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고 다녀와 - 켄 로치에게 활자에 잠긴 시
김현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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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부모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다 큰 자식이 낼모레면 마흔.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고, 번듯한 집도, 근사한 차도 없으니. 허나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단 한 번도 직접 말한 적이 없지만.
엄마의 삶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삶도요. (16)

집단 퇴사 후 동료들은 ‘그땐 그랬지‘라는 시간이 아니라 모두 현재를 살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모두 일하며 산다. 많은 이에게 노동은 향수가 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사측의 부당 해고 통지에 대항해 울먹이며 "이곳이 제 삶의 터"라고 말하던 동료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장난스럽게 그 울먹임을 놀리곤 하지만, 아직도 그때 동료에게서 들었던 그 육성이 나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26-27)

나는 사랑이 끝끝내 이기는 영화에 더는 끌리지 않는다. 지금은 사랑이 끝끝내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에 더 혹한다. 비록 지더라도. 비록 지고 있는 동안에 중단될지라도. 마찬가지로 나는 선의가 이기는 영화보다는 선의가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가 더 좋다. (35)

우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언제나 생활이 앞장선다. 문학-하는 자라고 해서 뭐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해야만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의 됨됨이란 생활 속에서 성장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45)

언제나 독서하는 생활에 관해 쓰고 싶다.
시집 몇 권 읽는 일조차 쉽지 않은 때다. 그러나 여전히 쓰는 사람이 있고, 그러니 계속해서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만이 결국 문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문학은 각자의 생활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남녀노소에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생활의 신파 속에 함몰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성장에 관하여. 인간의 성장 속에 함구되어서는 안 될 생활의 퇴화에 관하여. 우리가 다시 발견해야 할 것과 우리가 새로이 발명해야 할 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시 질문하면서. 문학은 결국 읽은 사람에게만 물음을 남긴다. 문학은 생활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은 그 패배에서 승리를 맛본다. (48-49)

연대란 나만큼 너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못하는 만큼 내가 한다는 것이리라. (80-81)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망가져갈 것이다. 부모들은 대개 자식과 상관없는 삶을 전혀 예상하지 않지만, 자식들은 종종 부모와 상관없는 삶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 두 삶의 틈새가 클수록 부모들은 위협감을 느끼지만, 자식들은 안전해질 수 있다. (98)

나도 잘 배워서 일하고 싶었고 배우지 않은 걸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사무원이 되고 싶었다. 직장동료의 힘이란 역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마음먹게 해준다는 것. 수습사원이란 사무를 배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곁에 있는 동료를 배우는 사람이다. 이제는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출퇴근을 글로 배운 시절에도 역시나 가장 동료의 출퇴근을 걱정했었던 것 같다. 하루쯤 동료를 대신해 야간을 해줄 수도 있으리라 마음먹기도 하는. 수습의 기간이란 역시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나보다 먼저 수습사원이었을 이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초보 사무원 딱지를 떼게 되는 건 아닐까. (106)

아마 하루 두 끼를 먹지 못했더라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두 번 밥상머리에 앉지 않았다면 나는 연대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 한 번 잠을 청하지 않았다면 나는 예술에 침을 뱉었을 것이다.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시는 무슨,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시 한 편으로 단돈 3만원을 버는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 글로 전세금을 모아보겠다는 사람을 존중하고 싶다. (108-109)

사과는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하고 나서 되어야 하는 거다. 사과하면 장땡이냐는 말은 사과를 받는 사람의 소갈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나 사과하는 사람의 소갈머리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115)

그때 친하게 어울려 지내던 다른 친구들과는 모두 소원해졌다. 내 탓이다. 우정은 늘 단단한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와 관계 맺으려는 이기적인 열망이 때로는 다른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다고 밖에. 아쉬운 일이다. 지금까지 그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나는 한결 더 풍요롭고 어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145)

가끔은 누나들이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하루를 지냈으면 하고 바랐다. 세상을 구하려고도 하지 말고, 미래를 짊어지고 갈 사람들을 키우지도 말고, 어떨 때 어떤 마음을 써야 하는지 동생들에게 알려주려 하지도 말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난분분히 꽃잎은 흩날리고 고양이와 옥상과 잠뿐인 평온함 속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어 인생이라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워하길. 때론 기쁜 우수에 젖으면서. (156)

아마도 나는 이번 생에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되지 못하는 삶은 불행하지 않다. 부모가 되지 못하는 삶은 다만, 자식이 없는 삶에 지나지 않으며 그건 자식 때문에 기쁘거나 슬플 일이 없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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