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다이닝 바통 2
최은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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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요리라는 행위는 ‘계속 살아가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일 때가 많다.
바쁘고 지쳤지만 굳이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주방에 설 때. 재료를 손질하고, 냄비와 프라이팬에 쓸어 넣고, 불을 켜고, 중간중간 레시피를 확인하고, 시간을 재가면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마음과 시간을 들여 그 일련의 과정을 해내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아직 완전히 주저앉아버리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죽음에 맞서고 있다고 느낀다. 온갖 맥 빠지는 일들, 좌절, 실패, 낮아진 자존감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6. 윤이형, 기획의 말)

수영아.
난 그날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일을 겪은 많은 동료들이 우리를 떠났고, 떠나고 있어. 네가 나보고 그냥 떠나버리라고 말했을 때 내가 너에게 했던 말 기억해?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
아니야,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돼. 떠나도 돼. 피해도 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폭언을 듣고 조롱을 당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아도 돼. 너에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우리 투쟁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 몸은 고되고 피곤할지 몰라도 정신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어. 나는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 (29, 최은영, <선택>)

승혜는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이 음식을 만들었다. 그건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먹을 음식은 아닌 듯했다. 최소한 세 사람용이었다. 그래야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쓸쓸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만 만들어 먹는 음식 같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두 사람만의 골방에 너무 오래 머물러 변색되지 건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 이리 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 가져달라고 자랑스레 선언할 수 있는 사람들만. 그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알지도 못할 만큼 너무 당연하게 그럴 수 있는 사람들만. (72-73, 운이형, <승혜와 미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승혜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감미롭게 허공을 울렸는지를 기억했다. 미오 때문에 전 연인을 떠나면서,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날 이후 왜곡된 소문이 퍼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을 잃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이상한 말이었다.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몹시 편리하게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말이기도 했다. 너무도 불공평한 말이었다. 그러나 승혜에게는 한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이전에,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하는 칼질 같은 말이기도 했다. (74, 윤이형, <승혜와 미오>)

‘나는 상처가 났어, 너한테 그걸 보여주고 싶어, 그런데 낫기는 싫어, 다만 네가 죄책감을 느끼길 바랄 뿐이야‘ (79, 윤이형, <승혜와 미오>)

다 사장, 이 노란 등 밑에서 이릏게 커피 맹그는 게 바다에서도 보이는디 그게 글케 따땃하게 보일 수가 없었으. 물질 허다 보믄 여기 불빛이 꼭 오징어 배 같아 보이는디 사람들이 막 오징어 떼만치로 몰려오고 가는 게 보일 정도였으. 내가 눈은 좋아서 누가 오가는지도 다 봤당께는. 아덜 감옥소 간 뒤로 이 존 눈으로 눈치만 보고 살았어야. 긍께 자꾸자꾸 눈이 더 조아져부렀어. 여그 다 사장을 내가 많이 훔쳐봤당께. (122, 이은선, <커피 다비드>)

고마웠소. 노란 불빛만으로도 내 마음 다잡고 물질하러 들어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오. 사람이 홀로 고독허믄 이런 불로도 마음을 뎁히고 그러고 사는 거시제라. 내 그리 살았소. 꼭 우리 아덜 같어서 볼 때마다 맘이 그렇게나 조트라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소. 거시기 전복 이빨은 꼭 짤라내야 해. 안 그럼 속 긁어. 안다고라? 오메, 똑똑한 그. (122, 이은선, <커피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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