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렘스 롯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11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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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스 롯 / 스티븐 킹

 

 

 

 

예루살렘스 롯은 컴벌랜드 동쪽, 포클랜드 시에서 약 30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 마을은 미국 역사상 황폐해져서 사라져 버린 첫 번째 마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지막도 아닐 테지만 아마도 가장 기이한 마을에 속할 것이다. 유령 마을은 미국 남서부에 흔히 있는데, 거기에서는 풍부한 금과 은 광맥 주변에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마을이 생겨 났다가 광석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했으며 텅 빈 점포, 호텔, 술집들이 사막의 정적 속에서 공허하게 썩어 가고 있었다.

 

-살렘스롯 상권 P.18-

 

1.

 

 최근 화제에 올랐던 신간 중 '시귀'가 있습니다. 변소누나의 끊임없는 격찬과 빵빵한 이벤트가 말초신경을 자극했지요. 그럼에도 쉬이 지갑을 열지 못한건 신간이라는 그것도 세트라는 부담감 때문이였습니다. 하 여름에는 피빠는 얘기가 최고인데. 고민고민 하던 저에게 네이버는 대안책으로 스티븐킹의 '살렘스 롯'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오노 후유미'의 <시귀>는 '스티븐킹의' <살렘스 롯>을 오마주한 책입니다. 동양과 서양 그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닮아 있다고 하더라구요.

 

2.

 

 인터넷 헌책방에서 주문을 했는데 배송이 느린데다 책 상태도 좋지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는데 표지를 벗겨보니 검은 곰팡이로 가득했고, 심지어 가운데 살짝 빈공간에는 거미줄이 쳐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악스러웠던건 거미줄 사이에 말라 비틀어진 벌레였는데요. 장갑끼고 깨끗하게 닦아냈습니다. 충격이 커서였을까요. 책을 다 읽고나서도 가장 소름돋았던건 바스러진 벌레의 형상과 촉감이였습니다. 으.....



 

저택은 흡사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앞쪽으로 기울어진 듯이 보였다.

 

...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유치하고 환상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 그저 널빤지와 경첩과 못과 창턱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집에 불과했다. 갈라진 벽틈마다 집이 내뿜는 하얀 숨결이 나오고 있다고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다. 귀신이라고? 그는 귀신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어쨌든 베트남 전에 참전한 뒤로는 그랬다.

 

-살렘스롯 상권 P.171-

3.

 

 책은 전형적인 드라큘라의 성질을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티븐킹의 장편답게 묘사들이 굉장히 디테일 하다는것이 특징인데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세세한 묘사들이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기도 하겠지만, 짜증이 나있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디테일한 묘사는 지루함을 불러왔습니다. 그렇지만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상권에서 지나치게 배경의 도입이 길었다면, 하권에서는 막판 스파트로 정신없이 사건이 진행됩니다. 앞부분만 잘 극복한다면 뒷부분에서는 분명 흥미가 동하실 겁니다.

 

4.

 

 메인주 살렘스 롯. 이야기는 작가 벤자민 미어스가 그곳으로 이사를 오며 시작됩니다. 어릴적 잊지못할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벤. 그 일은 마스튼 저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쳐버린 남자가 부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곳. 어린시절의 객기로 찾아간 저택에서 그는 끔찍한 관경을 목격합니다. 이후 어른이 된 그는 그 저택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저주받은 저택은 이미 다른사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발로우와 그의 대리인 스트레이커가 그곳에 골동품 가게를 차린겁니다. 마을의 분위기는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그 평화는 깨져버립니다.

 

 어느날 친구네 집에 놀러가던 형제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형은 곧 돌아왔지만 병으로 죽고, 동생은 계속해서 행방불명입니다. 아버지는 관 속의 아들을 보고 오열합니다. 하지만 밤이 되자 죽은 아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서 말이죠. 그 후로 마을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갑니다. 그리고 점점 이상하게 변해갑니다.


 

 

"캄보디아 폭격이나 아일랜드 및 중동전쟁, 경찰 살해, 빈민가 폭동 같은 무수한 소악들이 매일같이 성가신 각다귀 떼처럼 온 세상을 활개치고 있소. 교회는 주술사의 구태를 벗고 사회적으로 좀 더 적극적이고 의식을 가진 실체로 재부상하는 과정에 있소. 따라서 고해실이라기보다는 도심의 범죄 박멸 센터 역할을 떠맡는 셈이오. 영송체송은 시민권 운동과 도시 재배발의 제2 바이올린이고 말이오. 이제 교회는 세상 깊숙이 두 발을 담근거요."

"마녀나 몽마, 흡혈귀 따위가 없고 아동구타, 근친상간, 환경 침해만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거죠?"

 

-살렘스롯 하P.178-

5.

 

 뻔할수 있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은 타고났습니다. 선악의 대립과, 한치도 눈을 뗄 수 없는 스릴 만점의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드라큘라 이야기와는 닮은듯 다릅니다. 약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킹만이 보여줄수 있는 묘사력 때문일겁니다.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야기는 한여름 밤을 서늘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귀>역시 평이 좋던데 <살렘스 롯>과는 어떤점이 닮아 있는지, 또 어떤점이 다른지 벌써부터 궁금해 집니다. 아마 조만간 시귀를 질렀다는 포스팅이 올라올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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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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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그녀는 집요하리만치 소키치에게 몸을 들이댔다. 여태껏 그의 기억에 없던 일이라, 그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는 흥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두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공통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어두움이 한층 도취를 부추겼다. 그리고 절정에 도달했을 때, 오우메는 소키치에게 어떤 일의 실행을 요구했다. 소키치는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P.116-

1.

 

 리뷰를 쓰며 자주 언급했지만서도 저는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라 합니다. 왠만하면 편독하지 않고 골고루 읽으려 노력하지만, 대부분 마음이 가는책들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들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는 사건이나 트릭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한 현실을 주로 다룹니다. 얼마전 개봉한 화차가 대표적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지요. 이런 사회파 소설의 원조격이라 할수 있는 작가가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인데요. 이번에 읽은 단편집 <잠복>은 그가 쓴 최초의 추리소설 <잠복>을 포함한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파도 아냐. 20만 시민의 편이지. 시정 악과 싸워온 신념의 남자야. 시장, 보좌, 시의원, 공무원들이 모두 나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어. 그래도 상관없어. 혼자라도 할 거니까. 하필 병으로 자리보전하고 있어서 유감이지만, 놈들은 좋아하겠지. 젠장.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지. 나 대신 우리 시의 시정 악을 철저하게 부수어주게. 누구 눈치를 볼 것도 없어. 광고 한 줄도 구걸하지 않아.

 

-P.144-

2.

 

 자극적인 현대의 이야기들에 비하면, <잠복>에 실린 이야기들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겁니다. 기괴하게 살해된 시체도 없고, 짜릿한 반전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편 한편의 단편들을 읽고나면 마음 한켠에 짠한 무언가가 남아 있습니다. 인간군상을 다채롭게 표현하며 무거운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작품은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 소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표제작 <잠복>이였는데요. 한 여인을 관망하는 형사의 시각에 절로 마음이 동요하여, 마지막 한문장이 끝까지 찝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스포가 될까 줄거리 부분은 생략하려 했는데 출판사 책소개 부분에 짧막한 줄거리가 나와있어 첨부해 보겠습니다.

 

얼굴
한 극단의 단원으로 무명 배우인 이노 료키치는 이시이 감독의 신작 영화 <봄눈>에 캐스팅이 된다. 영화배우로 성공하는 것을 꿈꾸는 료키치는 다가온 행운에 감격하지만, 동시에 그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인다. 결국 료키치의 영화 데뷔는 성공하지만, 온갖 찬사에도 그의 불안은 계속 커지기만 한다. 그의 불안은 이시오카 사다사부로와 야마다 미야코에 관련된 9년 전 기억 때문이다.

잠복
도쿄의 어느 저택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당시에는 단서가 잡히지 않아서 수사가 난항을 겪다가 불심검문 중에 우연히 범인인 야마다가 채포된다. 야마다는 강도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살인은 부인한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것은 공범인 이시이 규이치라는 남자라고 진술한다.
사건을 담당하는 경시청 조사 1과의 형사 유키는 야마다로부터 이시이가 ‘옛 연인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정보를 얻는다. 다른 형사들은 이 말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지만, 유키는 이시이가 분명히 옛 연인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여자의 집 부근에서 잠복근무를 시작한다.
「잠복」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으로 세이초가 추리소설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게 된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집필 의도에 대해서 저자는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의 눈에 비친 한 여자의 처지를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귀축
인쇄소의 말단 직원이었던 다케나카 소키치는 고생 끝에 겨우 인쇄소의 사장이 된다. 여우 같은 얼굴을 한 그의 부인 오우메와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소키치는 요릿집을 드나들게 되고 그곳의 접대부인 기쿠요에게 반한다. 기쿠요를 책임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 소키치는 그녀와 관계를 맺고 3명의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그 뒤로 찾아온 불운으로 소키치의 인쇄소는 영락하게 되고, 소키치에게서 더 이상 생활비를 받지 못하게 된 기쿠요는 3명의 아이를 데리고 소키치의 집을 찾아온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오우메는 기쿠요와 그 아이들에게 가혹하게 처사하고, 그런 부인 앞에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소키치에게 화가 난 기쿠요는 3명의 아이들을 소키치의 집에 두고 떠나버린다. 결국 버림받은 아이들은 오우메의 지시 아래서 한 명 한 명씩 처분된다.

투영
상사와의 불화로 도쿄의 신문사를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간 다무라 다이치는 그곳의 영세한 지역 신문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치는 시의 토목과장인 미나미의 익사 사건과 맞닥뜨리고, 사건을 조사하는 사이에 그는 점점 미나미의 죽음이 자살이나 추락사가 아니라 타살이라는 심증을 갖는다. 결국 다이치는 미나미를 죽음으로 빠뜨린 ‘트릭’을 발견하고, 그 트릭 속에 숨겨져 있는 거물급 인사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목소리
신문사에서 전화 교환원을 하고 있는 다카하시 도모코는 사회부의 기자의 부탁을 받고 아카보시라는 성을 가진 학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굵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한 사람은 ‘잘못 걸었다’며 신경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도모코는 실수로 아카보시 성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았고, 잘못 건 곳의 주소를 찾아보았는데 그곳은 세타가야의 저택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석간을 본 도모코는 세타가야에 사는 아카보시라는 사람의 저택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읽고 경악한다. 도모코는 경찰에 출두해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진술하지만 범인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도모코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무사시노에 살고 있는 작가 스기모토 류지는 소설 「야도전기」를 고신신문이라는 지방신문에 연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 사는 시오타 요시코라는 여성으로부터 ‘「야도전기」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문을 구독 하겠다’는 취지의 엽서를 받는다. 스기모토 류지는 감사의 뜻으로 요시코에게 답신을 보낸다. 그런데 신청 뒤 불과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소설이 재미없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구독을 하지 않겠다’는 엽서가 도착한다. 기분이 나빠진 스기모토는 시오타 요시코의 마음이 변하게 된 이유를 생각하다가 그녀가 신문을 구독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 년 반만 기다려
생명보험 설계사로 일하는 스무라 사토코는 남편 요키치를 죽인 죄로 체포된다. 하지만 이전부터 계속된 요키치의 폭행과 나태한 행태가 매체에 보도되자, 세상은 사토코에게 동정을 보낸다. 여성 평론가 다카모리 다키코는 ‘일본 가정에서의 남편의 횡포’와 ‘일본 가족제도의 악습’을 비판하고, 평론가 동료들을 동원해서 감형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행동에 나선다. 결국 다카모리의 지원으로 사토코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사회정의가 이루어졌음에 만족하는 다카모리의 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난다.

카르네아데스의 널
역사학과의 교수 구무라 다케지는 종전 이후로 진보적 유물사관을 전개해서 일본 교직원 조합으로부터 갈채를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담당하게 되면서 올린 막대한 수입으로 집을 지을 정도다. 구무라는 강연 여행 중에, 이전의 은사인 오쓰루 게이노스케를 찾아가기로 한다. 오쓰루는 전쟁 중 국가적 역사관을 강의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구무라를 만난 오쓰루는 그에게 자신의 대학 복귀를 위해 힘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예전 은사의 비굴한 모습에 묘한 자부심이 동한 구무라는 오쓰루의 요구를 들어준다. 결국 대학에 복귀한 오쓰루는 진보적 학자로 급속히 변모한다. 구무라는 풍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상관하지 않는 옛 인사를 차갑게 방관하며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쓰루가 참고서를 쓰게 되자 오쓰루는 점점 구무라에게 귀찮은 존재가 된다. 시대가 변해서 문부성이 좌익 편향 교과서를 불합격시키자, 구무라는 진보학자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우익으로 전향하려고 했으나, 마침 그때 오쓰루가 가장 먼저 전향을 선언한다. 교과서와 참고서 집필로 얻은 풍족한 수입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한 구무라는 오쓰루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출처 : 교보문고)


 

 

연필을 끼워둔 곳은 구체적으로는 '카르네아데스의 널'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바다에서 조난당해서 널 하나에 매달려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빠뜨리고 자기만 목숨을 건진다는 비유이다. 피고는 왜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을까?

 

-P.385-

3.

 

 단편집과 같이 쉽게 읽히는 책들은 대체로 쉽게 잊혀집니다. 방금 전에 재밌다고 읽었는데 책을 덮는순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단편집이 가진 큰 약점일텐데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잠복>은 쉽게 읽힘에도 그 여운이 한동안 떠나지 않습니다. 맛이좋은 차를 입에 머금고 있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대부분의 이야기가 씁쓸한 결말을 안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희극보단, 비극을 더 잘 기억하곤 하니까요.

 

작가의 책을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는데요.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데 감탄했습니다. 단편과는 다른 장편의 소설들은 어떤 느낌일지 무척이나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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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시기행 - 역사, 건축, 예술, 음악이 있는 상쾌한 이탈리아 문화산책
정태남 글.사진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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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시기행 / 정태남

 

 

사실 이탈리아는 역사의 나라이며, 예술과 건축과 디자인의 나라이며, 음악의 나라이며, 종교의 나라이며, 와인과 요리의 나라이며, 강렬한 태양의 나라이며, 경치도 매우 아름다운 낭만의 나라입니다. 이와 같이 이탈리아는 여러모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면서 전국 구석구석을 수도 없이 여행을 해왔고 또 각계각층의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들과 교류해왔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탈리아를 제대로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를 아직 주저하게 됩니다. 왜냐면 이탈리아는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지고, 또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지는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데다가 사람들의 기질과 풍경도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국가라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도시들이 연합된 ‘United Cities of Italy’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함을 모르고서는 이탈리아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P.5-

1.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관용어지만, 특히 여행을 할 때 명심해야 될 말입니다. 항상 여행지가 정해지면 그곳의 문화에 관련된 책들을 사고 공부를 합니다. 여행지의 역사, 건축, 예술, 음악 등은 그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읽고나면 안정적인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이란 과정은 낯선 문화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낯선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나의 것들과 비교하려면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 안목의 힘을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기초적인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비어있는 사람의 여행은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느끼는 감정이 달라질 겁니다. 때문에 여행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공부하는 것 입니다.

 

2.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떠올렸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피자와, 축구 그리고 산타루치아 정도였습니다. 유럽권의 국가보다는 인도나 동남아 같은 제 3국들이 관심국가였던지라 '이탈리아'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전 피사의 사탑이 프랑스에 있는줄 알았답니다. 뭐 어쨌거나 지금은 제대로 알고 있으니 된거죠 뭐. <이탈리아 도시기행>은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여행해야되는데 시간은 없을때 한권의 책으로 이탈리아에 관해 충분한 지식을 여헹자의 마음과 가슴에 쌓아줄 무척이나 상냥한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베로나가 지니고 있는 진짜 무대는 '베로나'라는 도시 자체일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의 유적과 중세의 탑, 유서 깊은 다리, 종탑, 아치, 성벽, 성곽, 궁전, 광장,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저택과 아디제 강변의 탁 트인 공간, 도시 주변의 부드러운 푸른 언덕, 사랑의 낙서로 가득 채워진 줄리엣의 집과 그녀의 무덤이 있는 수도원 등 이 모든 것이 커다란 무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P.65-

3.

 

 이탈리아에서 건축업을 하는 작가의 이력은 무척이나 특이합니다. 국내 최고라 하는 서울대 졸업후, 유럽에 대한 동경과 열망으로 30년 이상을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재건축에 대한 법률이 엄격합니다. 뭐든지 쉽게 밀어버리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유럽의 국가들은 증축을 하는데 있어서도 기존의 문화를 최대한 보존하는 식으로 개발을 한다고 하네요. 이토록 자기네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유럽사람들. 그중에서도 유럽의 중심이라 할수있는 이탈리아는 문화의 보고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예술가들이 태어났고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새로웠습니다.

 

4.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북부이탈리아, 중부이탈리아, 남부이탈리아 순으로 말이죠. 사실 경제적인 성장을 이룬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과, 실업률이 높고 낙후되어 있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남부 이탈리아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 일각에서는,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인문학에 소양이 깊은 것에 대해 일자리가 없으니 인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아니냐면서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네요. 이렇듯 북부와 남부는 같은 나라임에도, 다른 나라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는 책속에서 각기 다른 느낌의 이탈리아 18개 도시를 소개합니다. 각각의 도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을 뽐내며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데요. 음악, 미술, 건축 등 여러 방면에서 훑어보는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있는데 서양 역사에 관해서는 기초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유럽의 역사를 다룬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나서 보면 더욱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산타 루치아'나 '오 설레 미오'등과 같은 나폴리의 유명한 노래도 서민들의 노래이다. 다시 말해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들이 작곡한 것으로 음악적으로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핏짜처럼 전 세계 모든 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핏짜와 나폴리 민유가 세계화 된 것은 전 세계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담순함'에 비결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P.308-

 

5.

 

 이탈리아는 제게 낯설기만 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흔히 접하고 있는 문화와 가까이는 식습관까지 많은것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여행 에세이인줄 알았는데, 에세이보다는 인문 서적에 가깝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울 수 있지만 작가의 위트넘치는(?) 필력과, 간결한 문장은 인문학적 소양을 퐁퐁 넓혀줍니다. 대학생의 로망 유럽여행을 가게 될 때를 대비해 꼼꼼히 읽어 두었습니다. 매력이 샘솟는 이탈리아 도시 기행을 대비해 다시 한번 꺼내읽어보고 싶은 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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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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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다. 현재 콩고에서는 '제 1차 아프리카 대전'이라 불리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사망자 수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많은 400만 명에 이르지. 정전 협정이 여러 차례 무너졌고 지금도 전투가 끝날 기미는 없다."

 

"이것은 실제 이야기다. 신물이나 텔레비전은 보도하지 않는데, 말하자면 보도 차별이다. 선진국 보도 기관은 아프리카에서 사람이 몇 사람 죽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현지에서 빈발하는 대학살보다 고릴라 일곱마리 죽은 사건이 더 크게 보도되는 형편이다. 뭐 확실히 아프리카인은 멸종 위기종이 아니니까."

 

-P.55-

 

1.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 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과연 제가 1/10 이라도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구요. 이미 너무 많은 분들이 리뷰를 작성하셨고,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더 상세히 남겨주셨습니다. 이웃인 훙치님은 '내가 꿈을 꾸었구나'라는 문장을 서평 제목으로 인용하며 완벽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보았다는 감탄사를 내뱉었고, 크롱님 역시 '인간은 무엇이든 제노사이드 한다'는 제목으로 '제노사이드'라는 단어와 인간의 잔혹함과 같은 주제의식에 대해 함축적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였던 것은 서늬님의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이라는 제목이였습니다. 맞습니다. 이 소설은 참으로 정의내리기 힘든 소설입니다. 방대한 양의 전문지식을 일반인들이 자연스레 소화시켜 나가며 즐겁게 읽을수 있게 만든것도 대단하며, 그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철학적인 질문을 슬며시 던져놓은 것도 놀라웠습니다.

 

2.

 

 소설에 있어 배경이 주는 중요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겁니다. 배경은 인물, 사건과 함께 이야기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니까요. 하지만 이 배경을 자연스레 이야기 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나열된 지식들처럼 1번2번 .... 이런식으로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독자에게 인식시켜야 하니까요. 전작인 <13계단>이나 <그레이브 디거>에서도 작가인 '다카노 가즈아키'는 배경과 사건을 어색함 없이 이야기와 잘 조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노사이드>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전형적인 문과 체질인 저에게는 수학과, 혹은 과학과 관련된 복잡한 이야기는 두드러기를 불러일으키는 과민적 요소입니다. 하지만 책은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 흐름에 대해 이해하게 되지요. 그것에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는것이 정말로 신기했습니다.(물론 작가도 사람인지라 전혀 어색함이 없는건 아닙니다..)



 

 

자신이 사는 좁은 마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열등하다고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시나징'과 '조센징'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사람들이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변변치 못한 머리인 것에 중학생이었던 겐토는 그만 질려 버렸다.

 

-P.170-

 

3.

 

 이 책을 이야기 하려면 먼저 '제노사이드'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입니다. '제노사이드'는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창피하게도 이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종족은 인간입니다.

 

 세계를 움직인다는 백악관에 새로운 정보가 전달됩니다.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신 인류가 아프리카 콩고에 등장했다는 정보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번즈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즉각척인 처리를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신 인류를 없애기 위해 네 명의 용병이 현장으로 투입됩니다. 하지만 상대는 생각외의 외모를 지닌 어린아이 입니다. 신인류 보호하는 남자는 자신을 피어스라 소개하며 윗선의 비밀스럽고도 잔혹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학살을 피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나갑니다.

 

 여기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범한 약대생 겐토. 아버지의 의문스러운 죽음 이후 메일 한 통을 받게 됩니다. 발신인은 겐토의 아버지인데요. 그는 겐토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부탁하며 조만간 찾으러 가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메일을 따라가게 되면서 겐토는 자신을 쫓는 위협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있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알게됩니다.

 

 책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완벽하게 만들어 냅니다. 201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두가지의 이야기가 날줄과 씨줄처럼 빈틈없이 맞춰지는 스릴과 궁금증에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현 정권뿐만이 아냐. 나는 권력자가 싫네. 그놈들은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도가 지나쳐. 더 나아가 나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싫다네."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P.472-

4.

 

 이야기는 무척이나 스릴있게 진행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잔혹함이 너무나 무거워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놨습니다. 왜 그리도 인간은 잔혹한 걸까요. 학교에서 문화의 상대성을 가르치면서 왜 정작 본인들은 누군가를 차별하고, 국제적인 문제들을 나몰라라 하는걸까요. 어쩌면 내 자신이 현실을 변화시키기엔 너무나 나약하기에, 그런 어려운 문제들을 포기하고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소설속 분위기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약을 만드는 겐토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누군가를 구하고자 한 개럿도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였습니다. '제노사이드'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마 작가가 작품속에서 언급한 한국인의 '정(情)'과 같은 유대감일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것. 그 숭고한 정신이 어쩌면 인간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하나의 희망일 것입니다.

 

 안읽어보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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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호러픽션 호러픽션 1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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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픽션 / 양국일, 양국명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공포는 끊임없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공포라는 장르로 구축할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으며, 공포라는 장르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도 무한할 것이다. 내가 공포를 좋아하고, 공포소설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5-

 

1.

 

 여름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수박, 모기, 피서,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 끈적하고 더운 날씨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하고 짜릿한 무언가를 갈망하게 만든다. 그런면에서 무서운 이야기는 여름과 궁합이 무척이나 잘 맞는다. 듣는순간의 공포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속에서 문뜩 생각나게 하는 그 오싹한 기분은 짜릿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어릴적 여름방학때면 시골로 향하곤 했다. 차려주신 수박과 차가운 미숫가루를 배부르게 먹고나면 남은 코스는 입담 좋기로 소문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들려주시 귀신들과 도깨비들의 이야기는 대표적인 권선징악의 패턴이였고 어린아이에게 하지말아야할 금기사항에 대한 확실한 교육방침이였다. 덕분에 성인이 된 지금도 양심에 어긋나는 짓들을 할때마다 문뜩문뜩 할머니의 이야기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이처럼 무서운 이야기는 단순한 쾌락 위주의 역할만이 아닌 교시적인 역할도 함께한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능이 교시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이라고 할때 '무서운 이야기'는 이 둘을 충족시키는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무서운 이야기'는 어릴적 할머니의 이야기와는 달리 교시적인 기능을 상실한채 단순한 쾌락만을 추구한다. 싸이코 패스의 이유없는 살인과, 단순한 고어는 '무서운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어른'은 될 수 없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모든 어른은 사실 덩치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른인 척 가식과 위선을 떨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비겁하고 나약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나 역시 그러했다. 겉으로는 어른인 척 폼을 잡아보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즉각 어린아이로 돌변해서 커다란 외투 속에 몸을 숨겨버렸다.

 

-P.167

2.

 

 <호러픽션>은 말하자면 이 두가지 부류의 이야기가 함께 섞여있는 단편집이다. 이유없는 살인을 하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도 나오며,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오는 끔찍한 결말도 이야기한다. 단편집의 특성상 모든 이야기가 좋을수는 없지만 이 두가지 틀의 이야기가 함께 섞여있다는 것은. 그것도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것은 참으로 재밌게 읽을 수있는 하나의 이유였다.

 

 양국일, 양국명 형제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완벽하진 않지만 만족스러웠다.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너무 뻔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생각외의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다.

 

3.

 

 첫번째 작품인 <침입자들>은 장편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바이러스를 통해 다른 형태로 변하는 인간과, 그 형태로 변화하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한참 물이 올랐을때 갑자기 끝나버린듯한 기분이였다. 좀더 깔끔한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였다.

 

 두번째 작품인 <자살 주식회사>는 '스티븐 킹' 형님의 단편 <금연 주식회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였다. 자살을 하려던 주인공을 살해하려는 사람들. 주변 모두가 적으로 보이는 상황설정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지막 한문장이 실소로 다가왔던 이야기였다.

 

 세번째 작품인 <괴물이 있다>는 진짜 괴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 아버지의 폭력안에서 소녀는 환영을 본다. 괴물이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환각. 그 환각에 이상한 낌새를 차린 소녀의 담임은 그녀의 가정을 방문한다.

 

 네번째 작품인 <만월의 살인귀>는 누이의 죽음에 복수를 결심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만연한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긴 이야기였다. 생각외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다섯번째 작품인 <사자와의 하룻밤>은 할머니의 장례식 꿈과 현실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정말 무서운것은 인간이구나 라는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였다.

 

 여섯번째 작품인 <꿈속의 그녀>는 뭐랄까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였다. 예지몽을 꾸는 남자와 그녀를 좋아하는 마녀라 불리는 여자 두 사람의 운명의 고리가 현실과는 너무나 이질적이였기에 와닿지 않았다.

 

 일곱번째 작품인 <붉은장미>는 남자의 순정을 짓밞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얼핏 동화와 같은 형식을 취했기에 붉은 장미의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여덟번째 작품인 <묵도의 밤>은 상당히 고어한 이야기였다. 살가죽을 벗져내고, 온몸에 못을박고 비급영화와 같은 소재에 마지막 반전이 주는 임팩트는 상당히 강렬했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이유로는 절대 공감할 수 없었던 이야기.

 

 아홉번째 작품인 <향전>은 열편의 단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조선 말기의 향권을 둘러싼 구향과 신향의 첨예한 대립. 그 대립의 희생자들이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설정의 이야기인데, 위에 언급한 '할머니의 이야기'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였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오는 비극적인 결말이 시대에 상관없이 나타난다는데 안타까움이 들었다.

 

 마지막 이야기 <유령의 집에서>는 흔히 볼수있는 괴담류의 이야기였다. MT를간 대학생들이 흉가체험도중 겪는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김빠지는 반전이 아쉬웠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이성을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인간을 짐승으로 탈바꿈시키는 물욕과 권세욕은 아무에게나 쉬이 찾아드는 법이다. 누구든 민득재가 될 수 있고, 누구든 봉학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찾아온 욕심을 다스릴 줄 알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봉학 같은 관리는 다시 나타날 것이고, 민득재의 비극도 반복될 것이며, 향전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95-

4.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책인데 작가의 사인본으로 먼저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였다. 더군다나 이렇게 다양한 느낌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에서 만나 볼 수 있다니.. 매번 한국의 장르문학을 읽으며 느끼는것이지만 2% 부족하다는것은 지울수 없는 욕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입맛에 따라 즐길수 있는 다양한 공포의 향연이다. 여름철 무더위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이야기. <호러픽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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