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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그냥 개인적으로 별점을 주라면 나는 여섯개를 주고 싶다. 박범신씨나 정유정씨 같은 분들의 소설들이 너무 재밌어서 알라딘 기준으로 5점 만점이라면, <Hunger Game>,<Greger the overlander>, <토지>는 만점을 뚫고 나가서 7점. 이 책도 개인적으론 만점을 뚫고 나가는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에세이라 내내 잔잔했지만, 너무나 완벽하고 부러운 삶을 보여주어서 나로서는 이 책을 사나흘 동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표지도 그렇지만 중간중간 장이 바뀔 때마다 세로쓰기로 되어있어서 아련한 향수마저 일었다. 내 중학생 시절, 이모에게서 얻어다 읽었던 오래된 문고판 세계문학은 온통 세로쓰기였었다.
머리말에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서재에서 게으른 고양이가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거닐다 앉았다 하며 동서고금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내가 꿈꾸던 삶의 일상과 거의 같다. 어떻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책을 썼지? 하는 흥분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어 다 읽고 두번째 읽으려고 표지를 다시 보니 아, 정말 표지마저 완벽한 내 스타일이다. 게다가 부제가 "읽는 삶, 쓰는 삶,만드는 삶"이라니! 내가 꿈꾸는 삶은 일주일에 사흘은 책 가득한 서재에 꼼짝없이 틀어박혀 읽고, 나머지 사흘은 (넓은 의미)학교에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라고 며칠 전에 일기에 써놨는데. 소울메이트야? 내 소울메이트가 남편이 아니라 이 중국인 교수님이었어? 헐.
책 초반에 고양이를 신비스러워하지만, 애완동물은 책을 망가뜨릴게 분명한데, 어떻게 키우지? 했는데, 금방 의문도 풀렸다. 안 키우신다. 미리 이름만 지어놓으셨다. 케플러라고. 근데 안 키우신다. 쟝사오위안이 따로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애지중지하는 책들을 고양이가 망칠 게 염려되어 못 키우는 게 틀림없을 테다. (물론 짬이 없다고 하긴 하셨지만).
또하나, 읽다가 뒷 부분에서 정말 너무 흥분되서 못 참았던 대목이 있었다. 진융의 소설에 빠졌다는 부분. 나도 고1때 얼마나 읽어댔던가! 심지어 교과서 옆에 두었다가 보충영어선생님께 걸렸는데, 교무실로 불려가서 그 선생님이 나와 같이 <영웅문>을 미치게 좋아한다는 걸 알고 번개맞은 듯 놀란 적도 있었다. 그 후로 종종 교무실로 놀러가 그 선생님과 함께 좋아하는 구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책의 일부분을 함께 암송도 하는 데에 이르렀었다. 아, 그런데 김용의 소설에 미친 사람이 또 있다니.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캐릭터가 하나하나 다 살아 있어서 머리 속에서 무협영화가 돌아 갔던 그 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데 이 장샤오위안도 우연히 만난 스승님이 "진빠"(P.226) 였다는 것! 심지어 이 거거교수님은 "슈퍼진빠"로서 진융의 무협 소설 열다섯편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도장을 직접 파시는 기염을 토하셨다고. 하아~ 그리고 <진융 소설 인문 인보>를 쓰셨는데, 아직도 그 책은 출판이 안되었다고 했는데, 아. 읽고 싶다. 읽고 싶다.
사실 이런 내용들은 너무 재밌지만 좀 덜 진지하고 전체적으로 다른 분들에게도 의미 있을 만한 내용들도 굉장히 많은데, 몇 군데 인용해 놓겠다.
P.130,<고양이의 서재>
책 출간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생각이 있다... (중략)... 수많은 젊은이가 출판사에 자기 책을 내려면 어디서 돈을 마련해 어떻게 부탁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난 그러지 말고 출판사에서 찾아오도록 만들라고 말한다..(중략) ...좋은 글을 써서 좋은 간행물에 발표하면 누군가 당신의 글에 주목할 것이다. 그렇게 여러 편의 영향력있는 글을 쓰고 나면 책을 쓰자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중략) 출판사에서 당신을 찾아오게 하라. 출판사에서 날 찾아오게 된 원인도 그들이 내 글을 봤기 때문이다. ..(중략)... 열심히 재미있는 글을 쓰면 누군가 책을 내자고 찾아오는 날이 온다. 서둘지 말길.
P. 138,<고양이의 서재>
좋은 서평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책을 소개한다. 이 점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둘째, 책을 평가한다. 책을 적절한 배경에 놓고 평가하는 일인데 일부 사람은 해내지 못한다. 서평가는 해당 책과 비슷한 책이나 관련된 주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데 서평가의 취향에 달렸다. 책에서 재미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독자와 공유하는 작업이다.
P.141,<고양이의 서재>
가끔 생각한다. 깨닫고 보니 독서와 글쓰기로 먹고 살고 있었다. 이 두가지는 원래부터 내가 원하던 것이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과 가장 좋아하는 일이 다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