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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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 P26

내 작은 집의 풍경에는 바깥 세계가 없다. 중정이 주는 평화. 내면의 풍경 같은 마당.

행인도 거리도 우연의 순간도 없다.
그걸 잊지 않으려면 자주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내향적인 집에도 외부로 열려 있는 방향이 있다. 마당의 하늘. 그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오래 보고 있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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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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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살아 있어서'라는 것은 알겠지만 아직 그게 괜찮지는 않다. 아직? 좀더 기다리면 괜찮아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 P19

나의 부모는 불운하고 서글픈 데다가 늘 누군가를 향한 격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가정의 골이 깊은 사람들이기도 했고 나는 성장기 내내,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부모 중 누군가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그들 각자가 스스로를 연민하는 강도로 그들을 연민하느라고 마음을 다해 애를 쓰고 그들의 기분에 따라 절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면서, 그들의 감정을 내 감정이라고 여겼다. - P51

그렇게 열렬히 부모를 바라보느라고 나는 어린 동생들을 살피지 못했다. 시간을 돌려 바꿔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일단 그 시기로 돌아가 동생들을 돌보고 싶다. 나도 어렸으니까, 그 돌봄은 내 몫도 내 책임도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질 않고 그게 사실도 아닐 것이다. 나는 동생들이 겪은 시간에 책임을 느낀다. 지금의 동생들이라기보다는 당시 내 어린 동생들에게. - P52

놀랍고 상심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예전만큼 나를 흔들지 못한다. 괜찮지는 않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진폭이랄지 파형이랄지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이들의 나쁜 말과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를 향해 당신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자기가 살고자 하는 이를 거절하고, 멀어지라고, 어떤 형태로든 그를 돌볼 수는 있겠지만 그의 비참을 자기 안으로 떠안지 말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가물치를 물에 돌려두었다고 썼다. 해당화를 심고 작약을 두고 보았다고 썼다. 그것이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너무 이른 이야기는 아닐까, 누군가를 너무 상처 입히는 이야기는 아닐까 망설이다가. - P162

고사리를 캐내 찌고 말리는 과정의 수고를 이야기하며 한가닥도 흘리거나 낭비되지 않도록 고사리를 잘 불려 볶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에 과정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늘어간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과 차마 용서를 청하지 못할 사람이 늘어가는 일이기도 한데 그건 내가 살아 있어서. 그리고 나는 그게 괜찮다. - P163

자기 자신에 대한 은밀한 혐오와 수치심, 그것을 그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파란색 흉으로 내 얼굴은 완전해졌다, 완전히 흠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 P173

그 시절 내게 가장 경이로운 타인은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 삶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그게 궁금했고 죽을 때까지 그걸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며 자란 데엔 몇가지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떳떳하지 못하거나 징그럽다는 생각 때문에 내가 거울과 내 얼굴을 피해 다닌 이유는 한가지였다. 나는 나를 떳떳하지 못하다고, 징그럽다고 여겼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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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사이
케이티 기타무라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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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극도로 불안정한 것으로, 내가 차용할 마음이 없었던 몸안에 놓이는 것과 같았다. 나 자신이 이렇게 쉽게 침투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자 구역질이 났다. - P205

나는 생각했다―집에 가고 싶다. 집처럼 느껴지는 곳에 있고 싶다. 그게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 P253

이해해. 올바른 상황에서라면 또 올바른 사람을 상대로라면 나는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강점이면서도 약점이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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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그라피아 - 위대한 작가들의 창조적 열병
앨리스 플래허티 지음, 박영원 옮김 / 휘슬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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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앓는 이들이 쓴 글은 혼란스런 행동, 못 지킨 약속, 계속되는 고통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환자들이 쓴 이런 글들은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내보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정상인과 환자를 구별하는 잣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 P54

시걸이 말했듯 "모든 창작품은, 한때 사랑하고 전부였지만, 이제는 잃어버리고, 파괴되고, 폐허가 된 자신의 내적 세계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 안의 세계가 파괴되었을 때, 모든 것이 죽고 사랑이 사라졌을 때, 사랑하는 이가 조각조각 해체됐을 때, 우리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절망에 빠졌을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 우리는 바로 이때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재창조해야 하고, 조각을 다시 맞춰야 하며, 죽어버린 조각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어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다. - P91

"난 카프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고, 쓰고, 또 쓰게 만드는 절망감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파멸에 대해 쓸 수 있다면 파멸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파멸하지 않은 상태다. 절망하는 작가는 결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파멸이 아직 완전히 다가온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 P177

사실 산후 휴식기를 가지면서 나는 미스터리를 발견했다. 나는 내 슬픔을 사랑했던 것이다. 마치 그 사건을 위해 평생 동안 준비를 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 시절 남편과 나는 두꺼운 포도덩굴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포도덩굴은 구불구불 휘며 올라와 내 방 창까지 닿을 정도였다. 밤이견 난 침대에 누워 어둠 속으로 손을 뻗은 뒤 포도를 따서 먹곤 했다. 내 슬픔도 이와 같았다. 슬픔은 아주 가까이 놓여 있는 그림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내게 통로를 열어준 것 같았다. 팔을 뻗기만 하면 꿈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도록. 그곳은 아름다움과 고통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 세계였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 P281

걸국 사건에 인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불명료한 존재에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인생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아마 작가가 더 강할 것이다. 작가는 직업 성격상 의미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폴 발레리의 말처럼 그것은 "혼란이라는 이름의 바닷가에 언어라는 조그만 기념비를 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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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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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사물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설명하거나 정리하는 일을 시작하기 직전의 순간에 가장 지적이다. 그 순간에 위대한 예술이 발생한다. 또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술에서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 우리가 무언가를 ‘알지만‘(그것을 느끼지만) 너무 복잡하거나 많아서 정리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에 ‘아는 것‘은 언어 없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진짜다. 이게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다른 종류의 알기가 진짜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일반적인(개념적, 환원적) 방식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 - P165

그 작가는 결국 우리가 되겠다고 꿈꾸던 작가와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진짜로 우리인 것으로부터 태어난다. 글에서 또 어쩌면 삶에서도 우리가 누르려고 하거나 부인하거나 교정하려고 해왔던 경향, 우리가 어쩌면 약간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들로부터. / 휘트먼이 옳았다. 우리는 크고, 우리는 실제로 다수를 품고 있다. 그 안에는 하나의 ‘우리‘ 이상이 있다.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찾을‘ 때 진짜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낼‘ 수 있는 많은 목소리 사이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목소리 가운데 지금까지는 그것이 가장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스스로 증명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 P171

‘흠.‘ 나는 생각했다. ‘이거 너무 작은데. 게다가 이건 똥 무더기 언덕이야.‘ / 그렇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 이것은 어떤 예술가에게나 중대한 순간(승리와 실망이 결합된 순간),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고 마음에 든다고 완전히 자신할 수도 없는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것은 작다. 우리가 원했던 크기보다 작다. 하지만 그 이상이기도 하다. 대가들의 작품과 비교하여 판단하면 작고 약간 한심하지만, 그래도 있는 건 분명하고, 다 우리 거다. / 내 생각으로는 그 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수줍게 그러나 대담하게 똥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언덕 위에 올라서서 그게 커지길 바라는 것이다. - P175

이미 미심쩍은 이 은유를 더 끌고 가자면 그 똥 언덕을 커지게 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퍼붓는 노력이다. "맞다, 이건 똥 언덕이지만 나의 똥 언덕이니 내가 나의 것인 이 방식으로 계속 일을 한다면, 이 언덕은 결국 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게 되고, 계속 커져서 그 위에서 나는 결국 온 세상을 볼 수 (그리고 내 작품 안에 담을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겠다." - P176

초고가 좋든 말든 누가 상관하는가? 그건 좋을 필요가 없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퇴고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는 이야기를 시작할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하나의 문장이 필요할 뿐이다. 그 문장은 어디서 오나? 어디에서든. 특별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계속 반응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특별한 문장이 될 것이다. 그 문장에 반응하고, 이어 평범함이나 너저분함 가운데 일부를 벗겨내기를 바라면서 문장을 바꾸는 것이... 글쓰기다. 그게 글쓰기의 전부이며 또는 전부여야 한다. 우리는 어떤 크고 포괄적인 결정을 내릴 필요 없이, 그저 퇴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내리는 수천 번의 작은 결정에 의해 우리의 목소리와 에토스를 찾고 세상의 다른 모든 작가와 구별된다. - P185

그러다가 그는 다시 원래대로 그 자신이 될 것이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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