조용한 후회가 느껴졌다. (156)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160)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든 상대에 대해서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두 사람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섬세한 균형이 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168-169)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것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251)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자신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과연 그랬던 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어느 시기에 직면하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無)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251-252)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직접 말했던 것처럼 절망을 거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350-351)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353)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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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전공에 대해 고백해야 하는 순간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굳이 ‘고백’이라는 거창한 말이 동원될 만큼 어떤 결의 같은 것이 필요한 나는, 무늬만 사학도였다.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나는 아마 역사학 수업에서 파란만장하고 깊은 서사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그 세계로 진입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재미없는 이론, 숙지해두어야 할 여러 사실(史實), 수치와 통계. 사람의 흔적 없이 어딘가 무채색의 과학에 가까워 보였던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학시절 내내 교양만 열심히 쌓았다.


그래서 『거인들의 몰락』으로 시작되는 이 시리즈를 맡게 되었을 때는 지레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본격 역사소설이라니, 재미없으면 어쩌지. 그리고 그 우려는……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불식되었다. 이거 정말 진진한 드라마잖아!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폭력적인 세기’를 그리며 켄 폴릿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하나하나의 인간에 집중한다. 앞선 두 권에서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얽히고설킨 다섯 가족은 이제 세번째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고, 공민권운동,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 등 굵직한 사건을 목격하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캐릭터는 이상적인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꿈과 사랑을 위해 고뇌하고 때로는 좌절을 맛보며, 단순한 역사의 전달자가 아닌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 시종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이야기는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인 베를린장벽 붕괴를 조명하며 한 시대의 막을 내리고, 훗날 이번 세기의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손꼽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취임 연설로 끝을 맺는다. 이름만 사학과 학생이었던 2008년 당시 영상을 찾아보면서 ‘와, 멋있다’ 하는 막연한 감상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나도, 미국의 인종평등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한 주인공이 TV 중계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대목에서는 별수없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의 묵직한 감동은 아마 온몸으로 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그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쌓인 결과일 테다. 그리고 이 3대에 걸친 가족들의 이야기가 내게 그랬듯, 이 장대한 서사시는 누구에게나 역사란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거라는, 온기가 도는 인간들의 드라마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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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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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아름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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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숲
권여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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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 언니는 언제나 옳다. <길모퉁이>가 특히 정말 아주 많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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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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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깨알같은 지식들이 중간중간 지루할 때도 있지만 . . . 영국식 유머와 덕심이 마음껏 발휘된 유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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