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진실의 빛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후회와 진실의 빛 / 누쿠이 도쿠로

 

자기 자식을 죽인 부모, 어른 못지않은 잔인성을 발휘하여 친구를 죽인 아이, 극히 사소한 이유로 느닷없이 사람을 찔러 죽인 젊은이, 픽션 세계가 그대로 현실화된 듯한 엽기적인 사건.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에 이미 익숙해져서 누구 하나가 죽은 정도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시대. 그에게 이름이 붙여질 까닭이 없었다.

 

-P.130-

 

(스포 有)

 

1.

 

사회파 미스터리답게 읽고난 뒤 뭔가를 마구마구 생각나게 하는 책이였습니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사건 속에서 선과 악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작년에 읽은 책중 최고가 <화차>였다면, 올해 읽은 책중 최고는 <후회와 진실의 빛>이였습니다.

 

2.

 

<통곡>과, <우행록>을 통해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은 누쿠이 도쿠로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공히 갖춘 작품에 수여하는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한 작품은 <후회와 진실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일본소설답게 담백한 문체로 마지막 짜릿한 반전까지 쉼없이 사건이 진행되며, 주인공들의 입체적인 성격을 통해 선과 악의 애매한 경계와,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점점 늘어가는 싸이코패스들의 비정상적인 범죄와,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그런 악을 옹호하는 인간들, 쉽없이 범인을 추격하지만 나름의 악을 갖고있는 형사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 씁쓸했습니다.


 

무라코시는 그런 댓글을 일일이 읽지는 않았지만, 글쓴이의 인성을 의심하게 되는 글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살인을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댓글을 다는 인간 자체가 예비 살인자인 것인가. 어찌 됐건 간에 그런 황폐한 윤리관이 지배하는 게시판 안에서 '손가락 수집가'라 자칭하는 범인은 서서히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었다.

 

-P.317-

3.

 

이야기는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됩니다. 잔혹하게 난도질된 시체는 검지손가락이 절단되어 있는데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연쇄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나서지만 피해자가 20대의 여성이라는것, 그리고 검지손가락이 잘려나가있다는것 외에는 증거를 찾을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사는 난항에 빠지고, 범인은 세상을 비웃듯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 다음 살인을 예고합니다. 그리고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대로 살인을 저지르지요.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는 연쇄살인마는 '손가락 수집가'라는 별칭까지 얻게됩니다. 그가 악이라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세력까지 생겨납니다.

 

4.

 

이를 수사하는 경찰들은 많지만 책속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인물은 '사이조'라는 인물입니다. 냉철하고 인텔리한 이미지로 젊은나이에 경위라는 직책까지 얻게된 그는 얼핏 완벽해 보입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딸. 하지만 그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존재합니다. 결혼 후 부인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으로 젊은 애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그는 결국 이것이 밝혀저 제복을 벗게 됩니다. 겉으로는 정의를 수호하는 완벽한 경찰상이지만 결국 그도 인간입니다. 인간에게 선과 악은 쉽게 나눌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선으로 보이던 것이 악일수도 있고, 악으로 보이던 것이 반대로 선일수도 있습니다. 그 종이 한장의 애매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사이조'입니다. 이외에 책에는 다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이조'를 물신양면으로 도와주던 톰, '사이조'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와타비키'등 여러 인물들은 평면적이지 않습니다. 입체적이고 생동감있는 인물상은 소설의 재미는 물론, 현실성도 더해줍니다.

 

 

각성제 있습니다, 총 팝니다, 여자를 강간해 주세요, 대신 죽일 사람 모집, 어떤 일이든 대신해 드립니다..... 이게 치안국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가 하고 눈을 의심하게 했디. 모든 게시물이 진짜일리는 없고 아마 대부분이 사기일 테지만, 그럼에도 그런 글이 눈에 닿기만 해도 그 추악함이 전염될 것 같았다. 경찰로서 이런 글들이 방치되어 있는 실태에 수치를 느꼈다.

 

-P.486-

4.

 

인간성에 대한 차가운 성찰, 모순된 사회와 개인의 폐부를 찌르는 깊숙한 시선, 무조건 미워할 수도 감싸 안을 수도 없는 양날의 인물들은 사회파 소설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책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국내에서도 볼수 있음직한 사건들입니다. 떄문에 책속의 이야기가 더욱 날카롭게 박힌걸지도 모르겠습니다.

 

5.

 

"빛이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듯 정의가 있는 곳에 악의가 숨어든다." 표지에 적힌 구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죄를 짓는 자. 악을 벌하기 위해 정의를 이용하는자!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당신은 사이조에 공감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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