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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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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와 골동품 수집과의 상관관계, 교수와 동화 작가의 조합, 또는 물리학 교수와 만화 그리기의 연관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조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굳이 하겠다는 데 말릴 까닭도 없지만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또는 50대 중반의 가장이 저지른(?) 일 치고는 왠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저자인 이기진 교수는 조금은 특이한 물리학자이다. 내가 상상하는 물리학자는 흰 가운을 걸친 깔끔한 차림새로 연구실은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허튼 농담이나 실없는 말은 일체 입에 담지 않고, 집에서도 독서와 연구에 매진하는 그런 모습이다. 물리학자에 대한 편견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나의 생각은 이제껏 변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대개의 일반인이 가졌음직한 이러한 편견을 이기진 교수는 단번에 깨트린다.

 

연구실 한켠에 군데군데 서있는 깡통 로봇과 벽면에 붙은 엉뚱한 그림들과 이빨이 나간 백자며, 부엌에 있어야 할 조리기구며, 홍차를 거르는 기구며, 출처가 궁금한 호랑이 조각상이며, 심지어 낡고 허름한 개집까지. 이건 뭐 시골집 창고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런 너저분한 연구실을 학기에 단 한 번 정리하고, 입는 옷도 1년에 한 번 몰아서 산다고 하니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사람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웬만한 사람이면 대개 직장과 가족이 생기는 순간 자신이 몰입하던 취미와 결별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실험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고 '딴짓'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 저자 이기진은 그런 사람이다. 내전중이던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보냈던 젊은 시절, 그곳에서 사귀었던 오래된 인연, 다락방 생활을 감행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 지도교수가 맘에 들어 7년을 보냈던 일본. 글을 못 읽어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소년은 물리학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오래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에 탐닉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는 어른이 되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환경, 부모님, 친구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저자를 자극하고 부추겼으리라. 대학생 시절부터 다니던 술집을 몇 십 년째 드나들고, 매일 같은 시각에 들르는 커피점, 수없이 드나들던 고미술 상가와 벼룩시장, 그의 주변에는 온통 '오래된 것들'만 넘쳐나는 것이다. 창성동에 마련한 한옥을 혼자만 즐기는 게 아쉬워 현재는 갤러리로 쓰고 있다는 저자.

 

나는 저자의 삶이 은근 부러워진다. 매시간, 매분, 매초, 매순간마다 미끄러지듯 흘러 다시는 되돌릴 길 없는 추억의 지하동굴에 저장되는 삶의 나락에서 우리는 그 지하동굴에서 건져 올린 추억에 나른한 감상을, 명징한 느낌을, 때로는 상큼한 쾌감을 적당히 섞어 행복이라는 삶의 와인을 들이켜곤 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즐길 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세월을 거슬러 뭔가 상상하게 만드는 물건.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벼룩시장에서조차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이런 물건을 오브제로 생각하며 사는 모습. 이런 풍경이 나는 좋다." (p.269)

 

삶이란 결국 다양한 경험을 첨가한 사유의 칵테일이 아닌가. 어떤 경험, 어떤 첨가물을 넣을지 결정하는 일은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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