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아카가와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 아카가와 지로

 

 

그런데..... 이렇게 아내를 믿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무리 악처라고 해도 결혼했을 때는 서로 행복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선의를 순수하게 믿어주는 것이 남편이라는 존재 아닐까.

 

-P.51-

 

1.

 

결혼한 남자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결혼 전 생각하는 모든 로망은 결혼하고 정확히 일주일 뒤 산산조각 난다는 충격적인 발언에 미혼인 저와 친구들은 괜한 걱정을 하며 결혼을 할것인가 말것인가의 기로에서 한참을 고민했었습니다. 뭐 그날의 결론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어쨌든 후회하는게 결혼이라면 기왕이면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로 귀결되었습니다.

 

2.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은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입니다. 작가의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기에 도서전에서 고민없이 책을 선택했는데요. 역시나 경쾌하면서 즐거운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니시코지 도시카즈'라는 필명으로 공동창작을 하고 있는 네명의 사내들입니다. 기자 출신의 정보수집담당 가게야마,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고지, 시인 출신의 가가와, 그리고 신인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한 소설가 니시모토 등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은 각각의 특징에 맞는 문체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때문에 하나의 작품 속에서 네편의 다른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요.


 

 

히토미도 처음에는 손만 잡아도 볼을 붉히는 순진한 처녀였다. 결혼 전에는 키스도 안 된다며 고집스럽게 그의 유혹을 거절했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그 재미를 알고 나더니 180도로 변해서 거의 밤이면 밤마다 먼저 달려들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고지도 자못 유쾌하게 히토미의 요구에 신나게 응해주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 게다가 35세와 22세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P.232-

 

3.

 

하나의 필명으로 소설을 공동 집필하는 네 명의 남자들. 각각의 사정으로 아내에게 시달리는 이들이 선택한 신작 테마는 '아내를 죽이는 법'입니다. 니시모토는 돈만 밝히는 아내를 자살로 내몰기 위해 아내가 자식처럼 아끼는 조카를 이용해 대출을 받게 하는 소설 초안을 작성하고, 고지는 비오는 날 자동차로 역에 마중을 나오는 아내를 불량배들을 통해 겁탈하게 하여 밤이고 낮이고 침대로 끌어들이는 버릇을 고친다는 내용의 소설을 씁니다. 한술 더 떠 가게야마는 여행을 떠난 아내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고 애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끔찍한 이야기를 초안으로 내놓지요. 장난스럽게 시작한 일지지만 놀랍게도 소설 초안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꿈과 현실은 뒤죽박죽이 되고,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저 아가씨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본인도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그녀의 말은 니시모토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P.263-

 

4.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더욱 단점이 뚜렷하게 부각되 보이곤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서로에게 가장 실망할때가 양치할때 내는 헛구역질 소리라는 내용의 기사는 이런 주장을 더욱 타당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예일겁니다. 사소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네명의 남자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적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소한 이유들로 결혼이라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곤 합니다. 책은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남자들만의 문제일까요. 남자들의 어긋난 판타지를 너무 극단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만 가볍게 읽기에는 재밌는 책이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회와 진실의 빛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후회와 진실의 빛 / 누쿠이 도쿠로

 

자기 자식을 죽인 부모, 어른 못지않은 잔인성을 발휘하여 친구를 죽인 아이, 극히 사소한 이유로 느닷없이 사람을 찔러 죽인 젊은이, 픽션 세계가 그대로 현실화된 듯한 엽기적인 사건.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에 이미 익숙해져서 누구 하나가 죽은 정도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시대. 그에게 이름이 붙여질 까닭이 없었다.

 

-P.130-

 

(스포 有)

 

1.

 

사회파 미스터리답게 읽고난 뒤 뭔가를 마구마구 생각나게 하는 책이였습니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사건 속에서 선과 악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작년에 읽은 책중 최고가 <화차>였다면, 올해 읽은 책중 최고는 <후회와 진실의 빛>이였습니다.

 

2.

 

<통곡>과, <우행록>을 통해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은 누쿠이 도쿠로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공히 갖춘 작품에 수여하는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한 작품은 <후회와 진실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일본소설답게 담백한 문체로 마지막 짜릿한 반전까지 쉼없이 사건이 진행되며, 주인공들의 입체적인 성격을 통해 선과 악의 애매한 경계와,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점점 늘어가는 싸이코패스들의 비정상적인 범죄와,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악을 옹호하는 인간들, 쉽없이 범인을 추격하지만 나름의 악을 갖고있는 형사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 씁쓸했습니다.


 

무라코시는 그런 댓글을 일일이 읽지는 않았지만, 글쓴이의 인성을 의심하게 되는 글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살인을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댓글을 다는 인간 자체가 예비 살인자인 것인가. 어찌 됐건 간에 그런 황폐한 윤리관이 지배하는 게시판 안에서 '손가락 수집가'라 자칭하는 범인은 서서히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었다.

 

-P.317-

3.

 

이야기는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됩니다. 잔혹하게 난도질된 시체는 검지손가락이 절단되어 있는데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연쇄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나서지만 피해자가 20대의 여성이라는것, 그리고 검지손가락이 잘려나가있다는것 외에는 증거를 찾을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사는 난항에 빠지고, 범인은 세상을 비웃듯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 다음 살인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대로 살인을 저지르지요.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는 연쇄살인마는 '손가락 수집가'라는 별칭까지 얻게됩니다. 그가 악이라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세력까지 생겨납니다.

 

4.

 

이를 수사하는 경찰들은 많지만 책속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인물은 '사이조'라는 인물입니다. 냉철하고 인텔리한 이미지로 젊은나이에 경위라는 직책까지 얻게된 그는 얼핏 완벽해 보입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딸. 하지만 그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존재합니다. 결혼 후 부인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으로 젊은 애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그는 결국 이것이 밝혀저 제복을 벗게 됩니다. 겉으로는 정의를 수호하는 완벽한 경찰상이지만 결국 그도 인간입니다. 인간에게 선과 악은 쉽게 나눌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선으로 보이던 것이 악일수도 있고, 악으로 보이던 것이 반대로 선일수도 있습니다. 그 종이 한장의 애매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사이조'입니다. 이외에 책에는 다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이조'를 물신양면으로 도와주던 톰, '사이조'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와타비키'등 여러 인물들은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입체적이고 생동감있는 인물상은 소설의 재미는 물론, 현실성도 더해줍니다.

 

 

각성제 있습니다, 총 팝니다, 여자를 강간해 주세요, 대신 죽일 사람 모집, 어떤 일이든 대신해 드립니다..... 이게 치안국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가 하고 눈을 의심하게 했디. 모든 게시물이 진짜일리는 없고 아마 대부분이 사기일 테지만, 그럼에도 그런 글이 눈에 닿기만 해도 그 추악함이 전염될 것 같았다. 경찰로서 이런 글들이 방치되어 있는 실태에 수치를 느꼈다.

 

-P.486-

4.

 

인간성에 대한 차가운 성찰, 모순된 사회와 개인의 폐부를 찌르는 깊숙한 시선, 무조건 미워할 수도 감싸 안을 수도 없는 양날의 인물들은 사회파 소설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책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국내에서도 볼수 있음직한 사건들입니다. 떄문에 책속의 이야기가 더욱 날카롭게 박힌걸지도 모르겠습니다.

 

5.

 

"빛이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듯 정의가 있는 곳에 악의가 숨어든다." 표지에 적힌 구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죄를 짓는 자. 악을 벌하기 위해 정의를 이용하는자!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당신은 사이조에 공감할 수 있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용서할 수 없는 / 할렌 코벤

 

 

웬디는 속으로만 간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사건 전부가 잘못됐다는 게 그 대답이었다. 제나 휠러의 말이 맞았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의 발단부터 뭔가 냄새를 풍겼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의 발단부터 웬디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직감, 혹은 배짱, 혹은 뭐라고 부르던 간에 그걸 믿었어야 했다. 갑자기 웬디는 자신이 선량한 사람을 살해되도록 도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P.140-


 

(3번부터 스포 有)

 

1.

 

미국 3대 미스터리 문학상으로 꼽히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작가이자 전 세계 40개국의 독자를 거느리고 5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지금도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학 거장. 할렌 코벤이라는 작가에 따라붙는 수식어들 입니다. 스릴러를 많이 읽진 않았지만 참 미국 소설의 '정석'으로 책을 쓴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인데요. 가독성도 뛰어나고, 인물과 사물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깁니다. 거기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2.

 

학창시절 질리도록 외웠던 영어사전과, 전공책의 좋지 않은 기억때문인지 두꺼운 책을 보면 지레 겁을 먹곤 합니다. 막상 읽어보면 왜 이렇게 일찍 끝나 버리는건지 아쉬움이 남는데 말이죠. 할렌코벤의 신작 <용서할 수 없는> 역시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상당히 두꺼운 책입니다. 책을 받고 한동안 손에 잡기가 힘들었는데 막상 읽고나니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정도로 짜릿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딱 부러지게 악당이나 천사라는 범주에 넣고 싶어 하지만, 백 퍼센트 정확하게 된 적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의 경계지역에서 사는 법이고, 솔직히 말해 그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극단적인 삶이 훨씬 더 편할 수도 있다.

 

-P.146-

 

3.

 

모두에게 사랑받는 십대 소녀 헤일리. 운동선수를 꿈꾸는 헤일리는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소녀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완벽한 그녀가 가출할 이유는 없습니다. 경찰은 물론 그녀의 이웃들이 열심히 헤일리를 찾지만 어디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녀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만 갑니다.

 

빈민가의 아이들을 돕는 청년자원봉사자 댄. 명문 대학을 나와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헌신하는 댄은 한마디로 '좋은사람'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급박한 메시지를 받고나서 그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상대가 말한 장소로 달려간 '댄'을 맞이한건 위험에 빠진 소녀가 아닌 카메라 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순간 '소아 성애자'로 낙인 찍혀 버립니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이미 방송에 얼굴이 퍼져나간 그에게 사람들은 돌을 던집니다.

 

수많은 범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운 스타 기자 웬디. 그녀는 소아성애자 '댄'을 메스컴에 내세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댄'이 무죄 판결을 받자 그녀의 삶은 영웅에서, 실직자로 바뀌게 됩니다. 실직자가 된 웬디. 그녀에게 한통의 전화가 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댄'인데요.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만나서 얘기할 것을 제안합니다. '댄'을 만나러 간 장소에서 웬디는 '댄'이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어쩌면 정말 '댄'이 결백할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조사하고 그 사건들의 연관성을 밝혀나갑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들을 증오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남을 증오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을 붙잡고 있어야 해요. 그러는 동안 정작 중요한 건 놓칠 거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P.412-

4.

 

마지막 장까지 반전이 있던 정말이지 스릴 만점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니 처음과는 달리 많은 상징들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보는 문고리는 참으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물입니다.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그 그림자까지 보긴 힘드니까요. 하지만 때때로 문고리는, 갈고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는 사물이 다른 각도에서 봤을땐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이는 사람에 대입해 보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착하게만 보였던 인물들이 악마로 변할수도 있는거고, 선의가 악의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습니까?'라는 카피가 책을 덮은찌릿하게 와 닿는 건 읽어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을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유리 고코로 / 누마타 마호카루

 

 

어린 시절의 의사는 분명 '요리도코로(안식처)'라고 했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감각적인 안식처' 또는 '인식의 안식처' 혹은 '마음의 안식처'라는 게 이 아이에게는 없다고. 안경을 치올리며 웅얼웅얼 얘기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참 이상하게도 잘못 들은 셈입니다.

 

-P.48-

(3번부터 스포 有)

 

1.

 

참으로 이상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분명 아름다운데, 영 찝찝하고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2.

 

올해 미스터리 독자들이 주목하는 작가 중 하나는 '누마타 마호카루'입니다. 비슷한 시기 두편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며 한국 팬들의 관심을 끌었죠. 그녀가 화제가 되는 이유중 하나는 독특한 삶의 이력과 그녀가 등단한 나이입니다. 주부였으며, 승려였고,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던 그녀의 첫 장편소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은 작가가 5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집필한 작품입니다. 또 다른 작품인 <유리 고코로>는 2011년 출간작이니 그녀의 나이 63세에 집필 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할머니 작가라고 촌스럽고, 진부한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작품은 소재면에서도 충격적이고, 문체또한 유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작품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누어 집니다. 제 친한 이웃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 견줄만한 책이라고 극찬한 반면, 책이 맞지 않았던 어떤이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최악이라 평했습니다.


 

 

미쓰코도 저도 인간으로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탁한 연못 밑바닥에 사는 추한 메기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때만큼은 수면에 떠올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햇살 속에서 세상의 바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만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P.109-

3.

 

애완동물샵을 운영하는 주인공 료스케. 이야기는 그에게 닥쳐온 불행과 함께 시작됩니다. 결혼을 앞둔 약혼녀 치에는 실종되고,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사망하지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료스케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갑니다. 병세가 짙은 아버지를 만나러 집에 들른 료스케. 그는 서재에서 우연히 이상한 것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검은 머리털이 담긴 낡은 핸드백과 여백이 없을 만큼 빽빽한 글자로 가득한 빛바랜 노트 네 권 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노트를 읽기 시작하는 료스케. 내용은 놀랍게도 살인을 고백하는 생생한 수기입니다. 료스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뒤바뀐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집에 돌아오니 모르는 여자가 어머니 행세를 하고 있던 기억. 수차례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했으나 집안의 어떤 누구도 료스케의 말을 두둔하지 않았고, 결국 료스케는 그 여자를 어머니를 받아들이입니다. 어릴적 뒤틀린 기억이라 생각하지만 ,수기의 내용과 자신의 어긋난 기억이 왠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와 당신의 생활은 도대체 어떻게 무너진 것일까? 그들의 나날도, 우리의 나날도, 언젠가 무너지리라는 운명위에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걸까?

 

-P.163-

4.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잘 읽힙니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흡사 '렌조 미키히코'의 <-정사>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체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담아낸다는 부분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수기속 인물의 모습은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 살인을 이해하기엔 아직 제 머리가 너무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사랑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호불호를 가르는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작품은 참 찝찝했습니다. 재미있었지만 글쎄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어서인지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습니다. 데뷔작인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도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인것 같던데. 서늘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여기서도 잘 나타날 것 같아 궁금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의 숨은 골목 - 어쩌면 만날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이동미 글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서울의 숨은 골목 / 이동미

 

 

 

 

 

어찌보면 세상은 그런 것이리라.

나홀로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외로워할 때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이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세상은 생각보다 외롭지 않다는 것.

 

-P.110-

1.

 

우연히 골목길에 관한 짧막한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정겨운 음악에 아련한 내용의 영상은 어린시절 향수를 자극했고, 사라져가는 골목길에 대한 미련으로 영상에 나오는 골목들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어릴적 제가 기억하는 고불고불 좁은 골목들이 이태원 언덕길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더군요. 그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좁고 불편했지만 아늑하고 정겨웠습니다. 제게 골목에 대한 추억은 많습니다. 술에취해 밤새 헤매이던 아현동의 높은 골목길. 연인과 함께 걷던 이화동 벽화 골목길.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길과 함께 자라왔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정이 있던 골목길과 함께 말입니다.



 

벽에 적힌 글귀 하나가 기막힌 안주가 된다.

비 오는 오늘이 좋아 한 잔. 함께 온 친구가 좋아 한 잔.

술맛이 좋아 한 잔. 벽에 적힌 글귀가 맘에 들어 한 잔.

멀리 있어 함께하지 못한 친구가 생각나 한 잔. 맘에 안드는 상사가 생각나 한 잔.

그렇게 잔을 부딪치며 피맛골의 밤은 깊어간다.

 

-P.119-

2.

 

종종 저처럼 골목에 대한 향수를 가진 친구를 만나면 밤새도록 걷습니다. 얼마전 종로의 좁다란 골목들을 지나 충무로의 인쇄 골목까지 걸은 날도 그런 좋은 벗과 함께였습니다. 책의 저자 역시 저와 비슷한 사고를 갖고 있어서인지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제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골목들도 많았고 작가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좋은 골목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3.

 

'서울'이라는 단어에서 어느순간 골목은 숨겨야 할 가난함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 역시 골목에 대해 찾아다니기 전에는 서울에 이렇게 많은 골목이 남아있는지 상상도 못했거든요. 골목길 안에는 우리들의 추억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 골목안에는 여전히 정이 있고, 쉬어갈수 있는 아늑함이 있지요. 하지만 이 골목들이 멸종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책속에 소개된 정든 추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편한게 과연 좋기만 한것일까요?


 

 

뻥 뜛린 서울의 대로를 지나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옥수동 계단 골목이 나온다.

수많은 집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로가 우리 몸의 대동맥이라면 골목은 실핏줄이다.

그리고 집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쯤이라 해두자. 세포 하나하나에 이르는 옥수동 골목 산책은 인체 탐험만큼이나 흥미롭다.

 

-P.174-

4.

 

책의 장점중 하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만든 미니 지도입니다. 골목 사이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터뷰를 나눈 미니 인터뷰의 글도 정겨웠구요. 단순히 책을 보는것보단, 책을보며 골목을 찾아 걸을 때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한 진짜 의미를 느낄 수 있을겁니다. 책을 덮은 지금 제 마음은 무척이나 두근거립니다. 날씨가 썩 좋지 않은 날. 골목 작은 전집에 앉아 그리운 사람과 막걸리 한잔과 추억을 나눌 생각에 말이죠.

 

골목에 대한 아련함이 남아있는분, 위에 첨부한 동영상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분들에게 추천하는책 <서울의 숨은 골목>이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