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도토리가 풍년이다. 도시에 살고 있으니 다른 농작물의 작황은 알 길 없지만, 매일 아침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서 간밤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조약돌처럼 흩어져 있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보게 된다. 내가 다니는 등산로에는 참나무가 특히 많다. 상수리 나무며 갈참나무, 이따금 보이는 굴참나무까지. 그러나 작년에는 태풍 탓이었는지 가을이 다 가도록 이렇게 많은 도토리를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막 도토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올 겨울에는 산 속 짐승들이 먹을 것 걱정없이 지낼 수 있겠거니 좋아했었다. 그러나 웬걸, 하루가 멀다 하고 도토리 줍는 인파가 늘어나더니 어찌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산이 운동장처럼 변해버렸다. 숲의 관목들이 밟히고 부러지는 건 예사고 쌓였던 낙엽도 사람들의 발길에 부숴지고 다져졌다. 정말 화가났다. 어찌 이럴 수가...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며칠 전부터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주워 등산로에서 멀리 던지곤 하였다. 어찌나 여러 번 던졌는지 어깻죽지가 결릴 지경이었다. 내가 숲으로 던진 도토리들을 어느 악착같은 사람이 발견하여 그마저도 다 주워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편치 않을 듯 싶었다.

 

내가 찾는 등산로 초입에는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나무 계단이 있다. 시에서 만들어 놓은 계단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계단보다는 계단 주변에 심어 놓은 어린 벚나무 묘목 사이로 지나다니곤 하였다. 그 바람에 새로운 등산로가 생긴 셈인데 이게 영 마뜩지 않았다. 한두 명 지나다니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수많은 등산객들이 밟아대면 땅이 금세 굳어지고 이내 벚나무의 뿌리가 드러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다 못한 나는 근처의 묘지 주변에 베어 놓은 아까시 나무를 끌어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막아 놓았다. 그러나 주말의 휴일이 지나고 나면 내가 옮겨 놓은 아까시 나무가 저만치 치워지곤 하였다. 나는 또 다시 옮겨 놓았고.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어떤 도덕적 이유 때문이라거나 우리의 환경을 후대에 물려줘야겠다는 등의 거창하고도 윤리적인 목적, 또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산을 좋아하고, 그런 까닭에 적어도 내가 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더 오래도록 보고 싶은 강한 욕심이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모처럼 비가 내렸다. 가을비라고 하기에는 요란한.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호젓하게 걸었고 유난히 많은 도토리를 숲으로 던지느라 예정보다 오래 걸렸다. 사람들의 욕심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심은 정말 무서운 데가 있다. 도토리를 주워다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요즘은 남자들도 배낭을 매고 산을 오른다.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는 일 년에 20~30만 마리의 다람쥐를 잡아 외국에 수출한 적이 있었다.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몸에 좋다는 이유로 개구리와 뱀의 씨를 말리기도 했다. 이런 추세라면 집에 쌀밥을 두고 개사료나 개껌까지 넘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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