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유리 고코로 / 누마타 마호카루

 

 

어린 시절의 의사는 분명 '요리도코로(안식처)'라고 했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감각적인 안식처' 또는 '인식의 안식처' 혹은 '마음의 안식처'라는 게 이 아이에게는 없다고. 안경을 치올리며 웅얼웅얼 얘기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참 이상하게도 잘못 들은 셈입니다.

 

-P.48-

(3번부터 스포 有)

 

1.

 

참으로 이상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분명 아름다운데, 영 찝찝하고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2.

 

올해 미스터리 독자들이 주목하는 작가 중 하나는 '누마타 마호카루'입니다. 비슷한 시기 두편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며 한국 팬들의 관심을 끌었죠. 그녀가 화제가 되는 이유중 하나는 독특한 삶의 이력과 그녀가 등단한 나이입니다. 주부였으며, 승려였고,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던 그녀의 첫 장편소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은 작가가 5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집필한 작품입니다. 또 다른 작품인 <유리 고코로>는 2011년 출간작이니 그녀의 나이 63세에 집필 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할머니 작가라고 촌스럽고, 진부한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작품은 소재면에서도 충격적이고, 문체또한 유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작품은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누어 집니다. 제 친한 이웃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 견줄만한 책이라고 극찬한 반면, 책이 맞지 않았던 어떤이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최악이라 평했습니다.


 

 

미쓰코도 저도 인간으로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탁한 연못 밑바닥에 사는 추한 메기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때만큼은 수면에 떠올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햇살 속에서 세상의 바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만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P.109-

3.

 

애완동물샵을 운영하는 주인공 료스케. 이야기는 그에게 닥쳐온 불행과 함께 시작됩니다. 결혼을 앞둔 약혼녀 치에는 실종되고,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사망하지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료스케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갑니다. 병세가 짙은 아버지를 만나러 집에 들른 료스케. 그는 서재에서 우연히 이상한 것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검은 머리털이 담긴 낡은 핸드백과 여백이 없을 만큼 빽빽한 글자로 가득한 빛바랜 노트 네 권 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노트를 읽기 시작하는 료스케. 내용은 놀랍게도 살인을 고백하는 생생한 수기입니다. 료스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뒤바뀐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집에 돌아오니 모르는 여자가 어머니 행세를 하고 있던 기억. 수차례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했으나 집안의 어떤 누구도 료스케의 말을 두둔하지 않았고, 결국 료스케는 그 여자를 어머니를 받아들이입니다. 어릴적 뒤틀린 기억이라 생각하지만 ,수기의 내용과 자신의 어긋난 기억이 왠지 연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와 당신의 생활은 도대체 어떻게 무너진 것일까? 그들의 나날도, 우리의 나날도, 언젠가 무너지리라는 운명위에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걸까?

 

-P.163-

4.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잘 읽힙니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흡사 '렌조 미키히코'의 <-정사>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체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담아낸다는 부분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수기속 인물의 모습은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 살인을 이해하기엔 아직 제 머리가 너무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사랑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호불호를 가르는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작품은 참 찝찝했습니다. 재미있었지만 글쎄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어서인지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습니다. 데뷔작인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도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인것 같던데. 서늘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여기서도 잘 나타날 것 같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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