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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ㅣ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아침 딸아이가 잠결에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빠를 찾으며 흐느끼기 시작하길래 안아주며 아빠는 오늘 밤에 오신다고 했더니 아마 마루에 있을 것 같다고 아니면 작은 방에 있을 것 같단다. 나가 보잔다. 아니라고 어제 일 때문에 제주도 가셔서 오늘 밤에 오신댔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 보고싶단다. 다섯살 딸에겐 하루만 떨어져 자도 이렇게나 그리운 아빠.
열여섯살 학유에게 아빠 정약용의 귀양은 얼마나 길고 사무쳤을까. 아버지와 둘째아버지, 셋째 아버지, 고모부가 모두 서학과 관련되고 온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던 신유박해. 정당한 이유 없이 유배 생활이 18여년. 세상을 알고 아버지가 고초를 겪은 이유까지도 모두 알기에 그에게 세상은 얼마나 비열하고 불의했을까.
저자 안소영 선생님은 다산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의 눈으로 아들이 아버지 정약용에게 썼을 법한 편지들을 재구성하신다. 그냥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풀어놓은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실망하고 자신의 미욱함에 괴로워하는 둘째아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묘사해서 정말 이게 모두 마치 정학유의 편지인 듯이 느껴진다. 공부까지 흥미를 잃은 젊은 실학자의 아들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해서 어딘가에 있는 그 분의 편지를 그냥 번역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다보니 그런 것은 아니라 그럼 픽션인가 했으나 또 그것도 아닌 것이 책 맨 뒤 참고문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책만 56권, 논문은 36권. 헉! 하고 놀라 저자약력을 다시 읽어볼 수 밖에 없었다. 안소영 선생님. 놀라운 분이다. 이 분의 책을 꼭 더 구해서 읽어야겠다.
사실 아침에 아이가 울어서 애잔한 마음이 남았었는데, 머리말을 보며 오래된 인연에 나도 눈물이 글썽거리게 되었다. 학생 시절, 작가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옮김) 를 읽었던 거다. 정약용의 편지. 서울에 남기고 온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쓴 공부하라, 공부하라, 공부하라던 나 또한 깊은 감동으로 읽었던 책. 안선생님이 나와 같이 그 책을 읽었고, 그 영감으로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니 마음이 왠지 벅찼다. 또 하나. 이 분이 그 무렵 옥중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마치 유배중의 다산이 아들들에게 편지를 쓰신 것처럼) 꼬박꼬박 편지를 받고 있어서 그 때 작가도 열여섯 살이었다고 해서 더욱 특별히 느껴졌다. 감옥살이하는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깊은 성찰. 정학유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은 흔적은 아마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일테다.
p.79~80 일부
아버님은 단 하루도, 단 한시각도 허투루 보내신 적이 없었다. 강의는 날마나 새로웠고, 초당의 서가에는 한 권씩, 두 권씩 아버님이 쓰신 책들로 쌓여갔다. 아버님의 말씀을 받아쓰고, 수정하고, 편집하고, 책으로 매고, 장정하는 제자들의 솜씨도 점점 좋아졌다. 찾아오는 제자들도 늘어나, 얼마 전에는 초당 양쪽에 동암과 서암을 새로 지었다.
... 사람만이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초당에서 들은 아버님의 첫 강의를 자주 되새겨보곤 했다.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자기 앞에 놓인 시간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내려진 형벌에 체념하고 절망하여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저 스스로를 맡겨버릴 것인가, 아니면 아득하고 절망적인 그 시간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스스로의 자취를 깊이 새겨놓을 것인가.
...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는 피 튀기는 형벌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을 갑작스럽게 낯설고 외딴 유배지에 던져놓음으로써 그리움에 지치게 하고 체념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마침내 그의 영혼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그러나 지난 7년간 유배지 강진의 다산에서 보낸 아버님의 시간은 놀랍기만 했다. 나의 시간이 그러 흘려보낸 시간이었다면 아버님의 시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것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운명이 내려준 형벌에 순응하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