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에 <부활>이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 주인공들의 이름이 길어서였던 것 같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인데 보통 카튜샤라고 불리고 심지어 남주인공의 이름은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도프 공작이다. 달랑 세 글자인 이름을 가진 나로서는, 이름부터 시작해서 심리묘사나 상황의 설명이 모두 장황한 이 대작에 대해 서평을 쓴다는 게 조심스럽지만, 뭐 내가 어디에 제출하는 것도 아니고 읽은 내용을 한번 정리할 겸 쓰는 것이니 부담은 좀 내려놓고.

 

1부를 읽으면서는 이래서 걸작이구나 싶던 대목이 많았다. 노년의 톨스토이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짧은 순간을 잘 묘사할 뿐 아니라 그 인생 전체를 통으로 꿰뚫어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펼친대도 이런 통찰력은 보통 작가들에게서 보긴 어려울 듯. 처음 사랑에 빠지기 전 남주인공의 마음과 군 복무 후 변화한 그의 심리 묘사는 소설이 아니라 마치 정말 있던 일을 기록한 것같이 느껴질만큼 사실 같았다.

p.94, <부활 1>

네흘류도프는 자기가 사랑에 빠져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예전에 느꼈던 그런 사랑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사랑이 신비롭게 여겨졌고, 스스로에게 고백할 용기도 갖지 못하면서 사랑이란 일생에 단 한번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기고 있고, 설사 자기 자신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해도 이 사랑이 어떤 성질의 것이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카튜샤와의 관계가 있은 후 십여년이 지나 네흘류도프 공작이 귀족 집안의 여성과 혼담이 오갈 때의 심리 묘사는 정말 탁월했다.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기준에 따라 같은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진실인가. 어두운 곳에서 보면 아름다웠던 여인이 밝은 곳에서 보면 추한 여자였다는 것은 작가의 깊은 통찰력을 한번 더 보여주는 대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p. 163. <부활1>

네흘류도프는 미시를 대할 때마다 언제나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흔들렸다. 이따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거나 또는 달빛 속에서 볼 때처럼 그녀의 아름다운 점만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는 생명력있고 아름답고 지적이고 자연스러운 여성으로 눈에 비쳤다. 그러나 이따금 밝은 햇빛 속에서 볼 때처럼 그녀의 결점이 온통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숨겨진 잔주름이 죄다 보였고 머리 모양이며 비죽 불거져 나온 팔꿈치도 눈에 거슬렸다.

 

법정에서 네흘류도프가 배심원으로 카튜사가 피의자로 십여년만에 재회하게 되는 설정도 참 의미심장하다. 그는 순수하고 영특했던 소녀 카튜샤와 하룻밤을 보내고 백루블을 주고는 아무렇지 않게 떠난 사람이었으므로 그 후 임신한 카튜샤가 결국 유곽을 전전하며 살았던 삶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는 이 상황이라니! 죄 없는 사람은 없다는, 누구라도 다 죄인이라는 첫 페이지에 인용된 성경 구절의 드라마틱한 버전이랄까.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톨스토이는 이런 주제의식을 책 전반에서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 특히 2부나 3부로 갈수록 점점 더 그러다가 3부의 끝은 결국 마태복음까지 도달한다. 물론 책 맨 앞에도 성경을 인용해서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시작하기도 했다. 이 고전의 끝이 결국은 기독교적 사랑이라고 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읽으면 무감동할까? 전혀 그렇지 않을 듯. 시대와 종교를 초월해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한 표를 던진다.

p. 216-217,<부활2>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의무를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무와 의무만을 중요시하여 이를 다른 사람들의 어떤 요구보다도 제1의 조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잠시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절대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결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p. 221, <부활2>

그러나 인간만은 절대로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 해악 없이 음식을 유익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욕이 있을 때 뿐이다. 그렇듯이 해악 없이 유익하게 인간과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 뿐이다.

 

유형판결을 받게 되는 과정이나 2부에서 감옥에서 네흘류도프가 억눌린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들은 약간씩 지루하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지적하고 싶었던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너무 직접적으로 다뤄서 그랬던 것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수준이 낮고 돌려 말하면 수준 높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늘 은유나 상징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 좀 그런 면에서는 아쉬웠다. 그래도 읽고 있던 다른 책들이랑 같이 읽느라 좀 산만해져서 그렇지 <부활>만 읽었으면 굉장히 빨려들어 읽었을 것 같다. 새벽에 방해받지 않을 땐 한참씩 몰입해서 읽기도 했었다.

 

그냥 하는 말이지만 혹시 어딘가에 정착하고 한 집에서 오래 산다면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전집을 백 권 다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좋았다. <부활>은 권할만한 책이다. 긴 이름들을 메모하면서 읽을만한 책이고 서평을 쓰느라 메모했던 페이지들을 다시 들춰보니 새삼 더 선명하고 좋은 작품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계몽소설 티가 너무 나서 좀 <상록수>읽는 기분이 들어 빵 터져 웃었지만. 좋았다. 다시 읽으라고 해도 또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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