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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거적을 펴다 ㅣ 지혜사랑 시인선 111
송수권 지음 / 지혜 / 2014년 6월
평점 :
고등학생 시절 <山門에 기대어>를 처음 읽고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라며 가슴 먹먹하게 읇조리던 시가 아직도 기억난다. 시인의 누이가 정말 죽었나, 이 시인의 시들은 다 이렇게 슬픈가, 이렇게 가슴 아파 잊혀지기 어려운가 했었다.
그런 깊은 슬픔으로 매료시켰던 감동은 <허공에 거적을 펴다>에서는 찾기 어렵다. 시가 시인의 삶을 투영한다면 그런 깊었던 상처는 이제 좀 잊혀졌는가 싶기도 하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시도 평범해졌나, 살짝 아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시집이다. (첫 쪽 시인의 말에서 송선생님도 이 시집이 일상 생활 속의 느낌을 가볍게 써 본 시편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정신에 천작했던 시들은 다른 시집으로 묶을 예정이라고. 다소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일 듯.)
그러나 누가 뭐래도 여전히 "클라스"가 다른 시인임은 틀림없다. 남도 고유의 어휘를 쥐락펴락하는 버릇도 여전하시다. 특히 의성어나 의태어를 써내는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듯하다. "멸치 떼와 갈치 떼가 자글자글 울음 우는 곳" (p.32,<목표역>) 이라고 한다던지 "봄비가 소근거린다"(p.61, <열무밭을 지나다가>) "생흙을 팔 때 싸륵싸륵 그 첫삽 소리"(p.73, <삽>) 같은 말들은 누가 이런 말을 생각해낼수 있나 싶고 소리내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곳곳에 별 것 아닌 소재를 가지고도 시를 써내는 번뜩임도 보인다. 아기띠를 매고 있는 애아빠를 "육아낭"을 차고 있는 "해마의 수컷"이라고 빗댄다던지 (p.23,<해마는 서서 잠든다>) 상사화 꽃을 두고 "미친년들"이라고 "화냥년들"이라고 의인화해버린다던지 하는 발상은 정말 다른 어떤 시인이 이렇게 쓰실까 싶다. 마음 흔들게 예쁘게 핀 꽃을 보고 미친년들이라고 하는 이런 게 너무 좋아서 인터넷으로 상사화 사진을 검색하기까지했다. --;;
개인적으로 전문이 다 좋았던 시는 <해마는 서서 잠든다>와 <상사화相思花>였다. 덮기에는 아쉬워서 처음부터 다시 훑으니 여전히 격이 다른 시인. 딱히 버릴 것 없이 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