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이다. 도시에 살고 있으니 다른 농작물의 작황은 알 길 없지만, 매일 아침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서 간밤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조약돌처럼 흩어져 있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보게 된다. 내가 다니는 등산로에는 참나무가 특히 많다. 상수리 나무며 갈참나무, 이따금 보이는 굴참나무까지. 그러나 작년에는 태풍 탓이었는지 가을이 다 가도록 이렇게 많은 도토리를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막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올 겨울에는 산 속 짐승들이 먹을 것 걱정없이 지낼 수 있겠거니 좋아했었다. 그러나 웬걸, 하루가 멀다 하고 도토리 줍는 인파가 늘어나더니 어찌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산이 운동장처럼 변해버렸다. 숲의 관목들이 밟히고 부러지는 건 예사고 쌓였던 낙엽도 사람들의 발길에 부숴지고 다져졌다. 정말 화가났다. 어찌 이럴 수가...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며칠 전부터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주워 등산로에서 멀리 던지곤 하였다. 어찌나 여러 번 던졌는지 어깻죽지가 결릴 지경이었다. 내가 숲으로 던진 도토리들을 어느 악착같은 사람이 발견하여 그마저도 다 주워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을 듯 싶었다.

 

내가 찾는 등산로 초입에는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나무 계단이 있다. 시에서 만들어 놓은 계단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계단보다는 계단 주변에 심어 놓은 어린 벚나무 묘목 사이로 지나다니곤 하였다. 그 바람에 새로운 등산로가 생긴 셈인데 이게 영 마뜩지 않았다. 한두 명 지나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수많은 등산객들이 밟아대면 땅이 금세 굳어지고 이내 벚나무의 뿌리가 드러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다 못한 나는 근처의 묘지 주변에 베어 놓은 아까시 나무를 끌어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막아 놓았다. 그러나 주말의 휴일이 지나고 나면 내가 옮겨 놓은 아까시 나무가 저만치 치워지곤 하였다. 나는 또 다시 옮겨 놓았고.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어떤 도덕적 이유 때문이라거나 우리의 환경을 후대에 물려줘야겠다는 등의 거창하고도 윤리적인 목적, 또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산을 좋아하고, 그런 까닭에 적어도 내가 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 오래도록 보고 싶은 강한 욕심이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모처럼 비가 내렸다. 가을비라고 하기에는 요란한.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호젓하게 걸었고 유난히 많은 도토리를 숲으로 던지느라 예정보다 오래 걸렸다. 사람들의 욕심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심은 정말 무서운 데가 있다. 도토리를 주워다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요즘은 남자들도 배낭을 매고 산을 오른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는 일 년에 20~30만 마리의 다람쥐를 잡아 외국에 수출한 적이 있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몸에 좋다는 이유로 개구리와 뱀의 씨를 말리기도 했다. 이런 추세라면 집에 쌀밥을 두고 개사료나 개껌까지 넘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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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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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그것을 감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일상에서 한 사람의 모습은 그저 처세나 임기응변, 인간성, 지적수준 등 삶의 기교와도 같은 비교적 가벼운 것들만 드러날 뿐 그에게서 철학적 울림과도 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은밀하고 사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까닭은 자연의 품에 안긴 고독한 영혼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뒤섞이며, 홀연 자신을 잊은 채 자연과 하나 되기에 이른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하지만 자연 속에서 느꼈던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우리에게 말과 글로 전하지 않는 한 그것은 전설처럼 떠돌 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지는 않는다.

 

여행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체험이 아닌, 한 인간의 영혼과 자연의 만남,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한 응시, 자신의 총체적인 삶을 계획하는 밑그림, 그 모든 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이 비로소 자연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을 인식하는 황홀한 경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의 교류가 아닌, 영혼과 자연의 강한 입맞춤이어야 한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p.36)

 

<헤세의 여행>은 가볍고 경박한,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천박하기까지 한, 여행에 대한 현대인의 잘못된 생각들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경제적, 육체적 부담에서의 일시적 해방, 이제껏 가본 적 없는 어느 바닷가의 일출, 고지대에서 바라보는 멋진 풍광, 오직 그것만이 다인 양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진을 찍어대는 현대인의 여행은 그것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소만 바뀐 일상에 가깝다고 느끼게 한다.

 

사실 유럽의 작가 중에 헤세만큼 동양적인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외삼촌이 불교연구의 대가였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가 동양적인 사고의 유럽 작가가 된 데에는 수없이 많았던 여행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목적이자 전부였다. 자신을 방랑자나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헤세는 여행은 단순히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순수의 자신에게 이르는 고행의 한 방편으로 여겼던 듯하다.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p.33)

 

헤세의 여행은 일견 구도자의 그것처럼 따분할 수 있다. 자신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자신의 글에서 솔직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낭송을 목적으로, 때로는 휴식을 목적으로, 집필을 목적으로, 또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계속되었던 여행에서 그가 품었던 소회는 우리가 갖는 여행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여행 중에 남긴 담백하고 아름다운 글 속에는 자연을 관조하고 자신을 살피는 대문호의 겸손함이 묻어난다.

 

"나는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쓰는 글은 그것에서 오늘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형식과 문체, 하나의 고전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데서가 아니라 궁핍을 겪는 우리에게 최대한 솔직해지는 것 외에는 다른 도피처가 없다는 데에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솔직함과 고백, 최종적인 자기포기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한편 젊은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름다운 표현에 대한 요구, 이 두 가지 요구 사이에서 내 세대의 전체 문학은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자포자기에까지 이르는 최종적인 솔직함을 지닐 용의가 있다 해도 그런 솔직함을 위한 표현을 어디서 발견한단 말인가?" (p.437)

 

헤세의 여정은 니탈리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보덴 호수, 뉘른베르크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지만, 그의 여행은 언제나 자연과 자기 자신, 인간과 삶에 대한 관조,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속에 있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라고 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헤세의 여행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책, <헤세의 여행>은 그런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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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부와 여당이 하는 행태를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정말 가관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태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부는 군사 독재정권 이후에 본 적이 없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싫은 정부 발표가 뉴스의 메인을 장식한다는 게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주민세 인상, 자동차세 인상, 담뱃값 인상, 쌀 수입 전면 개방, 손주 교육비 1억 면세 발의, 가업 상속세제 개편, 의료 원격 진료 강행, 공무원 연금 및 공기업 개혁 강행 등 그동안 간절히 원했지만 정황상 미뤄두기만 했던 것을 하나씩하나씩 쏟아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공무원 연금이나 공기업 개혁은 일부 손볼 부분이 있다.  인정한다.  이것 말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게 과연 있는가.  이런, 젠장!  도대체 그들은 누구의 동의를 거쳐 진행하는 일이란 말인가.

 

절대 불가! 라는 팻말을 붙인 항목도 있다.  세월호 특별법.  수사권, 기소권은 절대 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저들의 이익이나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강행하겠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국민의 안전이나 복지는 안중에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도,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조세의 근거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들의 뻔뻔함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할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국가의 명운이 다하거나 권력이 사라질 때의 공통점은 국민에게 과중한 세금을 지운다는 것이다.  그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는 없을 터, 그럼에도 밀어붙이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7.30 재보궐 선거의 승리, 지리멸렬한 야당,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국민의 무기력 등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다.  외국을 나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국민의 안전이나 자국민 보호에 관심이 없는 나라를 순위로 매긴다면 대한민국이 단연 1등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나라를 모국이라고 믿는 나도 참 한심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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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9-2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꼼쥐 2014-09-23 13:45   좋아요 0 | URL
흔적 님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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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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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와 골동품 수집과의 상관관계, 교수와 동화 작가의 조합, 또는 물리학 교수와 만화 그리기의 연관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조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굳이 하겠다는 데 말릴 까닭도 없지만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또는 50대 중반의 가장이 저지른(?) 일 치고는 왠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저자인 이기진 교수는 조금은 특이한 물리학자이다. 내가 상상하는 물리학자는 흰 가운을 걸친 깔끔한 차림새로 연구실은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허튼 농담이나 실없는 말은 일체 입에 담지 않고, 집에서도 독서와 연구에 매진하는 그런 모습이다. 물리학자에 대한 편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의 생각은 이제껏 변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대개의 일반인이 가졌음직한 이러한 편견을 이기진 교수는 단번에 깨트린다.

 

연구실 한켠에 군데군데 서있는 깡통 로봇과 벽면에 붙은 엉뚱한 그림들과 이빨이 나간 백자며, 부엌에 있어야 할 조리기구며, 홍차를 거르는 기구며, 출처가 궁금한 호랑이 조각상이며, 심지어 낡고 허름한 개집까지. 이건 뭐 시골집 창고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너저분한 연구실을 학기에 단 한 번 정리하고, 입는 옷도 1년에 한 번 몰아서 산다고 하니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웬만한 사람이면 대개 직장과 가족이 생기는 순간 자신이 몰입하던 취미와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실험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고 '딴짓'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 저자 이기진은 그런 사람이다. 내전중이던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그곳에서 사귀었던 오래된 인연, 다락방 생활을 감행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 지도교수가 맘에 들어 7년을 보냈던 일본. 글을 못 읽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소년은 물리학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오래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 탐닉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환경, 부모님, 친구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저자를 자극하고 부추겼으리라. 대학생 시절부터 다니던 술집을 몇 십 년째 드나들고, 매일 같은 시각에 들르는 커피점, 수없이 드나들던 고미술 상가와 벼룩시장, 그의 주변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만 넘쳐나는 것이다. 창성동에 마련한 한옥을 혼자만 즐기는 게 아쉬워 현재는 갤러리로 쓰고 있다는 저자.

 

나는 저자의 삶이 은근 부러워진다. 매시간, 매분, 매초, 매순간마다 미끄러지듯 흘러 다시는 되돌릴 길 없는 추억의 지하동굴에 저장되는 삶의 나락에서 우리는 그 지하동굴에서 건져 올린 추억에 나른한 감상을, 명징한 느낌을, 때로는 상큼한 쾌감을 적당히 섞어 행복이라는 삶의 와인을 들이켜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즐길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세월을 거슬러 뭔가 상상하게 만드는 물건.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벼룩시장에서조차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이런 물건을 오브제로 생각하며 사는 모습. 이런 풍경이 나는 좋다." (p.269)

 

삶이란 결국 다양한 경험을 첨가한 사유의 칵테일이 아닌가. 어떤 경험, 어떤 첨가물을 넣을지 결정하는 일은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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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학사상 세계문학 12
J.D.샐린저 지음, 윤용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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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날 오후의 일은 판박이 스티커처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지. 투명 셀로판지에 새겨진 다양한 그림들을 공책의 여백에 대고 엄지 손톱으로 박박 문지르면 순식간에 선명한 그림이 새겨지는 판박이 스티커 말이야. 간혹 힘이 약한 저학년 꼬마들이 문지르면 채 반도 새겨지지 않거나, 귀퉁이가 잘려나가곤 하지만.

 

아무튼 너도 그날 오후의 일을 잊지 못할거야. 뭐라고? 생각나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가 있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들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을 해댔던 그날을 말이야. 펑퍼짐한 바지를 골반 위에 간신히 걸쳐 입고 다니던 국어 선생님은 기억하지? 그래, 맞아. 만나는 학생들마다 머리 깎았냐고 질문하던,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자켓 주머니에는 항상 분필가루를 묻히고 다니던 그 국어 선생님'

 

9월 초의 어느 날이었을 거야. 운동장 한켠에 있던 등나무 벤치에서는 말매미 몇 마리가 살려달라는 듯 악을 쓰며 울어대고 있었지. 목청을 돋구어 우는 꼴이라니. 점심 도시락을 5분 내에 해치운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지. 그날 5교시는 국어시간이었거든. 그날 5교시에 우리는 조금 얼띤 국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다들 자거나 잡담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 늘 그래왔지만. 그런데 뜬금없이 야외수업을 하겠다는 거야. 음악이나 미술 시간에 야외수업을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국어는 그렇지 않았잖아.

 

야외에서 작문 시간을 갖겠다는 국어 선생님의 발표는 그야말로 난데없는 폭탄발언이었지. 노트와 볼펜을 들고 학교 뒤편의 논둑길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꼴은 마치 젖도 떼지 않은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라가는 형상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야외수업을 하던 장소는 논둑길을 따라 5분쯤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솔밭이었잖아. 땀도 씻지 못하고 끌려갈 때의 심정은...

 

솔밭 그늘은 그나마 시원한 편이었다구.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도자기 문양처럼 작은 구름만 떠다니고 있었지. 너도 알다시피 아무리 신경질적인 선생님도 일 년에 서너 번쯤은 아주 관대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지. 천사처럼 말이야. 그날 국어 선생님도 그랬어. 마치 '애기는 어떻게 생겨요?' 하고 실없는 질문을 던진다 해도 다 들어줄 것만 같은 그런 표정이었지. 선생님은 그때,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읽어본 사람 있나?" 하고 물었어.

 

다들 멀뚱멀뚱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지. 나는 사실 읽어본 적은 있었지만 괜히 엉뚱한 질문을 받을까봐 손을 들지는 않았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잖아. 뭐랄까, 그냥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어줍잖게 나섰다가 망신만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눈치만 보던 그때 너가 손을 번쩍 들었던 거야. 나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도 친 줄 알았어.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놈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하필 너라니.

 

"어, 그래 재민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뭘 느꼈지?" 선생님은 더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널 호명했어.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구요. 호밀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오, 맙소사! 그걸 대답이라고. 호밀이 뭐냐구? 그건 마치 초등학교 1학년 꼬마가 판박이 스티커를 어설프게 문지른 거랑 다를 게 없었어. 정말 그랬다구. 덩치는 산만한 놈이 그런 대답을... 주인공 홀든이 그렇게나 경멸하던 애클리보다 너는 한참이나 지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어. 만약 애클리가 그 시간에 있었다면 천재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 후로 너는 국어 선생님께 완전히 찍혔던 거야. 홀든이 생각하는 여자 애들처럼 국어 선생님도 그랬으니까.

 

"여자 애들의 문제점은 일단 어떤 남자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면, 그놈이 어떤 쓰레기 같은 놈일지라도 열등감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반대로 싫은 사내애라면 아무리 좋은 놈일지라도, 아무리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놈을 가리켜 거만하다고 말한다구. 머리가 좋은 애들도 그렇다니까." (p.199)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너도 많이 변했겠지. <호밀밭의 파수꾼> 정도는 까맣게 잊었을 테구. 그나저나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어. 홀든이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카알 루스를 불러내어 그에게 전공이 뭐냐구 묻지. 혹시 '변태 성욕'이냐구. 물론 농담으로 물었던 거야. 너는 국어 시간마다 턱을 괴고 졸았고, 선생님은 그런 너를 여지없이 혼내곤 했었어. 그랬던 네가 어떻게 교수가 됐니? 뭘 가르쳐? 혹시 졸음학? 물론 농담이야.

 

그런데 말이야. 너는 정말 시력이 좋았어. 인정해. 인정한다구. 그걸로 대학에도 들어간 거잖아. 너는 아마 50미터 밖에서도 남의 답안지를 훔쳐볼 수 있었을 거야. 네가 만약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쯤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순전히 실력으로 합격했다고 허풍을 떨겠지. 너뿐만이 아냐. 다들 그렇더군. 그런 걸 생각하면 웬일인지 슬퍼져.

 

네가 그때 정말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이 대목은 기억할 수 있겠지? 펜시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이 아무도 몰래 집으로 들어와 잠들어 있는 여동생 피비를 깨웠던 장면 말이야. 그때 피비는 어린애였지만 오빠가 고등학교에서 또 쫓겨났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지. 수요일에 오기로 돼 있었던 오빠가 일찍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거야. 피비가 물었어. 오빠는 뭐가 되고 싶으냐구. 그때 홀든은 이렇게 말하지.

 

"나는 넓은 호밍밭 같은 데서 어린아이들이 다같이 어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단다. 몇 천 명의 애들이 있을 뿐 주위엔 아무도 없어. 나 이외에는 어른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나는 위험한 벼랑 끝에 서 있는 거지. 내가 하는 일이란, 누가 잘못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지. 말하자면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붙잡아주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구.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p.248)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면 까닭없이 울적해지곤 해. 그렇다고 슬프거나 울고싶은 건 아니야. 그런 거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뭐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래. 그리고 작문 야외수업을 하던 그날, 네가 했던 대답은 정말 더럽게 유치한 것이었지만 가끔 그날이 그리워지기도 해. 네 눈꺼풀에는 항상 50톤의 졸음이 매달려 있었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구. 실제로 토할 뻔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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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tan6 2014-11-13 11:2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사진으로 남은 기억과 기록이
친구를 그리고, 선생님을 그리고, 솔나무를 그리고,
그리고 동화를 그려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꼼쥐 2014-11-14 14:15   좋아요 0 | URL
이렇게 과분한 칭찬의 댓글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리고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