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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호러픽션 ㅣ 호러픽션 1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평점 :
호러픽션 / 양국일, 양국명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공포는 끊임없이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공포라는 장르로 구축할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으며, 공포라는 장르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도 무한할 것이다. 내가 공포를 좋아하고, 공포소설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5-
1.
여름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수박, 모기, 피서,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 끈적하고 더운 날씨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하고 짜릿한 무언가를 갈망하게 만든다. 그런면에서 무서운 이야기는 여름과 궁합이 무척이나 잘 맞는다. 듣는순간의 공포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속에서 문뜩 생각나게 하는 그 오싹한 기분은 짜릿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어릴적 여름방학때면 시골로 향하곤 했다. 차려주신 수박과 차가운 미숫가루를 배부르게 먹고나면 남은 코스는 입담 좋기로 소문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귀신들과 도깨비들의 이야기는 대표적인 권선징악의 패턴이였고 어린아이에게 하지말아야할 금기사항에 대한 확실한 교육방침이였다. 덕분에 성인이 된 지금도 양심에 어긋나는 짓들을 할때마다 문뜩문뜩 할머니의 이야기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이처럼 무서운 이야기는 단순한 쾌락 위주의 역할만이 아닌 교시적인 역할도 함께한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능이 교시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이라고 할때 '무서운 이야기'는 이 둘을 충족시키는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무서운 이야기'는 어릴적 할머니의 이야기와는 달리 교시적인 기능을 상실한채 단순한 쾌락만을 추구한다. 싸이코 패스의 이유없는 살인과, 단순한 고어는 '무서운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어른'은 될 수 없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모든 어른은 사실 덩치 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른인 척 가식과 위선을 떨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비겁하고 나약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나 역시 그러했다. 겉으로는 어른인 척 폼을 잡아보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즉각 어린아이로 돌변해서 커다란 외투 속에 몸을 숨겨버렸다.
-P.167
2.
<호러픽션>은 말하자면 이 두가지 부류의 이야기가 함께 섞여있는 단편집이다. 이유없는 살인을 하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도 나오며,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오는 끔찍한 결말도 이야기한다. 단편집의 특성상 모든 이야기가 좋을수는 없지만 이 두가지 틀의 이야기가 함께 섞여있다는 것은. 그것도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것은 참으로 재밌게 읽을 수있는 하나의 이유였다.
양국일, 양국명 형제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완벽하진 않지만 만족스러웠다.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너무 뻔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생각외의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다.
3.
첫번째 작품인 <침입자들>은 장편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바이러스를 통해 다른 형태로 변하는 인간과, 그 형태로 변화하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한참 물이 올랐을때 갑자기 끝나버린듯한 기분이였다. 좀더 깔끔한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였다.
두번째 작품인 <자살 주식회사>는 '스티븐 킹' 형님의 단편 <금연 주식회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였다. 자살을 하려던 주인공을 살해하려는 사람들. 주변 모두가 적으로 보이는 상황설정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지막 한문장이 실소로 다가왔던 이야기였다.
세번째 작품인 <괴물이 있다>는 진짜 괴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 아버지의 폭력안에서 소녀는 환영을 본다. 괴물이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환각. 그 환각에 이상한 낌새를 차린 소녀의 담임은 그녀의 가정을 방문한다.
네번째 작품인 <만월의 살인귀>는 누이의 죽음에 복수를 결심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만연한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긴 이야기였다. 생각외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다섯번째 작품인 <사자와의 하룻밤>은 할머니의 장례식 꿈과 현실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정말 무서운것은 인간이구나 라는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였다.
여섯번째 작품인 <꿈속의 그녀>는 뭐랄까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였다. 예지몽을 꾸는 남자와 그녀를 좋아하는 마녀라 불리는 여자 두 사람의 운명의 고리가 현실과는 너무나 이질적이였기에 와닿지 않았다.
일곱번째 작품인 <붉은장미>는 남자의 순정을 짓밞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얼핏 동화와 같은 형식을 취했기에 붉은 장미의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여덟번째 작품인 <묵도의 밤>은 상당히 고어한 이야기였다. 살가죽을 벗져내고, 온몸에 못을박고 비급영화와 같은 소재에 마지막 반전이 주는 임팩트는 상당히 강렬했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이유로는 절대 공감할 수 없었던 이야기.
아홉번째 작품인 <향전>은 열편의 단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조선 말기의 향권을 둘러싼 구향과 신향의 첨예한 대립. 그 대립의 희생자들이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설정의 이야기인데, 위에 언급한 '할머니의 이야기'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였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오는 비극적인 결말이 시대에 상관없이 나타난다는데 안타까움이 들었다.
마지막 이야기 <유령의 집에서>는 흔히 볼수있는 괴담류의 이야기였다. MT를간 대학생들이 흉가체험도중 겪는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김빠지는 반전이 아쉬웠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이성을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인간을 짐승으로 탈바꿈시키는 물욕과 권세욕은 아무에게나 쉬이 찾아드는 법이다. 누구든 민득재가 될 수 있고, 누구든 봉학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찾아온 욕심을 다스릴 줄 알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봉학 같은 관리는 다시 나타날 것이고, 민득재의 비극도 반복될 것이며, 향전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95-
4.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은 책인데 작가의 사인본으로 먼저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였다. 더군다나 이렇게 다양한 느낌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에서 만나 볼 수 있다니.. 매번 한국의 장르문학을 읽으며 느끼는것이지만 2% 부족하다는것은 지울수 없는 욕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입맛에 따라 즐길수 있는 다양한 공포의 향연이다. 여름철 무더위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이야기. <호러픽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