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아카가와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 아카가와 지로

 

 

그런데..... 이렇게 아내를 믿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무리 악처라고 해도 결혼했을 때는 서로 행복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선의를 순수하게 믿어주는 것이 남편이라는 존재 아닐까.

 

-P.51-

 

1.

 

결혼한 남자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결혼 전 생각하는 모든 로망은 결혼하고 정확히 일주일 뒤 산산조각 난다는 충격적인 발언에 미혼인 저와 친구들은 괜한 걱정을 하며 결혼을 할것인가 말것인가의 기로에서 한참을 고민했었습니다. 뭐 그날의 결론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어쨌든 후회하는게 결혼이라면 기왕이면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로 귀결되었습니다.

 

2.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은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입니다. 작가의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기에 도서전에서 고민없이 책을 선택했는데요. 역시나 경쾌하면서 즐거운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니시코지 도시카즈'라는 필명으로 공동창작을 하고 있는 네명의 사내들입니다. 기자 출신의 정보수집담당 가게야마,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고지, 시인 출신의 가가와, 그리고 신인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한 소설가 니시모토 등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은 각각의 특징에 맞는 문체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때문에 하나의 작품 속에서 네편의 다른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요.


 

 

히토미도 처음에는 손만 잡아도 볼을 붉히는 순진한 처녀였다. 결혼 전에는 키스도 안 된다며 고집스럽게 그의 유혹을 거절했을 정도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그 재미를 알고 나더니 180도로 변해서 거의 밤이면 밤마다 먼저 달려들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고지도 자못 유쾌하게 히토미의 요구에 신나게 응해주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 게다가 35세와 22세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P.232-

 

3.

 

하나의 필명으로 소설을 공동 집필하는 네 명의 남자들. 각각의 사정으로 아내에게 시달리는 이들이 선택한 신작 테마는 '아내를 죽이는 법'입니다. 니시모토는 돈만 밝히는 아내를 자살로 내몰기 위해 아내가 자식처럼 아끼는 조카를 이용해 대출을 받게 하는 소설 초안을 작성하고, 고지는 비오는 날 자동차로 역에 마중을 나오는 아내를 불량배들을 통해 겁탈하게 하여 밤이고 낮이고 침대로 끌어들이는 버릇을 고친다는 내용의 소설을 씁니다. 한술 더 떠 가게야마는 여행을 떠난 아내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고 애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끔찍한 이야기를 초안으로 내놓지요. 장난스럽게 시작한 일지지만 놀랍게도 소설 초안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꿈과 현실은 뒤죽박죽이 되고,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저 아가씨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본인도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그녀의 말은 니시모토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P.263-

 

4.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더욱 단점이 뚜렷하게 부각되 보이곤 합니다. 결혼생활에서 서로에게 가장 실망할때가 양치할때 내는 헛구역질 소리라는 내용의 기사는 이런 주장을 더욱 타당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예일겁니다. 사소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네명의 남자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적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소한 이유들로 결혼이라는 생활에 종지부를 찍곤 합니다. 책은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남자들만의 문제일까요. 남자들의 어긋난 판타지를 너무 극단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만 가볍게 읽기에는 재밌는 책이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