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문득 생각했는데, 만약 아타미 온천 어딘가의 여관에서 '세계 슈퍼모델 워크숍'같은 것이 열리고 그 근방의 일반인 여성이 아무것도 모른 채 대형사우나에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자. 주위에 있는 사람 전부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알몸의 슈퍼모델이라면 그건 꽤 무서운 체험이지 않을까? 분명 악몽 같을 거다. 만약 내가 여성이었다면 그런 경우만큼은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뭐 슬쩍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겠지만.

 

-P.30-

 

1.

 

하루키의 에세이집이 새로 나왔습니다. 작년에 출간된 잡문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에세이 집인데요. 제목부터 무척이나 신선합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과연 채소의 기분은 어떻게 판단하며, 바다표범의 키스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출간 전부터 이 제목에 이끌려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루키란 작가는 참 독특합니다. 결혼한 뒤에 일을 시작하고, 그 뒤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역순으로 청춘을 보냈죠. 그런 과정이 작가에게 독창적인 가치관을 형성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굴튀김을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좀 더 가볍고 일상적으로 변했습니다. 책은 일본의 주간 잡지 <앙앙>에 연재되었던 ‘무라카미 라디오’의 52가지 이야기를 한데 묶어놓은 에세이 집인데요. 하루키 특유의 사색과 위트가 잘 어우러진 유쾌한 책이였습니다.


 

비틀스와 비교하는 것은 쑥스럽지만, 회사란 '문제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다. 남달리 개성이 강한 것, 전례가 없는 것, 발상이 다른 것, 그런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배제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동요하지 않고 꿋꿋할' 사원이 얼마나 있는가로 회사의 기량 같은 것이 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일본 경제는 앞으로 대체 어떻게 될까요.

 

-P.103-

2.

 

제 친한 벗은 허세에 가까운 행동들을 일상처럼 즐기고, 있어보이게 고민하는 모습이 젊은 층에게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특권의식을 심어주기에 작가의 책이 잘 팔리는 것이라고 날 선 비난을 서슴지 않더군요. 하루키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그 특유의 감성 때문일 겁니다. 저 역시 소설을 읽고 그 향수에 젖은듯한 아련함에 푹 빠져 팬이 되었으니까요. 여기에 비추어 보면 친구의 비판 역시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에세이에서 만나는 하루키는 소설에서의 하루키와는 많이 다릅니다. 편집증에 날카로울것만 같은 소설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조금은 모잘란듯한 사내로 이미지를 완벽하게 변신합니다. 특히 이번에세이는 그런 하루키의 매력이 너무나 잘 드러납니다. 그가 싸인을 왜 하지 않는지, 어느 산책로를 좋아하는지, 고양이가 까마귀를 쫓아 다니는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한 그의 이야기가 각각의 이야기에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세대와는 관계없이 세간 사람들에게 이십대가 어떤 것인지 나는 그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즐거운 청춘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켜가는 괴로운 과정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도 아니면 '세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당신의 이십대는 어떤 것인가? 혹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 이건 내가 상당히 진지하게 알고 싶은 문제이다.

 

-P.183-

 

3.

 

그는 절대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행동해라 구체적인 방안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문학적으로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물고기를 던져주기보단,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그의 이야기에 잔소리에 질린 젊은이들이 열광하는건 당연한 이치일 겁니다. 이번 책에서는 이런 사회적인 언급이 담긴 내용은 거의 없지만 가끔 한번씩 따끔 경종을 울리는 부분들은 있습니다.(34P에 시사적인 화제는 피한다는 부분이 있지만, 종종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몇편의 에세이와, 소설들을 읽어봤지만 이번 작품처럼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책은 처음이였습니다. 감성터지는 판화와 더불어 정말이지 멋들어지는 책이였던것 같습니다.

 

몇편의 에세이와, 소설들을 읽어봤지만 이번 작품처럼 유쾌하고 위트 넘치는 책은 처음이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