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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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괴담 / 이재익

 

그대가 만진 모든 것. 그대가 본 모든 것. 그대가 맛본 모든 것. 그대가 느낀 모든 것.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 그대가 증오하는 모든 것. 그대가 불신하는 모든 것. 그대가 구한 모든 것. 그대가 준 모든 것. 그대가 거래한 모든 것. 그대가 사고, 구걸하고 혹은 훔친 모든 것. 그대가 창조한 모든 것. 그대가 파괴한 모든 것. 그대가 행한 모든 것. 그대가 말한 모든 것. 그대가 먹은 모든 것. 그대가 만난 모든 사람들. 그대가 깔본 모든 것. 그대와 싸운 모든 사람들. 현재 있는 모든것. 사라진 모든 것. 다가올 모든 것. 태양 아래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지만. 태양은 달에 의해 가려진다.

 

-P.48-

1.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노스트라 다무스'라는 위대한 예언가는 2000년이 오기 전 지구가 멸망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습니다. 저 역시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동생들과 함께 작은 파티를 열며 기다렸습니다. 10.9.8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며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때까지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참으로 머릿속에 깊이 인식되어 있습니다. 지구 종말과, 새로운 시대 사이에서 십대 청소년이 느꼈던 벅차오름은 참으로 기묘했습니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아쉬움 여러가지 생각의 공존은 아마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였을 겁니다. 컬투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이재익 작가의 <심야버스괴담>은 이러한 시대말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있습니다. 그 세상속에 사는 사람들은 얼핏 정상처럼 보이나 비 상식적이고, 비 인간적인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살아갑니다.

 

 

 

 

끝없이 밀려드는 바퀴벌레로 가득 찬 준호의 배가 부풀어 오른다. 배안에서도 수많은 바퀴벌레가 날개짓을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터지고, 그 안에 있던 바퀴벌레들은 쾌활한 비상을 시작한다. 준호는 배에 구멍이 난 채로 죽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본다. 취객과 기사 옆에 나란히 누워 썩어가는 자신의 시체를.

 

-P.92-

2.

 

강남역과 분당을 연결하는 2002번 버스.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7명의 승객이 전부인 심야버스 평범한듯한 일상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정리해고를 당한 한 취객. 그는 만취한 채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심야버스에서 기사와 핸들을 놓고 실랑이를 벌입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버스는 심하게 휘청거리며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필적 고의로 인해 모든 승객이 공범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상황. 서둘러 사건을 처리하고 은폐하려고 하지만 작은 출발점에서 시작된 일이 점점 커지는 눈덩이효과(Snowball Effect)가 그들의 앞날을 덮칩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여섯 명. 양심을 뒤로한 채 사건을 잊으려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살해 당하기 시작합니다. 추리소설보다는 고딕소설의 음산함과 더욱 잘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쉴새없이 넘어가는 페이지가 장점입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알수있는 범인과, 뒷 이야기는 흥을 깨버립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쉽게 쓰인만큼 쉽게 읽히고, 휘발성 또한 강합니다. 작품을 읽는 동안은 재밌었지만 읽고나서는 내가 무엇을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전형적인 비급 공포영화의 후기와 같았습니다.

 

 

 

 

"이 세상엔 커다란 성이 있어. 성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으로 나눠지지. 성 안은 풍요롭다 못해 삶이 무료하다는 얘기까지 나돌아. 성 밖에 버려진 자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쁘게 살아가지. 성벽은 까마득히 높아. 성 밖의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에 들어가기 힘들어. 넌 그 절망감을 몰라. 지금 넌 내 곁에 있지만."

 

-P.128-

3.

 

하나의 사건의 숨겨진 뒷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심야의 버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곳에서 사람들은 안정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심에 양심을 져버립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신을 부르짓는 절실한 신자도 있고, 과외와 공부를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학생도 있습니다. 얼핏 너무나 '잘' 살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뒷 이야기는 구린내가 날정도로 추악합니다. 세기말 혼란스러운 시대를 핑계로 삼기에는 이런 추악한 현실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매체로 접하는 사건의 진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과 같은 커다란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흔히 접하는 사건 사고에는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그리고 그 뒤에는 썩어 문드러져 구린내 나는 인간의 양심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야의 버스에서 발생한 오싹한 사건이 과연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노스트라 다무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구 멸망이 사실 2000년이 아닌 2012년 12월 21일 이라고 말합니다. 세기말이 가까워져서 일까요. 인육을 먹는 미친놈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세상이 점점 무서워 집니다. 혼란스런 세상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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