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 믿음의 글들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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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에서 루이스는 이 책은 변증서도 학술서도 아닌 그냥 시편을 읽으면서 자신이 느꼈던 상념들을 기록한 책이라고 한다. 본인이야 가볍게 썼다고 생각했겠지만, 책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학자 특유의 시선이나 논리적인 사고 방식, 루이스만의 통찰력을 어쩔수가 없다. 자신이 비전문가로서 다른 비전문가들과 흥미롭게 나누고 싶은 내용을 썼다고는 하지만, 비전문가들에게도 레벨(?)이 있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루이스의 통찰력을 빌어 시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 유익한 일이었다. 깊이 공감했던 두 부분을 기록해둔다.

 

P.103 <시편사색>, 홍성사, C.S. 루이스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저급한 이야기를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인 양 떠들어 대는 말을 듣습니다. 단순히 음탕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신의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 관해 흉과 험담이 오가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 모든 선한 삶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들, 곧 사심없는 태도와 영웅적 용기, 진정한 용서 등을 명확한 말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린아이들이 믿는 환상이나 바보짓 정도로 은근히 깎아 내립니다.

이런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은 대체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남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P.159-160 <시편사색>, 홍성사, C.S. 루이스

그러나 그런 입장들을 주장할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한가지 논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분명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다" 라는 식의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에 불과하며,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스스로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분명 이렇게 하셨다"라고 규정짓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특히 그분의 최종적인 일을 우리의 생애동안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

이렇듯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의 지성만으로 파악할 수 있거나 "학과"처럼 "정통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알쏭달쏭한 분일 것입니다. 그분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신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규정되지"않는 분이십니다. 그런 시도는 마치 햇살을 병 속에 담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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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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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으로 유배된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로 평생을 산 황상의 이야기. 사제 간에 주고 받은 여러 한시들과 한문편지들을 정민 교수님이 풀어 놓은 책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으로는 아무래도 삼근계를 받던 장면을 꼽아야겠다. 유배지에서 살 집이 없어서 주막 뒷방에 살면서도 서당을 연 정약용과 열다섯살 소년 황상의 대화.

 

p35.

"너는 좀 남거라, 이를 말이 있다.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지. 게을러선 못쓴다."

소년이 어렵게 입을 연다.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가 있나요?"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이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중략)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내 아이들이 지혜롭고 명철하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성실하고 꿋꿋하길 더 바라게 되는 요즘. 똑똑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무릎을 치며 탄복한다. 공부는 똑똑해야 잘하는 것이 아님을 늦은 나이에 깨닫게 된다. 실제로 열 다섯에 이렇게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후 제자 황상은 팔십 평생을 부지런히 초서하고 읽고 짓는데 몰두하며 산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뛰어난 책들을 하도 많이 지어서 해배가 되었을때 서울로 가지고 가야 하는 책만 수레로 한 가득이었다고 했다. 연구하고 기록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것은 그 제자에게도 대물림되어 황상이 쓴 시 중에 이런 시도 있다.

 

p.91

"이름 모를 새는 없다. 네가 그 이름을 모를 뿐이지. 모르면 찾아야 한다. 찾아 알면 다시는 잊지 않게 되는 법. 떠도는 지식을 네 것으로 만들려면, 그때그때 찾고 확인해야 한다."

 

내 어릴 적에 어떤 선생님이 이런 건 시험에 안나온다고 공부 안해도 된다고 하셨던 적이 있는데, 그 말씀을 너무 철썩같이 믿고선 조금만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이런 건 몰라도 된다며 당당하게 뛰어넘겼던 적이 많았다. 그런 못된 태도는 오랫동안 내게 남아 여러 분야에서 악영향을 미쳤다. 이제라도 그게 잘못이었음을 깨달아 나도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왕 공부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정약용이 초의스님에게 다그치며 공부하라고 한 내용도 재미있어 적어본다.

 

p.143  

"임금의 엄명을 받았다고 생각해라. 뒤에서 장수가 칼을 뽑아들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고 여겨라. 호랑이나 이무기가 너를 잡아먹으려고 쫒아온다면 어찌하겠니? 공부는 그런 다급한 마음으로 해야한다. 조금의 방심없이 몰두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마나다. "

     

정약용은 뛰어난 재주를 가졌으면서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과골삼천, 즉 하도 앉아 공부만 해서 복사뼈가 세번이나 구멍이 났다고 한다. 황상은 자기의 복사뼈는 아직도 건재하다며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앉아서 부지런히 경전을 옮겨적고 시를 지어낸다. 정말 그 스승에 그 제자라 할만하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정말 그 둘의 삶을 바꾼 만남이었다.

  

공부태도 쪽으로 리뷰를 써서 좀 치우쳤지만, 이 책의 한시들을 읽으면서 옛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감성적이고 시적이었을까 싶은 적이 많았다. 유배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쓴 시들이 절절하고 눈물나는 경우는 다반사. 몇 년만에 맏아들을 다시 만나 지은 시나 잠 못 이루는 밤 아내를 그리며 쓴 시들은 읽으면서 나까지도 마음이 애끓어 책을 몇번이나 덮었다 다시 펼치곤 했다. 한자 실력만 좀 있었으면 더 깊이 읽었으련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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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 교육 가이드
콜린 베이커 지음, 정부연 옮김 / 넥서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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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 교육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 Colin Baker도 세 자녀들을 이중언어로 교육했는데, 일단 번역자 정부연 선생님의 마인드가 매우 마음에 들어 역자의 말을 인용한다.

 

이 책의 핵심 중 하나는 이중언어, 삼중언어 교육이 현명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한가지 언어는 완전하게 발달시켜라." 라는 주문이다. 그 한가지 언어가 바로 모국어인 것이다. 우리는 영어 교육만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모국어를 억압하는 환경을 일부에서 진행하고 있고 기준없는 몰입 교육이 정부에 의해 주창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올바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를 이 책에서는 간략한 질문- 대답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중언어 교육에 있어서 가장 금기시하는 " 이 두가지 언어가 모두 얕게 형성된다'는 것을 국제적 전문가의 권위를 빌려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모국어는 제2언어와 비교될 수 없는 중요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사고력'을 결정짓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영어 유치원에서 억압받는 모국어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자신감과 자긍심이 아니라 '교만과 열등의식'을 갖고, 갑작스러운 모국어의 억압으로 많은 상처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러한 영어교육을 통해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이중언어 교육이 바보교육인지 영재교육인지를 판단할 수 있고,...또한 어린 시기의 '공연하는 언어는 지옥이다'라는 말을 우리의 부모님들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유창한 영어 실력이 부러움을 사는 우리 환경에서 영유아 시기에 영어를 공연시키려 하지만 이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 이는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이다.

                                                                                    - 역자의 말 중 일부 

 

 

 

책에서는 영역을 세분화해서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목차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A. 가정에서의 질문

(언어 발달에 있어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중요한가, 부모가 모두 제2언어를 말할 수 없을 때 어떻게 이중언어 교육을 할까 등의 질문을 포함)

B. 언어 발달에 대하여

(조기교육이 이중언어 교육에 효과적인가, 아이가 두 언어에 똑같이 유창해질 수 있는가, 제2언어 학습이 모국어 발달을 방해할 수도 있는가 등의 질문을 포함)

C. 이중언어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이중언어 교육이 두뇌 기능에 영향을 주는가 등의 질문을 포함)

D. 이중언어 읽기와 쓰기

(제2언어로 읽기를 배우는 것이 제1언어로 읽는 것을 방해하는가, 아이는 언제 제2언어로 읽기를 시작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포함)

E. 이중언어 교육의 의문점들

("결정적인 시기"가 존재하는가, 이중언어의 유형)

F. 이중언어 교육 질문 모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지난 주에 딸아이랑 걸어서 집에 오다가 아이가 문득 "엄마, 풍선은 영어로 뭐야? 하길래 단어를 가르쳐줬었다. 그리고는 내가 장난삼아 "What color is it?" 했는데, 아이가 곧바로 "주황색은 영어로 뭐야?"해서 놀라서 웃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못 알아들어야 할  상황에서만 (예를 들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를 때려서 혼났는데, 안 때렸다고 거짓말을 해서 혼났다거나 하는) 우리끼리 영어로 말해왔기 때문에 아이가 알아들을 줄은 생각을 못했다. 아이들은 언어에 민첩하구나 싶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한글도 안 가르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칠"생각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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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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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딸아이가 잠결에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빠를 찾으며 흐느끼기 시작하길래 안아주며 아빠는 오늘 밤에 오신다고 했더니 아마 마루에 있을 것 같다고 아니면 작은 방에 있을 것 같단다. 나가 보잔다. 아니라고 어제 일 때문에 제주도 가셔서 오늘 밤에 오신댔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 보고싶단다. 다섯살 딸에겐 하루만 떨어져 자도 이렇게나 그리운 아빠.

 

열여섯살 학유에게 아빠 정약용의 귀양은 얼마나 길고 사무쳤을까. 아버지와 둘째아버지, 셋째 아버지, 고모부가 모두 서학과 관련되고 온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던 신유박해. 정당한 이유 없이 유배 생활이 18여년. 세상을 알고 아버지가 고초를 겪은 이유까지도 모두 알기에 그에게 세상은 얼마나 비열하고 불의했을까.

 

저자 안소영 선생님은 다산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의 눈으로 아들이 아버지 정약용에게 썼을 법한 편지들을 재구성하신다. 그냥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풀어놓은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실망하고 자신의 미욱함에 괴로워하는 둘째아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묘사해서 정말 이게 모두 마치 정학유의 편지인 듯이 느껴진다. 공부까지 흥미를 잃은 젊은 실학자의 아들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해서 어딘가에 있는 그 분의 편지를 그냥 번역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다보니 그런 것은 아니라 그럼 픽션인가 했으나 또 그것도 아닌 것이 책 맨 뒤 참고문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책만 56권, 논문은 36권. 헉! 하고 놀라 저자약력을 다시 읽어볼 수 밖에 없었다. 안소영 선생님. 놀라운 분이다. 이 분의 책을 꼭 더 구해서 읽어야겠다.

 

사실 아침에 아이가 울어서 애잔한 마음이 남았었는데, 머리말을 보며 오래된 인연에 나도 눈물이 글썽거리게 되었다. 학생 시절, 작가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옮김) 를 읽었던 거다.  정약용의 편지. 서울에 남기고 온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쓴 공부하라, 공부하라, 공부하라던 나 또한 깊은 감동으로 읽었던 책. 안선생님이 나와 같이 그 책을 읽었고, 그 영감으로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니 마음이 왠지 벅찼다. 또 하나. 이 분이 그 무렵 옥중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마치 유배중의 다산이 아들들에게 편지를 쓰신 것처럼) 꼬박꼬박 편지를 받고 있어서 그 때 작가도 열여섯 살이었다고 해서 더욱 특별히 느껴졌다. 감옥살이하는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깊은 성찰. 정학유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은 흔적은 아마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일테다.  

 

 

p.79~80 일부 

아버님은 단 하루도, 단 한시각도 허투루 보내신 적이 없었다. 강의는 날마나 새로웠고, 초당의 서가에는 한 권씩, 두 권씩 아버님이 쓰신 책들로 쌓여갔다. 아버님의 말씀을 받아쓰고, 수정하고, 편집하고, 책으로 매고, 장정하는 제자들의 솜씨도 점점 좋아졌다. 찾아오는 제자들도 늘어나, 얼마 전에는 초당 양쪽에 동암과 서암을 새로 지었다.       

... 사람만이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초당에서 들은 아버님의 첫 강의를 자주 되새겨보곤 했다.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시간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내려진 형벌에 체념하고 절망하여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저 스스로를 맡겨버릴 것인가, 아니면 아득하고 절망적인 그 시간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스스로의 자취를 깊이 새겨놓을 것인가.

...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는 피 튀기는 형벌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을 갑작스럽게 낯설고 외딴 유배지에 던져놓음으로써 그리움에 지치게 하고 체념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마침내 그의 영혼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그러나 지난 7년간 유배지 강진의 다산에서 보낸 아버님의 시간은 놀랍기만 했다. 나의 시간이 그러 흘려보낸 시간이었다면 아버님의 시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것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운명이 내려준 형벌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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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발랄 하은맘의 닥치고 군대 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육아 시리즈
김선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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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를 읽다보면 이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는 못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운 적이 많았다. 보통 EBS에서 나온 책들이 그랬고, 나이 지긋한 선생님들께서 쓴 육아서적들도 읽으면서 공감은 많이 했지만, 모자른 내 인격으로는 이렇게 하기 쉽지 않아 한숨 쉬곤 했었다. 그럴 때면 육아서는 늘 읽은 후가 더 찝찝한 마음. 이 분은 하셨는데, 나는 왜 안되는가 나의 부족한 자질은 어떻게 채워야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괴로웠었다.  

 

전편인 <불량육아>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두 번째 책도 "쉽게 읽히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될 것 같다. 심각하게 구어체로 써내려 간 책이라서 선호도가 갈리겠지만, 앉아서 한번 붙들고 한두 시간 집중하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고 삼년만 버티고 인내하고 희생하며 기르라는 게 포인트이다.

 

아이를 책으로 기르려고, 어떻게든 아이에게 읽히려고 노력한 저자의 지난 날들이 아프게 공감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분은 육아의 방식이나 방향에 대해 남편과 전혀 공감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부모가 같은 기준과 방향을 가진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이 분과는 좀 의견이 다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하은이를 혼자 키우신 느낌이다. 또, 난 사실 이렇게 작가처럼 이 악물고 사는 타입이 아니라서 내가 읽고 싶은 책 밤새 읽는 것은 괜찮지만, 아이는 밤에 일정한 시간에 재우기 때문에 작가처럼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작가는 커피 믹스를 타서 마시면서 열두시 넘어까지 읽어주셨다고 했는데, 난 그건 좀. 푸름이 아버님도 하루에 7-8시간씩 엄마랑 교대로 밤새 읽어줘서 영재가 되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 난 그냥 내가 읽는 것을 좋아하므로 나랑 살다보면 스며들듯이 내 아이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한다.

 

공감되는 포인트도 많이 있었다. 내 아이 책 많이 읽혀서 특목고 보낼려고 하는 거 아니라는 것.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지금은 돈 없이 키우는 게 지혜라는 것 정도. 글쎄. 내게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 책을 좋아하는 하고 많은 이유 중에 뭘 대답하면 좋을까. 난 내 아이에게 왜 책을 읽히나.

 

난 아마 또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싶어서. 마음이 괴롭던 시절 책은 내게 그야말로 피난처였다.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걸어들어가 몇 시간이고 빠져들었다가 나오면 마음도 가라앉고 견딜수도 있고 그랬던 것인데. 괴로운 시절을 지나고서도 책은 여전히도 매력적인 딴 세상이어서 밤에 아이들 재우고 혼자 읽는 시간을 누리며 나를 위로한다. 내 아이들도 읽기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하는 간절함은 나 역시 작가와 같다. 그러나 아마 이 분처럼 하긴 어려울 듯. 그리고 책을 이렇게 구어체로 쓰시면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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